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클럽>(Deception, 2008)은 회계사 조나단(이완 맥그리거)이 변호사 와이어트(휴 잭맨)를 만나서 뉴욕의 상류층으로 구성된 익명제 클럽에 가입하게 되고, 그 클럽에서 조나단이 과거 지하철역에서 첫눈에 반했던 여성 S(미셸 윌리엄스)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일이 주된 줄거리입니다. 조나단이 겪은 일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법에 따라 살펴볼게요.


1. 타인의 신분을 도용하여 은행 예금을 인출하면 어떤 죄가 성립할까요

조나단은 잘나가는 회계사지만 굉장히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와중에, 야근을 하다가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변호사 와이어트를 만나서 친구가 됩니다. 와이어트는 조나단이 쉬는 날에 테니스를 같이 치고 자신의 집에도 데려가면서 조나단과 친분을 쌓는데요. 어느 날 와이어트와 조나단의 휴대폰이 우연히 뒤바뀐 것을 모르고 영국으로 출장을 가버린 와이어트 때문에 조나단이 당분간 와이어트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게 됩니다. 조나단은 와이어트의 휴대폰으로 걸려온 전화를 우연찮게 받는데, ‘오늘밤 한가하냐’는 취지의 질문에 호기심이 생겨서 조나단은 약속된 장소로 나가고 모르는 여성과 성관계를 하면서 익명제 클럽에 대해 알게 되죠. 서로의 신상을 물어보는 것은 금지되고 시간이 되는 사람들(회원들은 뉴욕의 상류층으로 나옴)끼리 만나서 합의 하에 관계를 가지고 헤어지는 것이 클럽의 목적이었던 것이죠. 조나단은 익명제 클럽에 빠져서 자주 여성들을 만나는데 우연히 조나단에 지하철역에서 첫눈에 반했지만 안타깝게 놓쳐버린 여성 S를 클럽에서 만나게 됩니다. 조나단이 S에 빠진 것을 알게된 와이어트는 S를 납치하고 조나단한테 회계감사를 하게 될 회사의 비자금 계좌에서 2천만 달러를 스페인의 ‘조나단’ 명의로 개설된 계좌로 이체하라고 시킨 뒤, 시간을 엄수하지 않으면 S를 죽이겠다고 말하죠. 결국 S한테 빠진 조나단은 와이어트가 시키는대로 회계감사를 하는 회사 명의 비자금 계좌에서 와이어트가 알려준 스페인의 ‘조나단’ 명의 계좌로 2천만 달러를 이체하고 와이어트가 보내준 사진을 토대로 S를 구하러 갔다가 우연히 발생한 폭발사고로 사망하게 됩니다. 와이어트는 사망한 조나단 명의 여권에 와이어트의 사진을 부착하여 2천만 달러가 이체된 스페인의 은행을 찾아가서 조나단인 것처럼 행세하며 돈을 인출하려고 하는데요.

즉, 와이어트가 조나단 명의 여권에 와이어트의 사진을 부착하고 은행에 가서 제3자에게 조나단 명의 여권을 제시하며 조나단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조나단 명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는 행위는 무슨 죄가 될까요. 와이어트 행위는 일 죄가 아니라 수 개의 범죄에 해당하는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이나 주민등록번호를 부정사용하면 주민등록법 위반이 됩니다. 그런데 주민등록법위반은 다른 법위반 행위와 결부되는 경우가 많은데 공문서위· 변조죄, 사기죄 등이 많이 수반되죠.

유형별로 살펴보면, 1)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신분 확인용으로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면 주민등록법 위반이 되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데, 음주운전 단속을 받고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적는 경우가 전형적인 사례이고 처벌 사례도 꽤 많습니다.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할 때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하여 공적마스크를 구입한 행위도 주민등록법 위반이에요. 주의할 점은 주민등록법 위반이 되려면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신분확인용으로 사용했을 때만 성립한다는 것이에요. 이해를 위해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아파트 동대표 후보자로 나온 사람의 학력을 확인하기 위하여 제3자(아파트 주민)가 해당 학교에 입후보자 학력 조회라고 속여 후보자의 학력 정보를 알아낸 경우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이 되는 것은 별개로, 제3자가 타인(후보자)의 주민번호를 신분확인용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민등록법 위반에 대해서는 무죄가 된 사례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2) 타인의 주민등록증을 신분확인을 위해 자신의 것처럼 제시한 경우인데 역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음주운전 단속 사례에서 타인의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는 경우가 전형적인 사례에요. 한편 주민등록증은 공문서에 해당하므로 타인의 주민등록증을 신분확인용으로 사용하면 형법상 공문서부정행사죄(제230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도 해당하나 주민등록증을 부정사용한 경우에는 주민등록법이 적용되어 더 무겁게 처벌됩니다(3년 이하의 징역, 3000만 원 이하의 벌금).

마지막으로, 3) 타인의 신분을 도용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타인 명의 신분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서 사용하는 경우도 가능합니다. 즉, 타인명의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여권을 정교하게 만들어서 신분확인용으로 새로 만든 타인명의 신분증명서를 제시하는 행위가 그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타인명의 신분증을 만든 행위 자체가 범죄이므로 공문서위조죄가 되고 새로 만든 신분증을 사용하는 것은 위조된 공문서를 사용하는 행위이므로 위조공문서행사죄도 되어 더 무겁게 처벌됩니다(10년 이하의 징역형이고, 행위 개수에 따라 가중처벌됨). 물론 주민등록법 위반에도 해당할 수 있고요.

영화에서 와이어트는 조나단 명의 여권을 사용하면서 사진은 와이어트 자신의 사진을 부착했고 스페인의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하려고 신분확인을 위해 조나단 명의로 만든 위 여권을 제시하였습니다. 와이어트의 행위를 차례대로 살펴보면, 조나단의 여권을 훔쳐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새로 조나단 명의의 여권을 만들어 와이어트 자신의 사진을 부착한 것이므로 공문서위조죄가 되고, 그 여권을 은행에서 신분확인용으로 제시하였기 때문에 위조공문서행사죄도 되며, 조나단의 주민등록번호(우리나라 국민으로 가정한다면)를 부정하게 사용한 것이므로 주민등록법 위반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


2. 돈을 이체하라고 강요하면 무슨 죄가 될까요

와이어트는 조나단이 S에게 반한 것을 이용하여 조나단한테 돈을 이체하지 않으면 S를 죽일 것이라고 협박합니다. 이에 조나단이 와이어트의 요구에 따라 회계 감사를 하는 회사의 돈을 회사 몰래 와이어트가 알려준 계좌로 이체하게 되는데요. 이러한 와이어트의 행동은 전형적인 형법상 강요죄에 해당합니다. 강요죄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면 성립하는데, 와이어트는 조나단을 S의 목숨으로 협박하여 조나단한테 업무상횡령이라는 범죄를 저지르게 한 것이므로 강요죄에 해당합니다. 만약 조나단과 S가 친족 관계라면 조나단은 비록 범죄를 저질렀으나 책임이 조각되어 처벌되지 않고, 친족관계가 아니어도 타인(S)의 생명에 대한 부당한 침해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정당방위가 되어 위법성 자체가 조각될 여지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나 조나단이 업무상횡령죄로 처벌되지 않는 것은 동일합니다.


글 | 고봉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