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그해 여름도 무척 덥고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처음 외할머니의 부고를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전 그 상황이 현실 같지 않았어요. 꿈같다거나 믿을 수 없다거나 그런 감정이 아니라, 너무 당황하고 어리둥절해서 그 상황을 믿기 어려웠던 거죠. 그렇게 믿기 어렵다는 말로 억눌렀던 슬픈 감정이 터진 건 화장터에서 할머니의 길고 긴 인생이 한줌의 재로 남았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어요. 그 슬픔의 원인은 ‘외할머니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누군가를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 그게 죽음이라는 게 무척 두렵고 한없이 슬펐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참 강한 존재이거나 망각의 존재인 것 같습니다. 큰 슬픔을 뒤로 한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외할머니와 얽힌 추억을 감동적으로 표현했던 <집으로...>는 만들어진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철부지 주인공 상우(유승호)의 모습이 우리의 어린 시절과 닮아있기 때문일 겁니다. 오랜만에 찾아본 이 영화는 다시 봐도 저를 눈물짓게 합니다.
엄마와 함께 살던 상우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시골 외할머니 댁에 머물게 됩니다. 보통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가는 아이들은 새로운 세계를 구경할 생각에 들뜨기 마련인데, 웬일인지 상우는 낯선 시골이 달갑지 않아 보입니다. 콜라도 없고 장난감도 없고 심지어 TV까지 제대로 나오지 않아 불편함만 쌓여가는 할머니 집. 게다가 할머니는 말도 못하고 글자도 몰라서 애꿎은 상우의 속만 까맣게 타들어갑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상우의 입장일 테지만 말이죠.
상우는 할머니를 병신, 귀머거리라고 놀리면서 도시에서 가져온 게임기만 붙잡고 삽니다. 할머니에게 어찌나 못되게 구는지 옆에 있으면 꿀밤을 콩 때려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방바닥이 꺼져라 쌩쌩 달리지를 않나, 할머니 고무신을 숨겨서 맨발로 물을 길어오게 만들질 않나. 그것도 모자라 맘에 안 든다고 요강을 발로 차서 깨트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할머니와 시골의 한적함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던 상우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유일한 낙이었던 게임기 배터리가 다 닳고 만 것이죠. 할머니에게 배터리 살 돈을 달라고 떼를 써보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집안을 아무리 뒤져도 돈이 될 만한 물건은 나오지 않았거든요. 심술이 난 상우는 할머니가 낮잠을 자는 동안 몰래 비녀를 뽑아 밖으로 나옵니다. 읍내로 나가서 배터리와 비녀를 바꿀 생각이었죠. 꼬불꼬불 이어진 길을 묻고 물어 슈퍼까지 찾아가지만 아저씨는 비녀로 상우의 뒤통수만 때리고 아이를 돌려보냅니다.
이런저런 말썽을 피워도 할머니 눈에는 귀한 외손자가 예쁘기만 합니다. 맛있는 걸 먹이고 싶어서 뭐가 먹고 싶은지를 묻는 할머니. 상우는 손을 이마에 갖다 대고 닭 벼슬처럼 흔들며 ‘꼬꼬댁 꼬꼬’라 대답합니다. 손자가 닭을 먹고 싶다는 말에 할머니는 잘 말린 나물을 보자기에 싸서 읍내로 갑니다. 돌아올 때 할머니 손에는 살이 통통히 오른 토종닭 한 마리가 들려있습니다. 푹푹 끓여서 맛있는 백숙을 끓였는데 상우는 그만 울음을 터트립니다.
“내가 치킨이라고 했잖아. 프라이드. 누가 물에 빠트리래?”
아마도 이 대목이 <집으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 아닐까 싶어요. 상우에겐 바삭바삭 기름기 도는 프라이드치킨이 최고였겠지만 할머니에겐 푹 끓인 닭백숙이 몸보신으로 최고였을 테니 말이죠.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던 두 사람은 이 일을 계기로 조금 더 가까워집니다. 상우가 할머니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그 마음을 읽기 시작한 것이죠.
외할머니가 손자를 위해 끓여준 닭백숙은 큰 솥에 물을 붓고 아무 양념 없이 오랜 시간 푹 고아 내면 되는 요리입니다. 상우의 표현대로 ‘물에 빠진 닭’이죠. 백숙은 닭고기뿐만 아니라 소, 돼지, 생선까지 하얗게 쪄낸 요리를 말합니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에 사랑받던 백숙은 양계장의 증가로 닭이 흔해지면서 모습을 달리합니다. 닭에 인삼과 마늘, 대추, 한약재 등이 더해지면서 고급화의 길을 걷는 거죠. 삼계탕(蔘鷄湯)이란 이름도 인삼과 닭을 함께 끓인 탕이란 뜻으로, 닭이 주재료라 원래는 계삼탕이라 불리다가 인삼이 건강 재료로 인기를 끌면서 삼계탕이라 불리게 됐다고 해요. 이젠 한국인의 여름철 보양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 메뉴가 됐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외할머니가 집에 오실 때면 저와 동생은 앞다투어 달려나가 외할머니와 키를 재보곤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키가 할머니보다 커버린 후에는 더 이상 그 놀이를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외할머니의 키가 작아지고 허리가 굽어갈수록 우리는 더 바빠졌고 찾아뵐 기회도 줄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벌써 이렇게 컸냐며 손을 잡아 주시던 외할머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 손에 가득했던 주름마저 제 마음에 오롯이 남아있습니다.
-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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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정향
출연 김을분, 유승호
개봉 2002 대한민국
영화 속 메뉴 따라하기
“누가 닭을 물에 빠뜨리랬어?”라며 울음을 터트리던 배우 유승호는 이제 훈훈한 성인 배우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프라이드치킨을 좋아하는 꼬마를 연기한 그도 이제는 닭백숙을 더 선호하는 어른의 입맛으로 바뀌지 않았을까요? 닭백숙은 물에 닭만 넣고 푹 끓여도 되지만 몇 가지 재료를 더 넣어 삼계탕 스타일로 끓여봤습니다. 뜨거운 여름, 푹 익힌 닭요리는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보양식입니다.
닭백숙
▶ 재료
닭 1마리, 찹쌀 1/2컵, 수삼 2뿌리, 밤 3알, 대추 5알, 마늘 5쪽, 물 적당량
▶ 만들기
1. 찹쌀은 씻어서 물에 한 시간 이상 불린 뒤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2. 닭은 흐르는 물에 뱃속까지 깨끗하게 씻어내고 꼬리에 붙은 기름은 잘라낸다.
3. 수삼은 흙을 잘 털어내고 흐르는 물에 씻고 밤은 속껍질까지 말끔히 벗겨 준비한다.
4. 닭 뱃속에 불린 찹쌀과 밤, 대추, 마늘을 넣는다.
5. 닭의 양쪽 다리를 꼬아 묵은 뒤 냄비에 넣고 중불로 푹 끓인다. 끓이는 중 올라 오는 거품은 걷어내고 1시간가량 푹 익힌다.
파란달 /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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