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의 세계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동궁' 인터뷰 ③ 이목원 미술감독

박정훈 촬영감독, 김승규 조명감독, 이목원 미술감독 등 〈동궁〉의 베테랑 제작진이 생생한 제작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동궁〉 대본을 처음 봤을 때 느낀 점은?

톤이 좋았다. 판타지 사극은 많이 시도 됐지만, 사극의 시대 배경과 설정이 과하게 부각되지 않는 차분한 미술을 하고 싶었다. 〈동궁〉이라면 그런 미술적 표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고 절제된 분위기 속에서 세계관이 스며들 수 있다고 느꼈다.

두 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세트를 구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은 무엇인가.

현실 세계와 귀의 세계는 형태적인 차이보다 질감과 빛의 톤에서 변화를 주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판타지 설정이 강한 작품일수록 공간의 형태를 과장하거나 시각적으로 강한 장치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보다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설득력 있는 귀의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 현실과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라기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감각을 주는 공간을 지향했다. 특히 귀의 세계는 차갑고 어두운 이미지로만 표현하기보다 공간마다 서로 다른 정서와 분위기를 담아내는 데 집중했다. 이를 위해 질감의 밀도, 공기의 흐름, 빛의 방향성과 농도 같은 요소들을 세밀하게 조정하며 현실 세계와 귀의 세계의 차이를 표현하고자 했다. 같은 장소라도 빛이 머무는 방식이나 공기의 무게감이 달라 보이도록 설정해 시청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세계의 변화를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감독님과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귀의 세계가 단조롭게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부분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귀매가 등장할 때마다 공간 자체가 인물의 정서와 연결되어 보이길 바랐고, 이를 통해 귀의 세계가 살아 있는 공간처럼 느껴지기를 원했다. 예를 들어 정여우후와 관련된 공간은 바람과 소리를 중요한 요소로 설정했다.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천이 흔들리거나 미세한 움직임과 울림이 느껴지도록 구성해, 공간 안에 끊임없이 흐르는 기운을 표현하고자 했다. 반면 세자 귀신과 연결된 공간은 물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접근했다. 젖어 있는 듯한 질감이나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 흐릿하게 반사되는 빛을 활용해 깊고 침잠된 감정을 담아내고 싶었다. 쌍두사목의 경우에는 어둠 자체가 공간의 일부처럼 느껴지길 바랐다. 단순히 조도를 낮추는 방식이 아니라, 빛이 공간 안으로 충분히 스며들지 못하는 느낌과 형태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 불안감을 통해 존재의 성격을 표현하고자 했다.

디테일에 가장 공을 들인 장소는?

모든 공간에 애정을 가지고 작업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은 궁녀 귀신들의 불당 세트다. 궁녀 귀신의 핵심 콘셉트가 ‘불’이었던 만큼 공간 안에서도 불의 기운과 에너지가 살아 있기를 바랐다. 안전상의 이유로 실제 화염은 VFX 작업으로 보완했지만, 단순히 후반 작업에 의존하기보다는 실제 질감을 최대한 구현하고 싶었다. 특히 기둥이나 벽면 자체에 불에 타버린 흔적과 내부에서 불기운이 스며 나오는 느낌을 표현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실제로 벽면을 직접 파내고 불에 그을린 작화를 입힌 뒤, 내부에 LED 조명을 설치해 마치 나무 안쪽이 계속 타오르고 있는 듯한 질감을 만들었다. 단순히 빛이 비치는 것이 아니라 공간 내부에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세트 제작 과정도 쉽지 않았고 촬영 역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완성된 화면에서는 실제 불의 온도감과 공간의 긴장감이 잘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가 큰 공간이다.

촬영이 기대됐던 장면과 가장 어려웠던 장면을 고른다면.

〈동궁〉은 ‘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현실 세계에서 귀의 세계로 진입하는 구조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이 장면이 비주얼적으로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하면, 이후 이어지는 판타지 세계관 전체의 힘도 약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작품 안에서 중요한 장면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단순히 분위기 있는 장소를 찾기보다는, 어느 정도 규모감이 있으면서도 세트 작업과 라이팅, 촬영까지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특히 현실적인 공간 안에서 물이 가진 낯설고 비현실적인 감각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촬영 환경과 비주얼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고, 현실 세계와 귀의 세계를 연결하는 작품의 첫인상을 효과적으로 만들어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의상과 소품 콘셉트에 대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기본적으로는 조선 시대 복식을 바탕으로 작업하되, 작품이 가진 판타지적인 분위기에 맞춰 자연스러운 변주를 주고자 했다. 인물의 정서와 공간의 분위기가 함께 느껴질 수 있는 방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인물마다 색감과 소재의 질감을 조금씩 다르게 설정했다. 같은 한복이라도 빛을 받았을 때의 느낌이나 옷감의 무게감이 다르게 보이도록 조절해 각 인물의 성격과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길 바랐다. 특히 귀의 세계와 연결된 인물들은 현실적인 복식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느낌이 스며들 수 있도록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 소품 역시 같은 방향으로 접근했다. 오래된 목재의 질감이나 손때가 묻은 흔적, 금속의 바랜 느낌을 통해 공간 안의 시간성과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었다. 결국 복식과 소품 모두 과하게 장르적으로 보이기보다 작품 전체의 톤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방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작업했다.

주요 귀매와 귀신들의 형상을 구현한 과정이 궁금하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는 작품인 만큼, 익숙한 해외 판타지나 크리처 장르의 전형적인 이미지들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으려는 고민이 컸다. 단순히 강렬하고 자극적인 형태를 만드는 것보다 한국적인 정서와 설화에서 출발한 비현실적 존재들을 어떻게 지금의 감각으로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을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각 귀매의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한국 설화나 전통적인 이미지 안에서 묘사된 특징들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했다. 다만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각각의 귀매가 가진 감정과 기운을 하나의 콘셉트로 정리해 시각적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형태 자체를 과하게 변형하지 않고 분위기와 움직임, 공간의 질감까지 함께 연결해 각 존재의 성격이 드러나도록 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쌍두사목은 ‘어둠’을 중심으로 접근했다. 단순히 검고 무서운 존재가 아닌 형태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불안감과 빛이 닿지 않는 공간의 압박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실체보다 그림자나 기운이 먼저 느껴지도록 연출했고, 공간 안에서도 어둠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정여우후는 바람, 세자 귀신은 물이라는 콘셉트를 캐릭터와 공간에 덧입혔다. 한국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판타지 장르 안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추는 데 가장 많은 고민을 했다.

〈동궁〉의 관전 포인트를 꼽아 달라.

〈동궁〉은 유달리 질감에 많은 신경을 쓴 작품이다. 각 귀매들의 콘셉트가 단순히 캐릭터 설정에 머무르지 않고, 그와 연결된 공간의 분위기와 질감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도록 작업했다. 각 장면을 보실 때 귀매의 성격과 함께 그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질감, 빛, 형태들을 함께 느끼면서 봐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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