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개봉해 소수의 관객에게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낸 공포영화 <미드소마>의 감독판이 개봉됐다. 일반판보다 23분이 늘어난 버전은 영화 속 악명높은 고어신들이 대거 늘었고, 인물의 관계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이 추가됐다. <미드소마>처럼 후에 공개된 감독판이 개봉판보다 더 좋은 인상을 남겼던 사례들을 정리했다.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

리들리 스콧 감독은 SF영화의 금자탑 <블레이드 러너> 감독판을 영화가 처음 공개된 지 10년이 지난 1992년에 내놓았다. 대개의 경우와 달리 <블레이드 러너> 감독판의 러닝타임은 일반판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내용을 뜯어보면 두 판본의 차이는 영화를 완전히 뒤집어버릴 만큼 다르다. 먼저 지나치게 친절하고 느끼하기까지 한 내레이션이 걷어내 영화 속 미래 도시의 모호한 분위기를 한껏 키웠다. 데커드(해리슨 포드)가 유니콘 꿈을 꾸는 막간의 신을 추가해 그가 실은 인간이 아닌 레플리컨트일지 모른다는 암시를 담았다. 그리고 엔딩신, 데커드와 레이첼이 LA를 탈출하는 모습을 빼고 단순히 문이 닫히는 걸로 맺는다. 그마저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개봉 25주년을 맞은 2007년엔 화면의 색조를 그린에서 블루로 바꾸고, 미장센을 보완하고, 폭력 수위를 높이는 등 자잘한 변화를 더한 '파이널 컷'을 발표했다.


킹덤 오브 헤븐

Kingdom of Heaven, 2005

리들리 스콧의 '감독판'이라면 <킹덤 오브 헤븐>도 빼놓을 수 없다. 2005년 5월 <킹덤 오브 헤븐>이 공개될 당시 "<글래디에이터>를 찍었던 리들리 스콧이 이렇게 엉성한 전쟁 사극을 찍다니" 같은 혹평이 잇따랐다. 반응은 그해 연말, 2차 매체를 통해 50분을 확장한 193분짜리 감독판이 공개되면서 확 달라졌다. 감독판은 사건들의 개연성과 결말이 유독 헐거웠던 일반판의 편집을 보강하는 식으로 채워졌다. 캐릭터의 정보가 풍부해져 그들의 활약상이 더욱 돋보였고, 행동의 인과관계가 정확해져 서사의 흐름이 그제서야 매끄러워졌다. 감독판과 극장판을 함께 공개하려고 준비했던 리들리 스콧은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 과한 편집으로 극장판을 완성한 걸 후회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트로이

Troy, 2004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를 바탕으로 트로이 전쟁을 그린 <트로이>. 2004 아테네 올림픽에 맞춰 개봉한 <트로이>는 3년 뒤 러닝타임이 33분이 확장한 감독판이 다시 공개됐다. 인트로부터 다르다. 간략 역사적 배경 설명이 끝나자마자 아킬레스(브래드 피트)의 전투 장면을 붙였던 것과 달리, 감독판은 노쇠한 개가 전쟁에서 주검이 된 병사의 얼굴을 핥는 걸 보여주면서 전쟁의 무상함을 일찌감치 일깨웠다. 전쟁의 스케일보단 인간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던 볼프강 파터슨 감독은 각 인물들을 세부적으로 보여주는 신들을 대거 살려 서사의 맥락과 캐릭터의 정서를 살리는 데에 주력했다. 인물의 대화가 넉넉해지면서 캐릭터 간의 관계도 보다 뚜렷해졌다. 한편, (한국 기준) 일반판은 15세 관람가, 감독판은 청소년 관람불가를 판정 받았는데, 전투/침략 신 수위가 상당히 강해져 전쟁의 야만성을 보다 확실히 드러냈다. 볼프강 피터슨은 1997년 러닝타임을 무려 1시간 가량 늘린 <특전 U보트>(1981)의 감독판을 발표한 바 있다.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 1988

영화 그리고 극장에 대한 향수로 한국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 영화가 최초로 공개된 1988년 칸 영화제에서는 '신 시네마 천국'이라는 제목으로 155분짜리 오리지널이 상영되고 이탈리아에서도 개봉됐지만 흥행에는 참패했다. 해외에는 123분짜리 편집판이 개봉해 성공을 거뒀다. (1990년에 개봉해) 한국 관객들의 추억에 자리한 <시네마 천국>이 이 편집판이다. 오리지널과 편집판의 결정적인 차이는 영화 후반부 중년이 된 토토가 엘레나를 재회하는 시퀀스의 유무다. 두 사람이 이별하게 된 사연이 자세하게 설명되는 이 대목이 있음으로서 토토의 젊을 적 추억은 산산조각 나게 된다. 이게 없는 편집판은 온전히 노스탤지어를 밀고 나간 버전인 셈. 편집판이 더 많은 사랑을 받은 걸로 보아 관객은 현실보다는 추억을 더 원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신 시네마 천국'은 1993년 한국에서도 개봉했고, 2002년 공개된 감독판은 오리지널과 기본적인 틀은 같되 몇몇 자잘한 장면을 추가한 것이었다.


슈퍼맨 2

Superman II, 1980

<슈퍼맨 2>의 감독판은 '리처드 도너 컷'으로 불린다. <슈퍼맨>(1979)의 감독 리차드 도너는 1편과 동시에 2편을 만들고 있었는데, 프랑스 투자자 피에르 스팽글러가 오락성보다는 완성도에 만전을 기했던 도너를 해고시키고 감독 자리에 리처드 레스터를 앉혔다. 당시 도너의 <슈퍼맨 2>는 70% 이상 촬영이 진행된 상태였고, 결국 <슈퍼맨 2>는 리처드 레스터가 상당부분을 다시 찍은(도너의 촬영분도 일부 포함된) 버전으로 개봉됐다. '리처드 도너 컷'은 슈퍼맨 역의 크리스토퍼 리브가 세상을 떠난 후 도너의 촬영분이 꽤 남아 있을 거라는 코멘트를 본 팬들이 제작사에 열렬한 요청을 보내, 2006년 처음 세상에 나왔다. 레스터 버전엔 2편엔 빠졌던 말론 브란도의 신을 비롯해 클라크가 슈퍼맨이라는 걸 로이스가 알게 되는 계기, 슈퍼맨과 로이스의 잠자리가 슈퍼맨이 인간이 되기 전에 이뤄지는 점, 결말이 키스로 기억을 지우는 게 아닌 슈퍼맨이 지구를 돌아 시간을 되돌리는 걸로 설정된 점 등이 다르다. 러닝타임도 11분 짧다. 촬영분이 온전치가 않기에 군데군데 성긴 부분이 있지만,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 1979

베트남 전쟁에 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로 손꼽히는 <지옥의 묵시록>. 초기 편집본은 5시간 반이 넘었지만 재정문제와 할리우드 시스템의 압박으로 147분으로 영화를 완성했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근 20년이 지난 후 TV로 <지옥의 묵시록>을 보다가 이 난해한 영화를 이제 많은 관객들이 이해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오랜 편집 파트너 월터 미치와 함께 본래 의도에 가까운 새로운 판본을 작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2001년 칸 영화제를 통해 처음 193분 분량의 '리덕스'가 공개됐다. 전체 줄거리에 큰 변화는 없지만, 윌라드 대위(마틴 쉰)의 감정 변화가 뚜렷해지자 결국 커츠 대령에게로 흘러들어가는 여정에 설득력이 붙었고, 후반부에 프랑스인 농장에서 벌어지는 베트남전에 대한 논쟁이 추가돼 반전에 대한 목소리도 더욱 짙어졌다. 한편 코폴라는 올해 4월 '리덕스'보다 20여 분 덜어낸 '파이널 컷'을 처음 선보였고, 4K 복원된 이 버전은 8월 15일과 18일 일부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상영됐다.


심연

The Abyss, 1989

제임스 카메론은 <에이리언 2>(1986), <심연>, <터미네이터 2>(1991), <아바타>(2009) 등 기발표작의 특별판을 자주 발표해왔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건 카메론의 유일한 흥행 실패작으로 기록된 <심연>의 확장판이다. 1993년 레이저디스크를 발매를 기념하며 일부 장면을 재편집해 171분으로 완성된 버전은, 애초 카메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거대한 쓰나미가 전세계 대도시를 덮치는 신을 포함하고 있다. 제작사가 극장 수익을 빌미로 러닝타임을 줄이라고 요구했고, 카메론은 시사회에서 그 장면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 관객들이 많자 결국 잘라냈던 것이다. 예전에 작업했던 신을 그냥 붙인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터미네이터 2>의 흥행으로 받은 50만 달러를 투자해 <심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카메론 영화의 CG를 작업한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 매직'과 함께 쓰나미 신을 완성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

1984년 5월 칸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러닝타임은 3시간 49분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개봉한 버전은 2시간 19분, 무려 90분이 잘려져 나갔다. 분량이 줄은 것뿐만 아니라 편집의 방향 자체가 달라졌다. 원래 나이든 누들스(로버트 드 니로)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1921년, 1932년, 1968년이 플래시백으로 뒤죽박죽 교차되던 구성을, 미국의 배급사는 그냥 연대기순으로 이어붙어버렸다. 한국에 개봉한 버전은 거기서 폭력적인 장면이 더 잘려나갔다고.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생전에 번번이 다른 대답을 내놓는 바람에, 수많은 판본이 존재하는 걸로 정평나 있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결정판'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2015년 4K 리마스터링을 거쳐 복원된 4시간10분 버전이 감독의 의도에 가장 잘 부합한다고 알려져 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