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5월 9일(목) 올레TV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 극장에 걸리지 않았지만 이대로 놓치기 아쉬운 영화들을 한 주에 한 편씩 소개합니다.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남녀가 길을 걷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말도 오가지 않지만, 둘의 사이엔 표현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신뢰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참을 걷더니, 여자가 묻습니다. “후회 안 하겠어?” 남자가 답합니다. “이처럼 확신이 든 적은 처음이야.” 얼굴을 맞대며 키스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흐뭇한 미소가 사라지기도 전, 남자와 여자가 구치소에서 만나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두 사람에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거장과 기대주가 손을 맞잡을 때

타렐 앨빈 맥크래니(왼쪽)와 베리 젠킨스

베리 젠킨스는 2016년 첫 장편 <문라이트>를 세상에 내놨습니다. 타렐 앨빈 맥크래니의 연극 <달빛 아래에 흑인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를 각색한 <문라이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동성애자를 주인공으로 합니다. 한 인물에게 리틀, 샤이론, 블랙이란 아이덴티티를 부여해 3막으로 풀어낸 <문라이트>는, 미국 사회의 소수자를 섬세한 심리 묘사와 부서질듯 찬란한 영상미로 그려 평단의 호평과 관객들의 열광을 모두 잡았습니다.

<문라이트>

<문라이트>로 소수자들의 지지를 받은 베리 젠킨스는 차기작으로 제임스 볼드윈 작가의 <이프 빌 스트리트 쿠드 토크> 영화화를 맡습니다. 제임스 볼드윈. 한국 대중들에겐 조금 낯선 이름이죠. 그의 작품은 국내에 정식 출간된 작품이 거의 없으니까요. 반면 미국 사회에서 제임스 볼드윈은 문학으로 흑인 사회를 조명해 사회의 변혁을 도운 흑인 문학의 기수이자 상징적인 존재입니다(이에 관해선 다큐멘터리 <아임 엠 낫 유어 니그로>를 참고하면 좋습니다.)

<아임 엠 낫 유어 니그로> 제임스 볼드윈 (가운데 선글라스를 착용한 인물)

그런 제임스 볼드윈의 작품을 택한 베리 제킨스는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으로 지금까지도 미국 사회를 사로잡고 있는 편견의 시선들을 포착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 사이에서도 인간으로 살아남고 싶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열망도요. 멜로 드라마와 사회 드라마 사이,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은 설레기에 안타깝고 두렵기에 용감해지는 순간들을 포착합니다.


베리 젠킨스식 멜로 드라마

포니와 티시

1970년대 뉴욕 맨하튼 할렘 지역에서 자란 티시(키키 레인)와 포니(스테판 제임스). 각자의 부모님이 친한 덕분에, 두 사람도 소꿉친구로 자랍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포니는 티시를 사랑한다 고백하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됩니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것도 잠시, 포니가 강간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사건에도 포니는 구속되고, 티시는 임신한 몸으로 가족들과 함께 포니의 무죄를 입증하려 합니다.

베리 젠킨스는 이 법정 드라마처럼 보이는 스토리를 뒤섞습니다. 티시의 관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서술 방식을 선택해 관객들의 감정이 극한의 행복과 불안감을 오가게 하죠. 티시와 포니는 누구보다 행복했지만 지금은 사회의 편견에 부딪혀야만 하니까요. 요즘 말로 ‘단짠단짠’의 연속입니다.

먼저 이 둘의 관계를 바라보는 베리 젠킨스의 섬세함이 눈에 띕니다. 티시와 포니가 처음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감독은 아주 긴 호흡의 롱테이크로 선택했습니다. 심의를 피해가겠다는, 혹은 더 자극적으로 만들겠다는 듯한 짧은 컷들의 격렬한 몽타주 대신 부끄럽지만 서로를 열망하는 두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을 담습니다. 2분 이상 지속되는 침묵은 섹슈얼리티가 아닌 서로 다른 존재 간 교류의 아름다움을 성취하죠.

<문라이트>를 보신 관객이라면, 베리 젠킨스과 제임스 렉스톤 촬영감독이 인물의 얼굴을 얼마나 입체적으로 담아내는지 아시겠죠?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도 마찬가지입니다. 티시가 “그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임을” 깨닫는 장면이나, 저녁을 나누며 서로를 바라보는 티시와 포니의 눈빛은 관객의 마음에도 연애세포를 심어줍니다.


제임스 볼드윈식 사회 드라마

티시의 엄마 샤론 역은 레지나 킹이 연기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단짠’의 드라마입니다. 둘의 사랑이 만개할 듯하다 작금의 현실이 신랄하게 다가옵니다. 포니는 사건 당시 알리바이가 있지만 그걸 증명할 친구가 전과자라서 무시당합니다. 포니를 체포한 경찰은 끝내 지목을 번복하지 않고요.

영화는 자연스럽게 포니의 결백을 증명하는 티시와 가족들의 움직임을 따라가지만, 희망보다는 절망이 점점 커집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거죠. ‘백인 경찰에게 지목 당한 흑인 용의자’란 조건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조차 뛰어넘는 것이니까요.

(왼쪽부터) 포니, 티시, 포니의 친구 다니엘

제임스 볼드윈이 티시와 포니의 일화로 형상화하는 당시 사회엔 그게 당연시했던 거죠. 한 인물의 말을 빌리자면 “(백인)놈들이 우리를 벌벌 떠게 만드는” 게 법의 테두리 안에서도 암묵적으로 이뤄지니까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을 “흑진주”라고 희롱하고, 남성에겐 일단 의심의 눈초리부터 보내는 일상이었습니다.

베리 젠킨스 감독은 <문라이트>에서 제시한 동성애와 흑인 사회 중, 전자를 잠시 내려두고 후자를 더욱 빡빡하게 그려냅니다. 티시와 포니의 이야기 틈새로 당시 사회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전반적으로 잔잔한 영화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목조목 사실을 제시하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감각을 안겨줍니다.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에 등장하는 사진들


지금도 유효한 메시지, 편견에는 사랑을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흑인 영화라면 조금 멀게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다민족국가가 아니라 인종에 대한 이야기는 체감이 쉽게 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은 1970년대 미국이 아닌 현재 우리 사회에도 충분히 통용되고 있습니다. 편견, 혐오에 맞설 사랑의 이야기니까요.

극중 티시와 포니는 함께 살 집을 구합니다. 쓸만한 집을 소개해준 레비(데이브 프랭코)에게 포니는 묻습니다. “흑인 둘을 친절하게 대하는 이유가 궁금해서요.” 사회의 편견에 노출돼있는 그들은 호의조차도 덥썩 받을 수가 없었던 거죠. 그때 레비는 답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기 좋을 뿐이에요.”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영화 속 뉴욕처럼 극단적이지 않지만, 한국 사회도 어느 순간부터 ‘혐오’가 주요 정서로 거론되고 있죠. ‘싫어한다’는 사전적 의미 말고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고자 생성하는 편견과 멸시’라는 사회적 의미도 결코 먼나라 얘기가 아닙니다. 정치, 젠더, 계급 등 우리는 수많은 혐오를 서로에게 가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사회의 우리가 레비의 대사를 접하면 어쩐지 숨이 멎습니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을 미워할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는 늘 사랑을 갈망하는 걸요. 하지만 동시에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밀어내고 수용하지 않으며 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은 제임스 볼드윈이 서술한 1970년대를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혐오 사회는 여전하다고 말이죠.

물론 거창하게, 혹은 감상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라, 그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은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들려줍니다. 티시와 포니, 티시와 가족들, 그리고 드물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들을 거쳐 ‘사랑’의 의미를 확장해 나갑니다. 그리하여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은 우리가 살아가는 힘은 바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설령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더라도요.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