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 재개봉, “저는 키팅 선생님을 보며 계몽되었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 재개봉 포스터(왼)와 과거 포스터
〈죽은 시인의 사회〉 재개봉 포스터(왼)와 과거 포스터

 

한때 한국 극장가가 이른바 ‘학원물’로 넘쳐나던 때가 있었다. 이미연 주연, 강우석 감독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1989년 7월에 개봉해 단관 개봉으로 20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한국영화 흥행 3위를 기록했다. 당시 홍콩영화의 전성기였기에 <첩혈쌍웅>과 <지존무상>에 조금 못 미치는 흥행을 기록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록이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흥행에 힘입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각본을 쓴 김성호 감독이 연출을 맡고 이미연이 주연을 맡은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1990), 보다 사회 비판의식을 담아내어 제43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 출품되고 제11회 영평상신인감독상도 수상한 황규덕 감독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1990), 결혼 전의 최수종과 하희라가 주연을 맡은 <있잖아요 비밀이에요>(1990), 고 최진실과 김보성이 주연을 맡은 속편 <있잖아요 비밀이예요 2>(1991), 이종원과 이주희 주연 <열일곱살의 쿠데타>(1991), 인기 가수 강수지가 주연을 맡고 안성기 배우가 담임 선생으로 출연한 강우석 감독 <열 아홉의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1991) 등이 서로 제목 길게 짓기 경쟁이라도 하듯 당시 한국영화의 흥행을 책임졌다. 제목 그대로 가져온 리메이크작이긴 하나 최근 개봉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가 반가웠던 이유도 바로 그 긴 제목 때문이었다.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왼)와 〈열 아홉의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 포스터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왼)와 〈열 아홉의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 포스터

 

올해 재개봉한 <죽은 시인의 사회>(1989)는 무려 25년 전인 1990년 5월, 그 유행의 한가운데 개봉했다. 미국 입시 명문고 웰튼 아카데미,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 학생들이 아이비리그로 진학하기 위해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는 곳이다. 새로 부임한 영어 교사 키팅(로빈 윌리엄스)은 자신을 ‘선생님’이 아닌 “오, 캡틴, 나의 캡틴”이라 불러도 좋다고 말하며, 독특한 수업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충격을 안겨 준다. 점차 그를 따르게 된 학생들은 공부보다 중요한 인생의 의미를 하나씩 알아가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를 위기로 여긴 다른 어른들은 키팅 선생을 견제하기 시작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위) 미드 〈하우스〉의 로버트 숀 레너드
〈죽은 시인의 사회〉(위) 미드 〈하우스〉의 로버트 숀 레너드

 

당시 우리는 교복 자율화 시대였으니 아이비리그 진학을 꿈꾸는, 근사한 교복을 차려입은 명문고 학생들의 이야기에 일단 눈길이 갔다. 게다가 바람이 불면 모래가 끝도 없이 휘날리는 운동장 하나만 달랑 가지고 있는 우리 현실과 비교해, 마치 대학 캠퍼스 수준인 <죽은 시인의 사회> 속 교정의 모습은 파라다이스 그 자체였다. ‘기숙사’가 주요한 배경으로 설정된 것에 더해 ‘고등학교에 호수가 있다니!’라는 감탄이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킨 것. 일단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배우를 꿈꾸는 닐 페리 역의 로버트 숀 레너드의 인기가 엄청났다. 인스타 디엠도 없던 시절, 당시 두 개의 영화잡지 「로드쇼」와 「스크린」에서는 팬레터를 모아 그의 ‘미국 회사’로 전달해주는 이벤트도 벌였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 이후 아쉽게도 승승장구했다고 보기 힘든 그는, 2003년부터 시작해 무려 8시즌까지 이어진 전설의 미드 <하우스>에서 그레고리 하우스(휴 로리)의 거의 유일한 친구 제임스 윌슨 역으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종양의학 전문의로 하우스와 달리 두터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환자와 임직원들 모두의 사랑을 받는 인물이었기에, <죽은 시인의 사회> 팬들은 ‘그때 배우 한다고 고집부리지 말고 부모님 뜻대로 의대에 갔으면 이렇게 됐겠지’ 하며 씁쓸함을 삼키기도 했다.

 

안성기, 문성근 배우가 각각 선생으로 출연한 〈열 아홉의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왼)와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
안성기, 문성근 배우가 각각 선생으로 출연한 〈열 아홉의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왼)와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

 

게다가 <죽은 시인의 사회>는 당시 한국 학원물들처럼 전형적인 모범생과 반항아 구도의 교실 내 교우관계를 과감히 탈피했다는 점도 신선했다. 가령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있잖아요 비밀이예요 2> <열 아홉의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 등에 출연한 김보성이 당시 그 반항아 역할을 독차지한 배우였고, <있잖아요 비밀이에요>와 <10대의 반항>(1991) 등에 출연한 김민종이 그 뒤를 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교내 폭력 문제와 연결된 ‘문제아’들이었던 반면,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학생들은 그저 밤에 몰래 모여 시를 쓰고 낭독하는 것이 가장 큰 일탈인 ‘무해한’ 친구들이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
〈죽은 시인의 사회〉

 

<죽은 시인의 사회>는 키팅 선생을 전면에 내세워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을 자제하고 학생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자질을 발굴하여 육성하려는 전인교육(全人敎育)을 강조했다. 우리 영화 중에서는 앞서 언급한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의 문성근, 장산곶매가 제작한 <닫힌 교문을 열며>(1992)의 정진영 배우가 그런 비슷한 참교육을 실천하는 선생으로 출연했다. 즉, 당시 학원물은 그보다 앞서 <진짜 진짜 잊지마>나 <고교 얄개>류의 코믹 학원물이 대세를 이뤘던 1970년대와 비교해, 1989년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가 결성되던(10년 뒤인 1999년 합법화) 사회 분위기와 맞물렸다. 억압적인 입시 위주 교육을 탈피하고자 했던 키팅 선생을 그즈음 한국화해서 말하자면 ‘전교조 선생’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죽은 시인의 사회〉 촬영 현장의 로빈 윌리엄스(왼)와 피터 위어 감독
〈죽은 시인의 사회〉 촬영 현장의 로빈 윌리엄스(왼)와 피터 위어 감독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의 첫 번째 수업부터 강렬하다. 키팅 선생은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지금도 통용되는 그 유명한 라틴어 문구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들려준다. 영화에서는 ‘현재를 즐겨라’라고 번역했는데, 키팅 선생은 ‘스스로 만족하고 살아라’부터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기 때문에 남다르게 살아라’ 등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음을 얘기해준다. 원전인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카르페 디엠’ 다음에는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라는 문장으로 이어진다. 즉, 미래는 알 수 없으니 젊은 현재에 마음껏 무엇이든 해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아무래도 키팅 선생에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첫 수업이었기에 한 학생이 옆 학생에게 묻는다. “이거 다음 시험에 나올까?” 한편, 나중에는 현재를 즐기라는 말을 오독한 학생도 있었다. 그로 인해 퇴학당한 학생에게 키팅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현재를 즐기라는 것이 장난을 치라는 게 아니다. 퇴학당하는 건 대담한 게 아니라 멍청한 거다. 한 번의 실수 혹은 장난으로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게 된 거다.”

 

〈죽은 시인의 사회〉
〈죽은 시인의 사회〉

 

첫 번째 수업에서는 드디어 책을 찢는 장면이 나온다. 교재인 J 에반스 프리처드 「시의 이해」에서 시를 가로축과 세로축으로 나눠 그 면적이 넓어야 좋은 시, 라는 저자의 말이 개소리라며 “시는 측량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서문을 찢어서 화장실 휴지로 써라”라고 말한다. 신나게 찢는 학생도 있지만 역시나 예쁘게 자로 대고 서문을 찢는 학생도 있다. 키팅 선생은 “진짜 말과 언어를 배워야 한다”며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시를 쓰는 것이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등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시와 낭만, 그리고 사랑은 삶의 목적 그 자체”라고 얘기한다. 그렇게 학생들은 키팅 선생에게 완벽하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
〈죽은 시인의 사회〉

 

재개봉한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면서 새삼 로빈 윌리엄스라는 대배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2014년 8월 로빈 윌리엄스가 세상을 떴을 때, 역시 그가 선생으로 출연한 <굿 윌 헌팅>(1997)과 함께 가장 많이 회자된 영화가 바로 <죽은 시인의 사회>였고, SNS 추모 글로 가장 많이 인용된 문구 역시 이 영화의 명대사 “캡틴, 오 마이 캡틴”이었다. 영화에서 책을 당장 찢어버리라고 말하는 파격적인 모습에 더해 <죽은 시인의 사회>는 희극인으로서 로빈 윌리엄스의 개인기가 뛰어나다. 그런 모습이 그의 인간적 매력과 카리스마를 강화시켰다. 가령 셰익스피어의 시를 학생들이 지겨워하니까 바로 말론 브란도나 존 웨인의 대사로 그 시를 읊으며 성대모사를 한다. 형에 대한 열등감, 아버지의 가스라이팅 등으로 늘 가족에 억눌려 우울하게 지내는 토드(에단 호크)가 처음으로 크게 웃는 순간도 바로 그 성대모사 장면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 토드(에단 호크)
〈죽은 시인의 사회〉 토드(에단 호크)

 

완전히 다르게 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순간도 토드와 함께 할 때다. 언제나 자신감 없이 주눅 들어 있던 토드의 야성을 끌어내어, 그가 자기도 모르게 멋진 시를 발표하게끔 만드는 장면의 원형 트래킹 숏에서는 <위플래쉬>(2014)의 ‘호랑이 선생’ 플레처 선생(J.K. 시몬스)이 떠오르는 것. 돌이켜 보면, <비포 선라이즈>(1995) 이전에 에단 호크의 존재를 처음 알린 영화가 바로 <죽은 시인의 사회>다. 생일에 부모로부터 선물을 받게 되는데, 작년과 같은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식의 생일에 별 신경을 쓰지 않다 보니 작년에 줬던 걸 또 준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 선물을 밖으로 내던지는 토드는 이렇게 말한다. “걱정 마, 내년에 또 받을 거니까.”

 

 

〈죽은 시인의 사회〉
〈죽은 시인의 사회〉

 

사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제목은 잘못된 번역이다. 오래전부터 교내에 존재한 동아리 혹은 써클의 이름이기에 <죽은 시인의 클럽> 정도로 번역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쩌다가 제목에 들어간 그 ‘사회’라는 단어가 이 영화의 가치를 보다 폭넓게 확장한 것 같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이미지는 책상 위에 올라간 키팅 선생과 학생들의 이미지다. 전자는 처음에 올라가고 후자는 라스트에 올라간다.

 

〈죽은 시인의 사회〉 토드를 시작으로(왼) 책상 위로 올라간 학생들
〈죽은 시인의 사회〉 토드를 시작으로(왼) 책상 위로 올라간 학생들

 

키팅 선생이 책상 위에 올라간 이유는 ‘색다른 시선으로 과감하게 부딪혀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결국 마지막 장면으로 이어진다. 키팅 선생을 한 학생의 죽음의 배후로 몰아 그를 쫓아내기 위해 학교가 일종의 계엄령을 발동한 순간, 학생들은 자신의 양심을 따르기로 한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이전의 나와 단절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그들을 책상 위로 오르게끔 한다. 그렇게 그들은 키팅 선생의 가르침을 말이 아닌 몸으로 이해한다. 가장 나약해 보였던 토드가 가장 먼저 용기 있게 나선다. 한 사람의 결단이 모두의 결단으로 이어지는 명장면이다. 키팅 선생은 다시 돌아올 수 없겠지만 학생들은 바뀌었다.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라는 숭고한 질문을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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