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재즈 레이블 '블루노트'의 역사를 정리하는 다큐멘터리 <블루노트 레코드>가 지난 8월 15일 개봉했다. 1939년 창립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블루노트에서 걸어온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작품인 만큼, 재즈 명곡들이 적재적소에 등장한다. 영화에 쓰인 음악들을 중심으로 <블루노트 레코드>를 살펴보자.
Lee Morgan
Absolutions
<블루노트 레코드>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음악은 리 모건의 'Absolutions'다. 이 곡을 쓴 지미 메리트의 건들대는 듯한 베이스에 드럼, 피아노가 곁들여지는 가운데, 지금껏 수많은 음악/디자인 팬들을 열광시켜온 블루노트의 앨범 커버들이 휙휙 지나간다. 리 모건의 트럼펫과 베니 모핀의 색소폰까지 더해지면, 창립자 프란시스 울프가 찍은 블루노트를 거쳐간 수많은 재즈 뮤지션들의 사진들이 등장한다. 청각은 물론 시각적으로도 블루노트를 확실하게 나타내는 인트로다. 'Absolutions'는 블루노트는 물론 재즈 역사상 최고의 트럼펫터로 손꼽히는 리 모건이 생전 마지막에 발표한 라이브 앨범 <Live At the Lighthouse>를 여는 곡이었다. 이 앨범이 발표된 1970년이, 1939년부터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블루노트의 전성기 마지막을 장식한 해였다는 점에서 'Absolutions'의 배치는 의미심장하다. 향후 힙합과 재즈와의 관계를 이야기 하는 대목에서 이 곡은 다시 등장한다. 앨범이 녹음된 캘리포니아 허모사 비치의 카페 '라이트하우스'는 현재도 운영되고 있고, <라라랜드>(2016)에서 세바스찬이 재즈를 싫어한다는 미아를 데려가는 공간으로 나왔다.
Herbie Hancock
Succotash
허비 행콕은 <블루노트 레코드>에서 소개하는 전설적인 뮤지션 중 블루노트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몇 안 되는 인물이다. 현재도 현역으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는 <블루노트 레코드>의 인터뷰이로 참여해 블루노트에 관한 금쪽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허비 행콕의 음악 'Succotash'는 창립자 알프레드 라이언과 프란시스 울프의 음악 제작자로서의 값진 태도에 대해 들려주는 대목에 나온다. 뮤지션에게 그 어떤 압박감도 느끼게 하지 않았던 그들의 방식은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이들이 표현할 기반을 갖게"끔 이끌었다. 울프가 찍은 사진이 레이드 마일스의 디자인을 거쳐 행콕의 세 번째 앨범 <Inventions & Dimensions> 커버로 완성되는 짤막한 몽타주와 당시 흑인사회를 담은 푸티지들이 이어진다. 라틴 풍의 퍼커션을 적극 받아들여 모달 재즈와 포스트 밥을 탐구했던 행콕의 시도가 두 창립자의 열린 태도에서 비롯됐다는 걸 'Succotash'가 일러주는 것 같다.
Thelonius Monk
'Round Midnight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몽크가 쓴 난해한 진행의 곡들은 당시 크게 호불호가 갈렸지만, 후대 많은 연주자들에게 나의 것 그대로 연주해도 된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블루노트 레코드>는 몽크를 다루는 데에 비교적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델로니어스 몽크: 스트레이트, 노 체이서> 등 다양한 푸티지들을 끌어모아 'Don't Blame Me', 'Rhythm-a-ning', ''Round Midnight', 'Crepuscule With Nellie', 'In Walked Bud' 몽크가 연주한 다섯 개의 명곡을 소개한다. 당시 몽크와 함께 연주했던 색소포니스트 루 도날드슨의 회고와 더불어 재즈와 힙합 사이를 오가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나가는 현재의 뮤지션들이 몽크의 음악이 준 깨달음을 전한다. 독특한 모자와 오른쪽 새끼손가락에 커다란 반지를 낀 채 ''Round Midnight'의 음들을 자유분방하게 밟아나가는 몽크의 연주는, 알프레드 라이언이 판매고가 아주 저조했던 몽크의 음악을 서포트 하기 위해 부던히 애썼던 과정을 수식한다. 블루노트가 (1947년 녹음했지만) 1951년에야 발표한 몽크의 첫 앨범 <Genius of Modern Music: Volume 1>의 문을 여는 ''Round Midnight'은, 몽크 스스로가 20개 버전이 넘는 연주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디지 길레스피, 마일스 데이비스, 빌 에반스, 엘라 핏제랄드 등 기라성 같은 재즈 뮤지션들이 재해석 하면서 영원한 생명력을 얻었다.
John Coltrane
Blue Train
프란시스 울프의 사진과 레이드 마일스의 디자인이 어우러진 블루노트의 앨범 커버들을 열거하던 다큐멘터리는 한 앨범에서 멈춘다. 존 콜트레인의 1958년 작 <Blue Train>이다. 콜트레인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앨범으로 <Blue Train>을 꼽으면서 녹음이 잘됐고, 훌륭한 밴드와 함께 했다고 그 이유를 밝힌다. <블루노트 레코드>는 앨범의 첫 트랙 'Blue Train'을 테너 색소폰의 존 콜트레인, 트럼펫의 리 모건, 트럼본의 커티스 풀러, 피아노의 케니 드류, 베이스의 폴 챔버스, 드럼의 필리 조 존스가 앨범을 녹음하던 당시 울프가 찍은 사진들을 각 파트에 맞게 편집해 보여주면서 이 위대한 앨범에 향한 편애를 드러낸다. 밴드의 리더로서 음반을 내놓은 10년의 기간 동안 임펄스, 애틀랜틱, 프레스티지 등 레이블을 옮겨가며 걸작들을 쏟아내던 콜트레인이 정작 블루노트에서는 <Blue Train> 딱 한 앨범만 발표했기 때문일까, <블루노트 레코드>는 콜트레인의 'Moment's Notice'로 엔딩 크레딧을 장식한다.
Art Blakey Quintet
Mayreh
델로니어스 몽크만큼이나 <블루노트 레코드>가 긴 호흡으로 소개하는 아티스트가 있다. 드러머 아트 블레이키다. 특히 1954년 블루노트에서 발매된 라이브 앨범 <A Night at Birdland>의 비중이 두드러지는데, 사회자 피 위 마퀘트의 인트로부터 소개할 정도다. 드러머 켄드릭 스콧은 재즈에 대한 최초의 기억 중 하나가 바로 그 인트로였다며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힌다. 영화가 <A Night at Birdland>를 그토록 강조한 건 재즈의 전성기 한 축을 차지하는 하드밥이 아트 블레이키를 비롯한 클리포드 브라운, 호레이스 실버 등 밴드 멤버들이 보여준 사운드에서 비롯됐고, 블레이키가 밴드 리더로서 남긴 영향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블레이키의 밴드 '재즈 메신저스'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실력을 쌓은 웨인 쇼터의 활약상, 쇼터가 후배들과 함께 연주를 선보이는 대목이 이어지는 과정은 한 지붕에서 만난 선후배 뮤지션들이 활동하면서 블루노트의 역사가 계속될 수 있었다는 걸 증명하는 듯하다.
Lou Donaldson
Ode to Billie Joe
<블루노트 레코드>의 미덕은 비단 블루노트의 황금기를 열거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1971년 프랭크 울프가 세상을 떠난 후 정통 재즈 녹음이 중단되는 시기가 찾아오지만, 재즈 명장들이 남긴 유산들이 힙합에 중추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연결고리를 짚어내면서, 좋은 음악은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된다는 소중한 진실을 보여준다. 이때 예시로 드는 것이 'Ode to Billie Joe'다. "힙합의 건축가"로 언급되는 루 도날드슨의 곡이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이드리스 무하마드의 드럼 연주에 향한다. 이드리스 무하마드가 이슬람에 귀의하기 전 본명 레오 모리스로서 참여한 'Ode to Billie Joe'의 드럼은 블루노트의 레코딩 가운데서 가장 많이 샘플링 된 곡으로 손꼽힌 연주다. <블루노트 레코드>는 이 드럼 브레이크가 사이프레스 힐, 드 라 소울, 데 라 소울, 에미넴,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로부터 재창조 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샘플링의 신박함을 전한다.
US3
Cantaloop
1980년대 블루노트는 레이블을 대표하는 사운드와는 거리가 먼 음악들로 명맥을 유지한다. 1985년 블루노트 재설립 콘서트 당시 허비 행콕의 'Cantaloupe Island' 연주와 함께, 1980년대를 통과하는 블루노트의 발자취가 잠시 지나간다. 그리고 'Cantaloupe Island'는 순식간에 US3의 'Cantaloop'이 된다. 영국의 힙합 듀오 US3는 당시 블루노트의 CEO였던 브루스 룬드발을 찾아와 블루노트의 곡들을 샘플링 해 앨범을 만들겠다는 뜻을 전했다. 피 위 마퀘트가 <A Night in Birdland>를 소개하던 목소리와 함께 허비 행콕의 'Cantaloupe Island'를 샘플링 한 'Cantaloop'는 크게 히트했고, 블루노트의 명곡들을 샘플링 해 완성한 US3의 데뷔 앨범 <Hand on the Torch>는 전 세계 25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Norah Jones
Don't Know Why
<블루노트 레코드>의 후반부는 1980년대와 2000년대 사이를 아주 짤막하게 언급한다. 80년대와 90년대를 US3가 차지했다면, 2000년대는 재즈 보컬리스트 노라 존스의 몫이었다. 에미넴, 브루스 스프링스틴, 넬리를 누르고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거머쥐고, 2천 만장을 팔아치운 앨범 <Come Away with Me>의 첫 싱글 'Don't Know Why'이 세상에 나오게 된 과정을 브루스 룬드발이 직접 들려준다. 앞서 수차례 흥분을 섞어 블루노트를 향한 사랑을 들려주던 뮤지션들의 목소리가 아닌 CEO의 인터뷰만 더해졌다는 점은, 감독 소피 허버에게 'Don't Know Why'는 음악보다는 블루노트의 역사를 다루는 데 있어서 의무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에 불과했던 걸로 보이게 한다. 요즘의 재즈 뮤지션이 참여하긴 했지만 블루노트와는 직접적인 연이 없는 켄드릭 라마의 <To Pimp a Butterfly>에 대한 할당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도 그 감상에 일조한다.
문동명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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