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사랑과 처음 만난 소녀', 첫사랑 영화는 누구에게나 깊게 다가오는 법이죠. <용순> 또한 첫사랑을 다룬 작품입니다. 여러분이 단번에 떠올렸던 아련 필터 장착한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영화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죠. '용순', 이 소녀 만만치 않습니다.
용순, 체육 선생과 사랑에 빠지다
용용, 순할 순. 엄마가 용을 쓰며 낳아 '용순'이라 이름 붙여진 이 소녀의 가정사부터 소개해볼게요. 꼬꼬마였던 어린 시절, 용순의 엄마는 3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옛사랑과 함께 홀연히 떠나버립니다. 이후 줄곧 아버지 손에 자란 용순은 아버지와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기는커녕 둘도 없는 원수지간이 됐죠. 아버지는 출장을 핑계로 집을 비우기 일쑤, 동남아 새 신부를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집구석이 꼴도 보기 싫은 용순은 방과 후 훈련이 있어 집에 안 가고 버틸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육상부에 들게 되죠. 운동장을 뛰기 시작하며 용순의 심박수도 가빠지기 시작합니다. 땅만 보고 뛰는 자신에게 "용순아, 고개 들어, 고개!" 외치는 체육 선생과 사랑에 빠졌거든요.
체육과의 100일 선물을 준비하며 설렘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용순을 짝사랑하는 남사친 빡큐(김동영)가 "대박!"을 외치며 그녀에게 한 동영상을 보여줍니다. 동영상 속 체육이 다른 누군가와 함께 모텔로 들어가고 있네요. 용순의 감정 그래프가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용순의 단짝 친구 문희(장햇살)와 빡큐(김동영)는 용순을 도와 체육의 바람을 입증할 증거를 모읍니다. 작은 동네의 카페 쿠폰까지 다 뒤졌지만 내내 허탕이죠. 결국 용순은 체육의 핸드폰을 몰래 훔쳐옵니다. 아니, 그런데 체육의 핸드폰에 용순의 담임 사진이 수두룩 빽빽 담겨있는 게 아니겠어요?
체육의 바람 상대가 자신의 담임쌤일지라도! 이대로 포기할 용순이 아닙니다. 어디서든 돌진, 직진하는 용순은 직접 담임에게 자신과 체육의 알콩달콩 사진을 전송하며 '내가 체육의 여친이다'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나랑 먼저 만났다'는 용순의 말에 담임이 동공지진 당황한다면 재미 없겠죠? 만렙 담임은 "나도 너 때는 국어 쌤 진짜 좋아했어~" 하며 용순을 '혼란스러운 사춘기 소녀'로 취급해버립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제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용순. 결국 체육을 되찾기 위한 저만의 플랜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영화의 후반부, 삼각관계의 주인공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며 우당탕탕 소동이 벌어지죠.
그 시절 소환하는 소녀, 용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대명컬처웨이브상을 수상한 <용순>은 신준 감독이 자신의 단편 <용순, 열 여덟 번째 여름>을 장편화한 작품입니다. 캐릭터마다의 특성이 살아 숨쉬는 이 단편을 제작사 ATO에서 미리 알아봐 장편으로 발전시켰죠. 지난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우리들> 또한 ATO의 작품입니다.
'선생님과 학생의 사랑'이라는 자극적인 소재에 <용순>은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관계에 집중하기보다, 영화는 말 그대로 '첫사랑을 겪는 소녀' 용순에게 모든 포커스를 맞추죠. 무언가를 계속 밀어내려고만 하는 소녀, 용순은 러닝타임 내내 독기 품은 눈빛을 장착한 채 건조한 표정으로 제 고집만 피워댑니다. 불뚝 튀어나온 입을 하고 온갖 불만을 다 늘어놓으며, 제 생각과 감정을 숨김 없이 드러내는 용순. 그럼과 동시에 계속 무언가를 찢는다거나 말없이 옷깃을 꾹 쥐는 등의 행동을 반복합니다. 그녀의 불안이 드러난 디테일함이 눈에 밟힐 때, 관객들은 그녀를 응원하게 되죠. 관계를 맺는 데 있어, 제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 한없이 서툴고 어설픈 용순. 그녀를 보고 있자면 지난 시절 우리의 파릇파릇함이 자동 소환되기 마련입니다.
"발로 밀어서 다 보내는 것 같고, 빠르게 흐르는 것 같고…." 육상부 소녀 용순은 달립니다. 그녀가 무언가에게서 도망치고 싶거나, 어떤 상황을 피하고 싶을 때 택하는 방법이죠. 해가 쨍한 한여름, 운동장에서 홀로 뛰고 있는 용순을 보고 있자면 관객들까지 숨이 턱턱 차는 느낌입니다. 이 답답함이 어느 지점에서부터는 벅참과 설렘으로 변주되기 시작하죠. 무언가에 '매달려서 열심히 해본 적 없는' 소녀가 첫사랑에 목숨을 걸기 시작하며 피 터질 정도로(!) '원 없이 용을 쓰는' 소녀가 될 때, 용순은 저만의 방식으로 한 단계 성장해나갑니다. 이 모습이 한없이 싱그럽고 사랑스럽죠.
조연들이 다 했잖아요~
<차이나타운>, <특별시민> 등 매 작품마다 다른 얼굴을 선보이던 이수경. <용순>의 주역으로 한없이 맑은 얼굴을 선보인 그녀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지만, 그녀를 둘러싼 조연들 또한 제 몫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현실 부모님 빙의한 최덕문과 얀츠카를 시작으로, 용순 최대의 적 담임을 연기한 최여진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자동 웃음을 부르고요, 찌질한 첫사랑남 체육을 연기한 박근록도 눈여겨볼 만하죠.
용순을 가장 사랑하는 그녀의 친구들, 문희 역의 장햇살과 빡큐 역의 김동영은 러닝타임 내내 깨알 개그 코드를 시전하며 신스틸러 역할을 제대로 해냈습니다. 개인적으로 빡큐의 감성남 연기가 무척이나 인상 깊더군요. 짝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시를 쓰고, 차인 후엔 눈물로 자신의 글을 적시던 빡큐. 영화 속 역대급 장면의 반 이상은 그가 탄생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유은진
재밌으셨나요? 아래 배너를 눌러 네이버 영화를 설정하면 영화 이야기, 시사회 이벤트 등이 가득한 손바닥 영화 매거진을 구독하게 됩니다.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