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 출신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플로우>가 제9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디즈니·픽사의 <인사이드 아웃2>를 꺾고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가져갔다. <플로우>의 수상은 라트비아 영화 최초의 오스카 수상작이자 380만 달러라는 다소 적은 예산으로 제작한 인디 애니메이션의 기념비적인 수상이라는 점에서 뜻깊다. 함께 후보작이었던 <인사이드 아웃2>의 제작비가 2억 달러라는 것을 고려하면, 두 영화의 제작 규모의 차이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플로우>는 이번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의 후보작 중 최저 예산으로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아카데미 무대에서 수상 소감으로 “이 영화가 전 세계의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자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대홍수가 세상을 덮친 후, 유일한 피난처가 된 낡은 배를 타고 항해를 시작한 고양이와 골든 리트리버, 카피바라, 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의 모험담을 그린 영화 <플로우>는 대사 없이 그들의 대서사시 같은 여정을 따라간다. 오로지 시각적 스토리텔링으로 서사를 전개해 나간 인디 애니메이션 <플로우>의 제작 과정을 들여다보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제작비의 50분의 1 수준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본래 작화부터 각본, 연출, 편집, 사운드 디자인까지 애니메이션 제작의 모든 단계를 홀로 담당해왔다. 그의 첫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어웨이>(2019)도 1인 제작으로 완성했다. <어웨이>로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콩트르샹 상을 수상하며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은 그는 두 번째 장편 영화 <플로우>에서 처음으로 팀과 협업하여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영화 속에서 외톨이 고양이가 다른 동물들과 만난 이후 용기를 내고 연대하는 법을 알아가는 것처럼 질발로디스 감독이 <플로우>를 만드는 과정 또한 그에게는 배움의 연속이었다.
<플로우>는 총 50명의 인원으로 만들었다. 감독의 말에 의하면,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참여한 인원을 제외한 핵심 인원만 추리자면 20명이라는 적은 인원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영화의 제작비인 380만 달러는 라트비아의 영화 산업 규모를 따져 보았을 때는 비교적 높은 수준이지만, 대부분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의 5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그는 한정된 예산을 탓하며 주저앉지 않고, 추구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무료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이용했다. 3D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인 ‘블렌더’는 게임을 만들 때 주로 사용된다. 이로 인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게임을 진행하는 플레이어가 되어 게임 속 가상 현실을 체험하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관객은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영화 속 고양이의 시점으로 동물들의 항해에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관습적인 표현 방식에서 벗어나다
<플로우>는 대사 없이 오로지 이미지와 사운드로 서사를 전개해 나간다.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첫 번째 단편이었던 영화 <러쉬>부터 두 번째 장편 영화 <플로우>까지 줄곧 대사 없이 시각적 스토리텔링만으로 승부하는 영화를 만들어 왔다. 그는 계속해서 대사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대사는 저에게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 저는 비주얼을 사용하는 것이 더 편하고 더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애니메이션은 특히나 실사영화보다 훨씬 더 세밀하게 이미지를 디자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점에 적합하다. 대사보다 비주얼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감독은 “<플로우>는 그렇게 들려줘야만 했던 이야기였다”고 덧붙였다. <플로우>는 동물 사이의 소통을 인간의 언어를 통해 들려주지 않음으로써 동물이 등장하는 여타의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섣부른 의인화를 피해 간다. 질발로디스는 여타의 애니메이션 속 동물들이 사람처럼 걷고, 말하고 행동하는 관습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실제 동물들의 습성과 울음소리를 반영했다. 감독은 귀랄 코이-갈라스(Gurwal Coïc-Gallas) 사운드 디자이너와 함께 동물의 소리를 최대한 현실과 비슷하게 담아내기 위해 많은 동물의 소리를 녹음해서 사운드를 만들었다. 그는 골든 리트리버가 꼬리를 흔드는 소리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풍속계를 이용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또 낮잠을 청하면서 한쪽 귀를 앞뒤로 움직이다가 기분 좋은 듯 골골 소리를 내는 고양이의 모습, 꼬리를 흔들며 제자리를 빙빙 도는 리트리버, 여러 잡동사니를 쟁여두는 욕심 많은 여우원숭이의 모습 등은 실제 동물들의 습성을 반영하여 동물들을 캐릭터화한다.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