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파스타>

<PMC: 더 벙커>로 돌아온 이선균. “이번 영화에서도 버럭 연기 볼 수 있나요?” 그가 새 영화를 발표할 때마다 들어왔고, 듣고 있으며, 앞으로도 듣게 될 질문이다. 이선균이 ‘짜증계의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칭호까지 부여받을 수 있었던 건 단지 <파스타>의 버럭 셰프가 안긴 영광만이 아니다. “봉골레 하나”로 근 10년간 고통받는 그를 위해 이젠 다른 예시로 참신하게 물어주자. 달인 경지에 오른 배우 이선균의 독보적인 버럭 연기를 세 편의 영화에서 골라봤다.


<옥희의 영화>

Oki's Movie , 2010

감독 홍상수

출연 정유미, 이선균, 문성근

버럭 지수: ★★ (마음대로 화낼 수 없는 난감한 상황, 깊은 빡침)

네 개의 단편이 독립된 듯, 이어지는 듯 교묘하게 연결된 옴니버스 영화. <옥희의 영화>는 홍상수의 영화답게 일상 속의 모순 지점들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첫 번째 에피소드 <주문을 외울 날>에는 이선균의 빡침 연기가 돋보이는 폭소 유발 장면이 있다. 영화 좀 본 관객들이라면 감독과 관객이 영화 상영 후 대화를 나누는 GV(Guest Visit)의 분위기가 그려질 것이다. 이선균은 영화감독 남진구를 연기하고, 그의 영화 상영 뒤 이어진 GV에서 한 관객으로부터 “4년 전 내 친구와 사귀지 않았냐”하는 요의 카운터펀치급 질문을 받게 된다.

화난 표정의 관객은 집요하게 질문한다. “기억 안 나세요? 제 친구는 그때 결혼 약속한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폐인이 됐어요. 감독님 때문에.” 언제나 조심스럽고 엄숙한 공기로 가득한 GV 시간, 사적인 치부를 공개 처형당하고 만 남 감독의 난감함은 영화 내내 낄낄거리던 관객들을 폭소의 장으로 이끈다.

“그게 질문입니까? 어떻게 그런 게 질문입니까? 당신이 뭔데 저한테 그런 질문을 하는 거죠? 저는 생각이 안.납.니.다. 제가 감독이 되고 나니깐 이런저런 소문이 굉장히 많습니다. (헛웃음) 하지만 여기 GV에서, 그런 질문을 해가지고 다른 사람들한테 잘못된 생각을 심어주는 건 정말 잘못된 거 아닙니까? 아니 나는 그런 적이 없어요. 쉬운 말이라고 함부로 지껄이고 그러지 마요 제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깔리고, 어질어질해진 남 감독의 표정이 클로즈업 된다. 홍상수 영화 특유의 조소를 극대화하는 대목이다.


<화차>

Helpless , 2012

감독 변영주

출연 이선균, 김민희, 조성하

버럭 지수: ★★★★★★★ (이보다 억울한 사람 본 적 있나요)

변영주 감독의 <화차>에는 이선균의 분노가 그야말로 폭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비부부인 문호(이선균)와 선영(김민희)은 청첩장을 드리러 시댁에 내려가는 중이다. 그런데 문호가 커피를 사러 다녀온 사이 선영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실종 신고를 하고 집으로 가보니 선영이 급하게 짐 싸 떠난 흔적이 역력하고, 그녀의 직장은 존재한 적 없던 유령 회사. 캐면 캘수록 문호가 알던 선영은 선영이 아니었다. 그녀는 실제 강선영의 이름을 도용해 살고 있었던 것.

거액의 보험금을 수령했다는 점으로 살인사건 가능성을 제시하는 형에게, 문호는 ‘선영이에 대해서 뭘 아느냐’고 소리쳐 보지만 정작 본인도 그녀 이름 하나 모르게 된 상황이다. 진짜 강선영의 존재부터 파악하기 위해 그녀의 고향 제천에 가본 문호. 동네 주민에게 사진을 들이밀어 보지만 주민은 되려 선영의 행방을 물으며 위협적으로 나온다. 여기서 이선균의 화는 폭발하고 만다.

동네 주민의 사정까지는 알리 없으나, 지금 당장 문호는 미칠 노릇이다.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가 갑자기 사라진 것도 모자라 그녀의 정체도 불분명해졌으니. 그래도 그 정체 찾겠다고 이까지 왔는데 억울하게도 제압을 당하자 문호는 온갖 정돈되지 않은 육두문자를 허공에 날린다. 이 외침은 1분간 이어지고 얼이 빠진 주민은 그런 문호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밖에. 화를 주체하지 못한 문호는 차 사이드미러를 부수고 결국 바닥에 드러누워 하늘을 향해 포효한다.

야 이 XXX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이 XXX야! XX 진짜. 야! 어우! 어우. 야 이 XX 야! XXXX! XX 진짜! 왜 그래 나한테! XX 진짜! 야! 왜! 왜 나한테 그래 왜 나한테 XX이야. 야 이 XXX야! 내가 뭘 잘못 했는데! 이 XXX들, XXX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뭘! 뭘!! 뭘!!!!! 이 XX. 어우. 어우.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끝까지 간다

A Hard Day , 2013

감독 김성훈

출연 이선균, 조진웅

버럭 지수: ★★★★ (버럭보다는 초조함 폭발하는 연기)

주의! <끝까지 간다>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선균의 초조한 연기는 미스터리 장르에 최적화됐다. 지은 죄를 들킨 남자, 그리고 여유 있는 태도로 그를 압박하는 남자의 호연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영화 <끝까지 간다>. 고건수(이선균)는 10년차 형사다. 갑작스러운 내사 감찰로 인해 비리가 드러날 위기에 처한 그는 어머니의 상을 치르는 와중 경찰서로 급히 향한다. 그러나 발등에 불 떨어진 그의 과속 운전은 사고를 부르고, 저 멀리 보이는 경찰차를 보곤 우발적으로 사체를 숨기고 말았다. 고건수의 운명은 이렇게 시작부터 초조함 속에 쫓기고 있지만, 그는 낭떠러지 앞에서도 쥐구멍을 찾는 사람이다. 하지만 더 집요한 이 영화는 그의 멱살을 놓아줄 생각이 없다.

위기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머니의 장례도 당장 급한데 비리가 드러나게 생겼고, 사람을 치고 시체는 차에 숨겼다. 장례식에서 마신 술 때문에 음주단속에 걸린 것도 모자라 어머니의 관 속에 시체를 숨긴다. 이 황당한 이야기는 궁지에 몰린 사람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위기는 끝이 아니다. 뺑소니 현장의 목격자라는 박창민(조진웅) 경위는 고건수가 친 남자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맘만 먹으면 곧 신고라도 할 것처럼 압박하는 그가 고건수에게 원하는 것은 바로 어머니의 관에 함께 묻은 그 시체다.

조진웅은 약점 하나로 고건수를 조련하는 박창민을 무자비함과 여유를 동시에 지녀 더 섬뜩한 인물로 묘사한다. 고건수의 심장은 한층 쪼그라들었다. 이선균의 짜증 연기는 영화 곳곳에 널려 있지만, 그 백미는 영화 후반부에 나온다. 박창민에게 결국 시체를 전달하기로 하지만 안심할 수 없는 고건수는 시체 속에 폭탄을 숨긴 상태. 시체를 넘겨주고 버튼까지 눌렀으니, 단 몇 분 안에 시체 곁을 떠나야 하는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창민은 등 뒤에서 총을 겨누고 만다. 까딱하면 먼저 죽게 생긴 고건수의 초조함은 극강의 임기응변으로 명장면을 탄생시킨다.

야야야야 잠깐. 야! 나도 XX 형사 짬밥이 10년인데 XX 달랑 권총 하나 들고 왔겠냐 XX? 잠깐만. 너 XX 지금 나 죽이잖아? 그럼 예약된 메일 하나가 아침에 경찰서로 날아가 너. 네가 그동안 마약 빼돌려 X 먹은 거 그거···(중략)···까지 다 적혀있어. 네가 잘못한 것 중에 극히 일부겠지만. 최소한 무기징역 나온다에 내가 18만 원 건다 XXXX야. 그래 쏴봐 이 XX. 쏠 거야? 쏴 봐. 같이 죽든가. 쏘지 않을 거면 이 총 치워라, XX. 시간 가니까.


씨네플레이 심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