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괴물 같은 배우, 괴물 같은 캐릭터
★★★★
베를린 필하모닉의 첫 여성 지휘자이자, 커밍아웃 한 레즈비언이고, 성 추문으로 궁지에 몰리는 이리나 타르는 분명 가공의 인물이지만,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이 영화를 마치 전기 영화처럼, 어떤 장면에선 다큐멘터리처럼 여기게 만든다. 여기에 촬영감독 플로리안 호프마이스터의 카메라가 담아낸, 필름 룩의 심도 깊은 화면이 주는 이미지의 울림이 결합된다. 158분의 러닝타임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영화 관람의 경험치를 한 눈금 정도를 높일 영화는 분명하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TAR, 동시대 예술의 모든 논쟁적 이슈를 껴안은 이름
★★★★
ART의 애나그램으로 만든 TAR라는 이름, 오프닝 시퀀스를 비롯해 관객을 지속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드는 장치들, 예상 안으로 쉬이 포획되지 않는 서사의 흐름, 실존하지 않는 인물을 둘러싼 실제 같은 묘사들. 마치 거대한 농담 같기도 한 이 영화는 한 인물의 복합적 모순을 들여다보는 심리 드라마인 동시에, 예술을 둘러싼 동시대의 모든 논쟁적 이슈들을 껴안은 전방위적 표현이다. 정점에서 바닥으로 추락하는 인물의 사연에는 날개가 없지만,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 케이트 블란쳇의 비상은 반비례다. 그는 리디아 타르라는 옷을 입고 말 그대로 날아오른다. 한 배우가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정점이 또 한 번 교체되는 순간을 목격하게 하는 영화다. 빼어난 연기 덕에 가려질 수 있지만,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고 펼쳐낸 토드 필드의 연출 역시 분명 경탄의 대상이다.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예술가 안에 공존하는 ART와 RAT
★★★★
지휘자로서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는 시대를 대표하는 중요한 인물이며 뛰어난 성취의 정점에 있다. 모두에게 마에스트로로 불리며 부와 권력을 가진 타르는 한 인간으로서는 도덕적으로 타락했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제자를 업계에서 매장 시켰고, 배우자에게 충실하지 않다. 타르의 예술과 생은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레즈비언 여성이지만 여성주의를 부정하고, 어린 여성들을 그루밍한 혐의를 받는다. 음악가로서 타르(TAR)는 예술(ART)적이지만 인간으로서 그는 쥐새끼(RAT)라 불려도 할 말이 없다. 예술가의 인간적 결함과 도덕적 타락은 그의 예술과 분리시킬 수 있는가. 영화는 타르라는 논쟁적인 인물을 통해 강렬한 질문을 던진다. 이 과정의 일등공신은 말할 필요도 없이 케이트 블란쳇. 타르를 실존 인물로 느끼게 하는 동시에 그에게 일말의 연민마저 느끼게 하는 연기는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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