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린 드뇌브. 맨 위 사진은 최근 모습이고 아래 두 사진은 과거의 모습이다.

“카트린 드뇌브는 우리의 가장 위대한 스타다.” 프랑스 영화평론가 아드리앙 공보의 말이다. 카트린 드뇌브? 이름은 들어본 것 같은데 누군지 잘 모르겠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는 소피 마르소 아닌가?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의 평론가가 한 말을 믿을 수 있을까. 프랑스 국민배우라 불리는 카트린 드뇌브에 대해 알아보자.

<더 미드 와이프>에 출연한 카트린 드뇌브.

1943년생인 드뇌브는 지금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3월 22일 개봉한 <더 미드 와이프>에서 그녀를 볼 수 있다. 드뇌브는 35년 전 집을 떠났다가 예고 없이 딸 앞에 불쑥 나타난 철부지 새엄마 베아트레체를 연기한다. <더 미드 와이프>는 프랑스 개봉 당시 31주 동안 상영된 화제작이다. 노년과 중년 여성의 삶을 다뤘다. 2명의 손자와 3명의 손녀를 둔 할머니이기도 한 카트린 드뇌브는 <더 미드 와이프>에서 자신의 나이에 맞는 역을 맡았다.

더 미드와이프

감독 마르탱 프로보스트

출연 카트린 프로, 까뜨린느 드뇌브

개봉 2017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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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부르의 우산>
셰르부르의 우산

감독 자크 데미

출연 까뜨린느 드뇌브, 니노 카스텔누오보, 안네 베르농, 마크 미셸, 엘렌 파너, 미레일 페리

개봉 1964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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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부르의 우산> (1964)
시간을 과거로 돌려보자. 젊은 시절의 드뇌브를 기억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쉘부르의 우산>이다. 프랑스의 작은 항구 도시 쉘부르를 배경으로 한 자크 드미 감독의 뮤지컬 영화 <쉘부르의 우산>은 우산가게 점원 주느비에브(카트린 드뇌브)와 자동차 정비공 기(니노 카스텔누오보)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염색한) 금발의 드뇌브는 이 영화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이후 자크 드미 감독은 드뇌브를 다시 기용해 뮤지컬 영화 <로슈포르의 여인들>(1967)를 만들었다. <쉘부르의 우산>과 <로슈포르의 여인들>은 <라라랜드>에 큰 영향을 미친 영화로 알려져 있다.

<반항>
반항

감독 로만 폴란스키

출연 까뜨린느 드뇌브, 이안 헨드리

개봉 1965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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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 (1965)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반항>(<혐오>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역시 드뇌브의 대표작이다. <쉘부르의 우산>으로 세기의 스타가 된 그녀가 선택한 영화치고는 다소 파격적인 작품이다. <반항>은 <로즈메리의 아기> <테넌트>로 이어지는 ‘로만 폴란스키 아파트 3부작’의 첫 작품이다. 드뇌브는 성적 결벽증을 가지고 있던 캐롤을 연기했다. 홀로 아파트에서 지내던 그녀는 강박증을 넘어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고, 아파트에 찾아온 남자친구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영화의 시작은 드뇌브의 눈을 클로즈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반항>은 드뇌브의 매력에 기댄 영화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세브린느>
세브린느

감독 루이스 부뉴엘

출연 까뜨린느 드뇌브, 장 소렐, 미첼 피콜리

개봉 1967 프랑스,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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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린느> (1967)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세브린느> 역시 드뇌브가 출연한 또 다른 수작이다. <반항>보다 더 파격적인 영화인 <세브린느>에서 드뇌브는 우아하고 지적인 여인 세브린느를 연기한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충격적이다. 남편에게 끌려간 그녀는 재갈을 물리고 채찍질을 당한다. <세브린느>는 성적 억압 자유, 강박에 대한 영화다. 허문영 영화평론가는 “<세브린느>는 모든 규범에 똥 세례를 퍼붓는 영화였다”라고 썼다.

장 폴 벨몽도(왼쪽)와 함께 출연한 <미시시피의 인어>.
<트리스타나>
<리스본 특급>

카트린 드뇌브의 초기 대표작 세 편을 살펴봤다. 그밖에도 그녀는 1969년 누벨바그의 상징과도 같은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이 연출한 <미시시피의 인어>, 1970년 루이스 부뉴엘 감독과 다시 협업한 <트리스타나>, 1971년 ‘프렌치 누아르’를 대표하는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의 <리스본 특급>에 잇달아 출연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쉘부르의 우산>의 주느비에브로 기억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로만 폴란스키의 <반항>과 루이스 부뉴엘의 <세브린느> 등은 대중적인 영화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청춘스타의 길을 두고 드뇌브는 다소 힘든 선택을 했다. 어쩌면 1960년대 말 68혁명 등으로 체제에 반기를 들던 누벨바그의 시대 정신을 반영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1960년대 카트린 드뇌브는 자신의 역량을 발휘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가 됐고 거장의 영화에 출연해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여기까지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많은 여자 배우들이 경력과 비슷해보이기도 한다. 마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 그레이스 켈리, 잉그리드 버그만 등이 떠오른다. 이들은 가장 젊고 아름다운 시기에 배우로서 정점을 찍은 뒤 중년, 노년까지 배우 경력을 이어가지 못했다. 마릴린 먼로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고, 오드리 헵번은 간혹 영화에 출연했지만 자선사업가 쪽으로 더 유명해졌다. 그레이스 켈리는 모나코의 왕비가 됐고, 유부녀였던 잉그리드 버그만은 이탈리아의 거장, 로베트로 로셀리니 감독과의 결혼 이후 도덕적 비난을 받으며 할리우드에서의 경력이 단절됐다. 드뇌브는 다르다. 그녀는 쉬지 않고 수십년을 달려왔다.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여기 다 소개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기로 하자.

제라를 드바르디유(왼쪽)와 함께 출연한 <마지막 지하철>

1970년대 드뇌브는 <리자>(1972), <남자는 괴로워>(1973), <상류 사회>(1974), <낙원의 침입자>(1975), <라스트 부르맨>(1977), <사랑이여 다시 한번>(1979)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1960년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진 작품이 없다. 1980년대도 비슷한 양상이다. 1980년 드뇌브는 트뤼포와 다시 만난 영화 <마지막 지하철>에 출연했고, 1983년 토니 스콧 감독의 <악마의 키스> 출연진에 이름을 올렸다. 1984년 <사강의 요새>, <사랑할 때와 이별할 때>, 1986년 <도망자 마르뗑>에 출연했다.

린당 팜(왼쪽)과 함께 출연한 <인도차이나>
인도차이나

감독 레지스 와그니어

출연 까뜨린느 드뇌브, 벵상 뻬레, 장 얀느, 린당 팜

개봉 1992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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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차이나 (1992)
시간을 조금 뛰어넘어야 할 듯하다. 카트린 드뇌브의 이름이 다시 한번 널리 알려지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다. 드뇌브는 1992년 개봉한 <인도차이나>를 통해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녀의 유일한 오스카 경력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로서 그녀는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자르영화제에서 숱하게 후보에 오르고 수상의 영광을 안긴 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인도차이나>를 기억하는 건 오스카 트로피의 힘이 세기 때문이 아닐까. <인도차이나>는 1970~80년대 뜸했던 그녀의 이름을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각인시킨 작품이다.

얼렁뚱땅 19990년대로 넘어왔다. 1990년대에도 카트린 드뇌브는 쉬지 않았다. 1993년 <내가 좋아하는 계절>, 1994년 <체스 게임>, 1995년 <수도원>, 1996년 <도둑들>, 1998년 <방돔 광장>, 1999년 <폴라 X> 등에 출연했다.

비요크(왼쪽)와 함께 출연한 <어둠 속의 댄서>.
어둠 속의 댄서

감독 라스 폰 트리에

출연 비요크, 까뜨린느 드뇌브, 데이빗 모스, 피터 스토메어, 조엘 그레이, 카라 세이무어, 블라디카 코스틱, 쟝 마르 바, 빈센트 패터슨, 시옵한 폴론, 젤리코 이바넥, 우도 키에르

개봉 2000 덴마크,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미국, 영국, 핀란드, 노르웨이, 아이슬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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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의 여인들>
8명의 여인들

감독 프랑소와 오종

출연 다니엘 다리유, 까뜨린느 드뇌브, 이자벨 위페르, 엠마누엘 베아르, 화니 아르당, 비에르지니 르도엔, 루디빈 사니에, 휘르민 리샤르

개봉 2002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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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댄서> (2000), <8명의 여인들> (2002)
2000년 카트린 드뇌브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에 출연하면 다시 한번 존재감을 입증했다. 그녀는 더 이상 주연이 아니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다. 2002년 개봉한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8명의 여인들>도 드뇌브가 출연한 작품으로 빼놓을 수 없는 영화다. 1958년 출간된 로베르 토마의 희곡을 바탕으로 오종 감독이 각색한 뮤지컬영화로 카트린 드뇌브를 비롯해 다니엘 다리유, 비에르지니 르도엔, 뤼디빈 사니에르, 화이 아르당, 퍼민 리처드, 에마뉘엘 베아르, 이자벨 위페르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출연한다. 한때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드뇌브와 이자벨 위페르가 영화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점이 재밌는 지점이다.

<나쁜 사랑>의 카트린 드뇌브(가운데)와 실제 딸인 키아라 마스트로얀니(왼쪽), 샬롯 갱스부르.
나쁜 사랑

감독 브누와 쟉꼬

출연 샤를로뜨 갱스부르, 까뜨린느 드뇌브, 키아라 마스트로얀니, 브누와 뽀엘부르드

개봉 2014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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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 드뇌브의 출연작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2000년대로 넘어가보자. 2000년 중반 눈에 띄는 작품은 <크리스마스 이야기>(2008), <어머니와 딸>(2009), <빅 픽처>(2010),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2010), <비러브드>(2011), <나쁜 사랑>(2014), <이웃집에 신이 산다>(2015) 등이 있다.

특히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삶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에 드뇌브가 출연한 이유가 있다. 그녀는 최근 타계한 디자이너 지방시의 곁에 오드리 헵번이 있었듯, 이브 생 로랑의 영원한 뮤즈였다. 드뇌브는 샤넬 넘버5 향수의 모델이기도 했다. 그녀의 이름을 딴 제품도 있다.

<나쁜 사랑>에도 이야기거리가 있다. 드뇌브는 그녀의 딸 키아라 마스트로얀니와 함께 출연했다. 키아라는 드뇌브와 이탈리아 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은 결혼은 하지 않았다. 드뇌브의 첫째 아들 크리스티앙 바딤 역시 사실혼 관계였던 영화 감독 로제 바딤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들 역시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드뇌브는 한번 결혼한 적이 있다. 사진작가 데이빗 베일리와 1965년 결혼했다가 1972년 이혼했다.

카트린 드뇌브는 할리우드 영화에 많이 출연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국내에 개봉한 그녀의 영화를 많이 찾아보기 힘들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녀는 거의 쉬지 않고 영화에 출연해왔다. 카트린 드뇌브는 1960년대 등장해 찬란했던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배우가 아니다. 그녀는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이었으며, 청춘스타였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배우였다. 이제는 원로배우, 대배우의 칭호가 어색하지 않다. 다만 지난 1월 그녀는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에 기고한 글로 논란의 인물이 됐다. 드뇌브를 비롯한 프랑스 문화예술계 여성 100명이 공동으로 기고한 글은 미투 운동에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했다. “남성은 여성을 유혹할 자유가 있다”는 이 기고문을 통해 비난을 받았고 결국 사과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