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수많은 영화가 있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 이들을 위해 쓴다. ‘씨네플레이’는 ‘씨플 재개봉관’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봉하면 당장 보러 갈 영화, 실제로 재개봉하는 오래전 개봉한 영화들을 소개해왔다.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는 오는 11월 16일 재개봉하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감독 데이빗 핀처 출연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개봉 2009년 2월 12일 재개봉 2017년 11월 16일 상영시간 166분 등급 12세 관람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감독 데이빗 핀처

출연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줄리아 오몬드

개봉 200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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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나잇, 벤자민.” “굿나잇 데이지.” 이들의 사랑은 영원하다. 벤자민(브래드 피트)과 데이지(케이트 블란쳇)는 평생 서로를  그리워했다. 떨어져 있을 때도 함께 있을 때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늘 잘 자라는 인사를 전했다. 그건 숙명이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멜로드라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멜로드라마라니!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원제인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을 빌려 말하자면 “데이빗 핀처의 기이한 사건”이라고 말해도 좋겠다. 데이빗 핀처 감독이 연출한 영화를 떠올려보면 이게 왜 ‘기이한 사건’인지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고통 왕’ 데이빗 핀처의 멜로 드라마
데이빗 핀처 감독은 ‘고통의 왕’이라 불렸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보통 꺼려하는 고통스럽고 파격적인 소재의 영화만 만들어왔다. 광고 감독 출신인 그의 데뷔작은 <에이리언3>였다. 액션 블록버스터스러웠던 제임스 카메론의 전작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전에 없던 묵시록 버전에 당황한 이십세기폭스 관계자는 30분 분량을 잘라내고 개봉했다. 데이빗 핀처는 <에이리언> 시리즈 DVD 박스 세트 감독 코멘터리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이에 대한 복수를 감행했다. <쎄븐> 역시 묵시록의 분위기가 철철 흘러넘친다. <더 게임>, <패닉 룸>에서 멜로의 미음도 찾아보기 힘들다. <파이트 클럽>은 어떤가. 끊임없이 펀치를 얻어맞는 영화다. <조디악>은 연쇄 살인마를 다뤘다. 그런 데이빗 핀처가 멜로드라마를 만들었다. 그것도 아주 절절하게. 그러면서 동시에 담담하게.
 

어쩐지 <포레스트 검프>와 닮았다
어쩌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데이빗 핀처 감독보다 각본을 맡은 에릭 로스가 더 중요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쓴 각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영화 <포레스트 검프>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죽음을 앞둔 엄마가 딸에게 다이어리를 읽어달라고 요청하면서 시작된다. 그 다이어리는 벤자민 버튼이 쓴 것으로 벤자민과 데이지의 일생이 담겨 있다. <포레스트 검프>에게 검프(톰 행크스)는 버스를 기다리다 우연히 옆에 앉은 여성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두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회상의 구조로 만들어졌다.
 

벤자민 버튼은 1918년 태어났다. 1차 세계대전 종전일이었다. 죽음을 앞둔 데이지가 있는 병원의 TV에서는 아마도 카트리나로 추정되는 허리케인 관련 소식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카트리나 허리케인이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건 2005년의 일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거의 한 세기의 미국 역사를 관통한다. <포레스트 검프>의 검프가 미국의 주요 현대사에 모두 관여한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을 거라 믿는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포레스트 검프>와 비슷한 이야기 구조의 영화이며 분위기 또한 비슷하다. 데이빗 핀처의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따뜻한 분위기의 우화다. 다른 점을 찾자면 벤자민과 데이지의 사랑이 검프와 제니(로빈 라이트)의 사랑보다 더 특이하다는 점이다. 이들의 사랑은 그전에 보지 못했다.
 

노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어린 벤자민.

점점 젊어지면 행복할까, 불행할까
이제서야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시놉시스를 소개한다. 제목처럼 벤자민 버튼의 인생은 거꾸로 진행된다. 그는 태어날 때 80대 노인이었고 자라면서 점점 젊어진다. 벤자민의 아버지는 괴물처럼 태어난 벤자민을 양로원 앞에 버린다. 양로원에서 자라던 벤자민은 6살의 데이지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이후 벤자민은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평생 잊지 못한다. 벤자민은 17살이 되자 자신을 키워준 양로원을 떠나 선원이 되어 세계를 돌아다닌다. 러시아에서는 중년 영국인 여성인 엘리자베스 애봇(틸다 스윈튼)과 잠깐 사랑에 빠진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벤자민은 데이지와 만남과 헤어짐을 이어간다. 두 사람은 함께 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아이도 태어난다. 점점 젊어지는 벤자민은 결국 아기가 될 자신이 데이지에게 부담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그녀의 곁을 떠난다.

벤자민과 사랑에 빠지는 영국 여성 엘리자베스 애봇을 연기한 틸다 스윈튼(오른쪽).
6살의 데이지는 엘르 패닝이 연기했다.

노인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진다는 설정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에서 가져왔다. 피츠제럴드는 이 단편소설을 1922년 잡지 ‘콜리어스’(Collier’s)에 발표한 뒤, “인간이 80세로 태어나 18세를 향해 늙어간다면 인생은 무한히 행복하리라”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마크 트웨인의 “무한히 행복하다”는 말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틀린 말이 됐다. 벤자민과 데이지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벤자민이 49살, 데이지가 43살이 되던 때다. 두 사람의 나이가 비슷해졌던 그때 벤자민은 “잠깐만,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 순간은 순간이라는 말처럼 짧기만 했다.

벤자민과 데이지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

피트와 블란쳇의 열연
벤자민과 데이지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 벤자민과 데이지를 연기한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의 얼굴은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때 두 사람은 특별한 분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개봉 당시 특수분장이 화제가 됐다. 브래드 피트는 모션 캡처 기술을 이용해 노인 연기를 하기도 했다.
 
분장 기술, CG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배우들의 연기는 만들어낼 수 없다. 평생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연인을 연기한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완벽에 가깝다. 두 사람 모두 20대부터 80대까지 연기했다. 각 시기별로 그 나이에 맞는 연기를 선보인다. 고향을 떠나 새로운 세계를 만났을 때의 설레임과 나이가 들어 세상을 경험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의 평온함까지 모두 표현해냈다.

데이빗 핀처의 변화
다시 데이빗 핀처 감독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확실히 데이빗 핀처스럽지 않은 영화다. 앞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이전 데이빗 핀처의 영화를 살펴봤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이후에 데이빗 핀처가 연출한 영화를 봐도 멜로 드라마는 없다. <소셜 네트워크>,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나를 찾아줘>, 넷플리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마인드 헌터> 등을 연출했다.
 
한 가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 이후 작품들이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촬영이다. 데이빗 핀처 감독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직전 <조디악>에서부터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스타일이 변하기 시작했다. <세븐> <파이트 클럽>의 빠른 화면전환과 현란한 영상과 비교하면 <조디악>과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촬영은 확연히 다르다. 템포는 늦어졌지만 그만큼의 깊이가 생겼다. 특히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데이빗 핀처 감독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사색적이고 침착한 카메라 워크를 선보였다. 조명 역시 이에 맞춰 자연광이나 카메라 화면 안에 놓여 있는 그대로의 전구를 조명으로 활용했다.
 

길지만 지루하지 않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166분이라는 꽤 긴 러닝타임의 영화다. 그럼에도 짧게 느껴진다. 2시간 46분은 누군가의 일생을 담기에 결코 긴 시간이라 할 수 없을 거다. 게다가 그 사람이 평생 누군가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면 더 그럴 것이다.

각본가 에릭 로스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원작을 통해 독특하면서도 절절하고 담담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었다.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은 벤자민과 데이지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했다. 데이빗 핀처는 배우들의 연기를 뛰어난 연출력으로 담아냈다. ‘고통의 왕’ 데이빗 핀처는 멜로드라마도 잘 찍는 감독이다.

데이빗 핀처 감독.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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