<사선에서:In the line of fire>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술 ‘패트론’(Patron)

아주 사적인 이야기지만 영화나 기타 매체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볼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리게 되곤 한다. 넓은 이마에 약간 긴 얼굴, 웃는 얼굴보다는 무표정하거나 찌푸린 얼굴이 먼저 떠오르는 표정들, 가정 따윈 신경 안 쓸 것 같고 바깥 일에만 집중하는(아~ 이런 거 정말 싫어), 무엇보다 보수적이고 보수적이어서 고집불통인 그런 일련의 이미지들 말이다.
 
따지고 보면 내 세대의 아버지들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해방 전후, 혹은 전쟁 직후에 태어나 그 혼란스러웠던 1950~60년대에 학창생활을 보냈던 그 세대. 개인의 즐거움 따위 지금에 비하면 찾아보기도 힘들었던 때에 젊음을 보낸 후 그저 일하는 것에 온 생을 바쳤던 그 세대들 말이다.

느리게 변하는 농경사회 같은 곳에서야 노인이 경험으로 우대 받는다지만 한국이 어디 그런가, 전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빠른 경제 성장을 이뤘다는 말은 뒤집어보면 불과 2~30년 전의 한국 사회와 지금이 전혀 다르다는 말과 동일하다. 그렇게 본인의 존재 가치를 너무나 빨리 잃어버린 그 세대에게 지금 남은 자존심은 자칫 무가치한 아집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따지고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인데 장강의 앞 물결은 뒷 물결에 밀려나는 것이 세상 이치이니 어쩌겠나. 그저 가는 세월을 원망할 뿐이다.
 
그런 심정적인 안타까움이 느껴지다 보니 가끔 어르신들이 활약하는 영화를 보게 되면 아무래도 약간씩 감정 이입이 되곤 하는데 수년 전 실베스터 스탤론이 출연했었던 자동차 경주 영화 <드리븐>도 그랬지만 <사선에서>도 그랬다.

사선에서

감독 볼프강 페터젠

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존 말코비치, 르네 루소, 딜란 맥더모트, 게리 콜

개봉 199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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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에서>1993년에 볼프강 피터젠 감독이 만든 영화다.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막지 못해 평생을 괴로워했던 늙은 경호원 프랭크(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대통령을 암살하고자 하는 미치(존 말코비치)의 대결을 그렸다. 요새 나오는 영화처럼 화려한 CG나 시각효과는 없지만 오로지 연기력, 그리고 연출로 극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왕년에는 꽤나 멋있었을(세상에, 바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경호원이라니!) 프랭크. 하지만 이제 초라하게 늙어 집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곤 하는 프랭크의 친구가 되어주는 술은 뭘까.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병 모양만 봐도 알아맞히실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데킬라 패트론.

멕시코 현지에서는 ‘빠뜨롱’이라고 불리는 패트론은 멕시코산 아가베(용설란)를 100% 사용해 만드는 고급 수제 데킬라이다. 존 폴 디조리아(John Paul DeJoria)라는 사람이 1989년에 처음 창업했고 현재는 우리는 데킬라를 발명하지 않았다. 다만 완벽하게 만들었을 뿐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멕시코의 할리스코(Jalisco)라는 곳에서 생산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클린트 이스트우드 역시 창업자 존의 친구였고 그 인연으로 간접 광고 비용 지불 없이 패트론이 영화에 1분간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패트론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프리미엄 데킬라로 자동화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공정을 제외하고는 총 60여 번의 손길을 통해 수제로 제조되며 다른 좋은 술들이 그렇듯 마셔보면 모나거나 하지 않고 균형감이 좋으면서도 데킬라 특유의 통통 튀는 매력을 발산한다.

숙성 시간에 따라 실버, 레포사도, 아네호로 크게 나뉘며 그 밖에 다른 스타일의 리큐르도 해당 증류소에서 생산되지만 개인적으로는 패트론 실버의 향을 특히 좋아한다. 레몬이나 라임, 소금과 함께 먹으면 그야말로 입 안에서 톡톡 터지는 향과 감칠맛을 즐길 수 있다.

패트런 실버 데킬라. 바 로빈스스퀘어

영화를 보면서 조금 쌩뚱 맞았던 건 굳이 왜 반백의 할아버지와 매력적이고 어린 여성의 연애를 영화 중간에 넣어 놓았을까 했던 건데 서두에 이야기했듯이 어르신이 주인공인 영화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무협지 주인공은 그다지 큰 노력 없이 우연으로 고수가 되어 칼 한번 휘두르면 6대 문파가 전멸하며 무림의 미녀들이 전부 주인공을 따르고,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항상 씩씩한 거 빼면 딱히 내세울 것도 없는 가난한 집 딸이지만 그런 여자와 재벌 2세 실장님은 항상 연결되지 않나. 대중 문화란 게 원래 대리 만족이니 그걸 딱히 뭐라 그럴 이유도 없겠다.
 
영화 속 주인공이야 나이가 어떻게 되건 바에서 피아노를 치고 멋지고 어린 여성과 연애를 하며 대통령 암살범을 막아내지만 우리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바에서 피아노를 치고 싶다면 피아노를 최소한 1년은 연습하는게 좋고, 나이 먹어서 멋진 여성과 연애를 하고 싶다면 최소한 그 여성에게 어울릴만한 사회적 지위와 외모를 갖추는 것이 좋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에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꿈꾸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 않나. 영화 속 화끈한 연애까지는 아니어도 급격한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바람직하지 못한 고집만 남은 내 아버지 또래의 어르신들, 그분들의 경륜도 어떤 식으로든 다시 펼쳐질 수 있는 계기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그러려면 사회도, 뭣보다 어르신들 개인도 노력해야겠지만.


데렉 / 술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