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가 현실에 존재한다면? 슈퍼히어로 만화를 읽는 독자라면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을 질문이다. 최근에는 대세 장르로 자리잡은 슈퍼히어로 영화가 일 년에도 3편 이상씩 나오고 있기 때문에 굳이 상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엄밀히 말해 지금 나오는 슈퍼히어로 영화들은 어떻게 보면 만화나 판타지물에 가깝다. 좀 더 현실성 있는 슈퍼히어로물을 보고 싶다면 원작 만화로 눈을 돌려야 한다.


올해 시공사에서 정식 발매된 커트 뷰식과 알렉스 로스의 역작 <마블스>도 일반인의 시점에서 슈퍼히어로와 일반인이 공존하는 세상을 바라본 작품이다. 마블 코믹스의 역동기에 일어난 주요 사건들의 현장에 있었던 기자의 경험담을 그리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블스>의 주인공은 주인공보다는 방관자 또는 기록자에 가까운 위치에 있다.
2000년대 초반에 DC 코믹스에서 총 40호, 단행본 5권 분량으로 연재된 <고담 센트럴>이야말로 현실적인 슈퍼히어로 만화의 절정에 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에드 브루베이커, 그레그 러카, 마이클 라크의  합작인데,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에드 브루베이커의 이름이 익숙할 것이다. 원래는 누아르 장르의 정통 소설/그래픽 노블 작가였는데 슈퍼히어로 만화도 집필하고 있다. 그가 집필한 슈퍼히어로 만화들은 그런 이유로 전부 누아르나 첩보물 비슷한 성격이 강한데, 유명한 작품으로 국내에도 정식 발매되었고  영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각본에 일부 차용된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캡틴 아메리카의 죽음>이 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감독 조 루소, 안소니 루소

출연 스칼렛 요한슨, 크리스 에반스, 사무엘 L. 잭슨

개봉 2014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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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감독 안소니 루소, 조 루소

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크리스 에반스, 스칼렛 요한슨

개봉 2016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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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담 센트럴>은 배트맨이 활약하는 도시의 경찰국인 고담시 경찰국(GCPD)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이다. 배트맨의 협력자인 짐 고든 청장이 등장하기도 하나 카메오나 조연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이시리즈의 실제 주인공은 실제 배트맨 세계관에서 마이너 캐릭터에 지나지 않는 르네 몬토야 형사와 크리스퍼스 알렌 형사이다. 전혀 초인적 능력이 없는 이 둘이 고담시의 각종 강력 범죄에 맞서 고분군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이 상대해야 하는 적수는 일반적인 범죄자들이나 부패한 경찰 등 현실세계에서 볼 수 있는 이들도 있지만, 배트맨 세계관에서 등장하는 조커나 미스터 프리즈등의 강력한 슈퍼빌런도 있다. 일반인인 이들이 이러한 초능력자들과 맞서 싸우는 것을 관전하는 것이 이 시리즈의 진짜 재미이다.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만화이기 때문에 내용은 매우 건조하고 현실적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3부작이 현실적인 묘사로 극찬을 받았었는데 이 작품은 다크 나이트 3부작보다 더 현실적이다. 배트맨이나 여타 슈퍼히어로 영화들을 보면 ‘저 정도면 사람이 죽거나 크게 다칠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많지만, 관객들은 장르 영화의 특성이라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이 만화에서는 그런 경우에 사람들이 크게 다친다. 이 만화의 주인공들과 주변인들은 가족과 연인, 각자만의 생활과 고민거리가 있는 매우 입체적인 인물들이다. 전혀 만화 캐릭터같지 않은, 경찰서에 실제로 존재할 것 같은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인들이 광기 넘치는 미스터 프리즈 같은 초인적 능력의 슈퍼 빌런들과 마주했을 때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 가능성은 현실에서는 전혀 없는 것이다. 일반인이 초인과 맞서 싸웠을 때 승리하는 일은 만화에서나 가능하지만, 이 만화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다크 나이트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크리스찬 베일, 히스 레저, 아론 에크하트

개봉 200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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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유로 실제로 배트맨이 등장했을 때 독자가 느끼는 카타르시는 수십 배로 증가된다. 사랑하는 동료들을 해친 악당이 눈 앞에 있으나 그 악당을 물리칠 재간이 전혀 없는, 오히려 비슷한 끔찍한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우울하고도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등장하는 배트맨은 구세주에 가깝다. 배트맨이 악당들과 싸우는 것은 지면에서 그리고 큰 화면에서 수 백번 보아 왔지만 이미 공감대가 형성된 일반인의 일인칭 시점에서 그것을 목격하는 것은 매우 짜릿하고 신선한 경험이다. 작가들은 배트맨이 등장했을 때 그를 기록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실루엣만 그리거나 흐리게 처리함으로서 이러한 시각적 극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고담 센트럴>은 만화 그대로 드라마나 영화화해도 아무런 손색이 없는 휼륭한 작품이다. 실제로 <다크 나이트>의 각본을 쓴 데이빗 S. 고이어는 각본을 쓸 때 이 만화를 매우 많이 참고하였다고 하였다. 연재가 끝나기까지 드라마화에 대한 이야기가 수 차례 나왔으나 현실화되지 못하였고, 그나마 폭스에서 2014년부터 제작을 시작하여 시즌 5~6이 제작에 들어간 TV 시리즈 <고담>이 이 만화와 유사하나 현실성 면에서는 많이 부족하다. 만화 그대로 드라마화되었다면 HBO의 <더 와이어> 분위기의 명작이 되었을 텐데 팬으로서 아쉬움이 남는다.

고담

감독 대니 캐논

출연 벤자민 맥켄지, 숀 퍼트위, 다널 로귀, 에린 리차즈, 데이비드 매주즈, 로빈 로드 테일러

개봉 2014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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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서 / 그래픽 노블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