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나 힐의 감독 데뷔작 <미드 90>은 1996년 LA 팜스에 사는 소년 스티비(서니 설직)의 성장담이다. 스케이트보드 문화와 90년대 힙합에 대한 애정이 물씬한 영화는 그 제목처럼 90년대 중반뿐만 아니라 전세대에 걸친 명곡들을 다수 배치해 열세 살 소년이 경험하는 일탈과 감정들을 전한다.

****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The Start of Things

Trent Reznor and Atticus Ross

<미드 90>의 사운드트랙은 <소셜 네트워크>(2010), <나를 찾아줘>(2014), <버드 박스>(2018) 등의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 듀오가 만들었다. 9백만 달러가 든 초저예산 영화였지만, <소셜 네트워크>에서 그들과 작업한 바 있는 프로듀서 스콧 루딘 덕분에 가능했던 프로젝트다. 조나 힐과 레즈너-로스 듀오는 스카이프로 소통했고, 힐은 "어린 시절의 의기양양함, 혼란, 고통을 수식하는 소리"가 따뜻하게 들렸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그들이 완성한 4개의 트랙은 조나 힐이 직접 고른 명곡들 사이에 배치돼 주인공 스티비의 심정을 대변한다. 'The Start of Things'는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스티비가 방에 들어가지 말라는 형 이안(루카스 헤지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곧장 달려가 포스터, CD, 잡지 등 힙합 관련 자료, 조던 농구화와 옷가지를 구경할 때 몽롱하게 울린다. 이제 막 멋진 걸 추구하고 싶어진 13살 소년이 별천지 같은 세계를 몰래 구경하는 희열과 불안을 머금은 앰비언트 사운드 아래 모든 것이 시작된다.


93 'Til Infinity

Souls of Mischief

앞으로 제 집처럼 드나들게 될 스케이트보드 가게에 처음 들어갔을 때 그 안에서 플레이 되고 있던 노래. 소울스 오브 미스치프의 '93 'Til Infinity'다. <미드 90>의 배경인 1996년 L.A는 투팍(2Pac), 닥터 드레(Dr. Dre), 스눕 도기 독(Snoop Doggy Dogg) 등 웨스트코스트 갱스터랩이 호령했는데, 재즈를 주로 샘플링한 비트와 복잡한 속내를 표현하는 라임을 내세웠던 소울스 오브 미스치프는 어떤 대안 같은 존재였다. 형의 CD를 보며 래퍼들의 이름을 메모하던 스티비에게 '93 'Til Infinity'는 전혀 처음 들어본 스타일의 힙합이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세계에서 만난 새로운 힙합이랄까. 스티비가 레이(나켈 스미스)의 무리에 섞여 흑인도 햇볕도 피부가 타는가에 대한 시덥잖은 대화를 듣고 있을 때 (말소리에 묻혀 작게) 들리던 'Sucka Nigga'의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역시 소울스 오브 미스치프와 접점이 많은 팀이었다. (음악이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레이가 스티비에게 대뜸 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스티비는 "흑인이 뭐예요?"라는 센스 있는 답을 돌려준다. 스티비가 '선 번'이 되는 순간.


Wave of Mutilation (U.K. Surf)

Pixies

픽시즈의 'Wave of Mutilation'을 듣다보면 "90년대 음악만 쓴 게 아니네?" 하고 중얼거리게 된다. 'Wave of Mutilaion'은 픽시즈의 최고 앨범으로 손꼽히는 1989년 작 <Doolittle>에 수록된 곡인데, <미드 90>에는 앨범보다 1달 늦게 나온 'Here Comes Your Man'의 싱글 B사이드로 실린 U.K. 서프 버전이 실렸다. 원곡의 강렬한 디스토션의 기타 소리가 빠져서 파도가 넘실대는 것 같은 나른한 리듬과 격앙되는 멜로디가 확연히 돋보인다. 만화 포스터를 떼어내 잡지에서 뜯어낸 페이지로 벽을 채우고, 형한테 게임 팩을 팔아 닌자거북이로 장식된 유치한 보드를 사서 밤이고 낮이고 보드 타기를 연마하는 2분 남짓한 대목이 'Wave of Mutilation'과 함께 평화로이 흘러간다.


Gyöngyhajú lány

Omega

어느 날 레이의 무리는 안전한 공터가 아닌 꽤 넓은 구렁텅이가 있는 지붕에서 보드를 연습한다. 헝가리의 프로그레시브록 밴드 오메가의 'Gyöngyhajú lány'가 살짝 안 어울리게 터져 나온다. 레이와 존나네(올란 프레나트)는 당연한 듯 점프에 성공하지만, 루벤(지오 갈라시아)은 결국 포기하고 만다. 간밤에 드디어 점프를 성공한 기쁨과 형한테 얻어맞은 분노를 경험했던 스티비는 호기롭게 출발한다. 거진 6분에 육박하는 'Gyöngyhajú lány'은 러닝타임 사이 여러 차례 강약을 조절하는데, 조나 힐은 짧은 시간에 그 강약 사이를 확 좁히게 편집해서 스티비가 점프를 시도하는 그 순간에 또 한번 강렬하게 연주가 터지는 부분을 넣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음악은 멎어버린다.


Watermelon Man

Herbie Hancock

종종 <미드 90>가 영화가 아닌 뮤직비디오처럼 보일 때가 있다. 스티비와 친구들이 여자 애들과 파티를 벌이는 신과 허비 행콕의 'Watermelon Man'의 관계가 특히 그렇다. 'Watermelon Man'은 행콕이 1962년 데뷔 앨범 첫 머리에 배치했던 곡을 1973년 자신이 이끌던 퓨전재즈 밴드 헤드헌터스(The Headhunters)와 재해석한 트랙이다. 밴드의 퍼커셔니스트 빌 써머스(Bill Summers)가 맥주병 소리와 추임새로 아프리칸 리듬을 깔으면서 시작해 그 위로 기타, 베이스, 키보드가 더해져 금세 풍성한 앙상블을 만들어내면 스티비와 친구들은 어느새 여자 애들과 마시고 떠들고 있다. 영화는 한술 더 떠, 'Watermelon Man'의 훵키한 리듬에 이미지를 딱딱 맞춰 편집하는 잔기교까지 선보인다. 멋부리려다가 아예 밸런스를 놓아버렸다는 인상을 안긴다.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Live)

Nirvana

남자가 되고 싶은 소년은 술에 잔뜩 취했고, 곁에는 자기보다 성숙한 여자가 있다. 다음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 이 대목은 흥분보다는 불안이 앞선다. 우리는 이미 스티비가 낯선 남자(보드를 비롯한 서브컬쳐 영화계의 거장 하모니 코린이 연기했다)가 지퍼를 올리며 엄마(캐서린 워터스턴) 방에서 나오는 걸 봤고, 형이 엄마의 달갑지 않은 과거에 대해 말해준 걸 알기 때문이다. 집 안에서 오랫동안 울리는 너바나의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는 처음엔 나지막한 커트 코베인(Kurt Corbain)의 음성 때문에 그 순간을 더욱 섹시하게 만들지만, 코베인의 노래가 점점 절규가 되면서 스티비의 오늘밤이 첫경험의 기억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일으킨다. 스티비가 친구들한테 자랑을 늘어놓고 헤어진 후에도 밤은 계속 이어진다. 이 시퀀스를 장식한 너바나의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는 평소 코베인의 애창곡이었던 (블루스 뮤지션 리드벨리가 재해석한) 민요를 <MTV Unplugged> 무대의 피날레로 부른 라이브 음원이다.


We'll Let You Know

Morrissey

<미드 90>엔 스티비가 LA의 4차선도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두 번의 롱테이크가 있다. 처음은 레이의 무리 모두와 함께, 나중은 레이와 단둘이다. 전자는 마마스 앤 파파스(The Mamas and the Papas)의 'Dedicated to the One I Love', 후자는 모리시의 'We'll Let You Know'이 BGM로 깔린다. 둘 모두 저절로 가슴이 뜨겁게 하지만, 그토록 동경하던 레이에게서 그와 친구들의 속사정을 듣게 된 후 듣는 'We'll Let You Know'의 감동이 더 큰 게 사실이다. 도로를 지날 때뿐만 아니라 그들이 한동안 시간을 보냈던 공간들을 밤새껏 돌아다니는 여정 내내 들을 수 있다. 1982년 데뷔해 5년간 활동하는 동안 영국 최고의 록 밴드로 손꼽혔던 더 스미스(The Smiths)의 프론트맨 모리시가 1992년 발표한 이 노래는, 8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록스타가 시적인 노랫말과 아름다운 목소리로 90년대의 아이들에게 위로하는 것처럼 들린다. 'We'll Let You Know'가 아침의 기운에 묻혀 사라지면 지자(GZA)의 힙합 트랙 'Liquid Swords'가 잠든 두 친구를 깨운다.


Passin' Me By

The Pharcyde

아마도 조나 힐이 가장 좋아하는 90년대 힙합 뮤지션은 파사이드인 것 같다. 영화 초반부 스티비가 형에게 생일선물로 주(고 이안은 민망하다는 듯이 받)는 CD는 파사이드의 두 번째 앨범 <Labcabincalifornia>였고, 스티비 무리가 보안경찰과 실랑이를 벌일 때 나오던 음악은 그들의 'I'm That Type of Nigga'였다. 그리고 <미드 90> 마지막을 파사이드의 'Passin' Me By'가 장식한다. 1992년 데뷔 앨범 <Bizarre Ride II the Pharcyde>에 수록된 'Passin' Me By'는 장르불문 90년대 최고의 싱글을 꼽는 리스트에서 자주 등장할 정도로 힙합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트랙이다.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Jimi Hendrix Experience)의 'Are You Experienced?'에서 노이즈 잔뜩 낀 채 삐걱대는 기타를, 퀸시 존스(Quincy Jones)의 'Summer In The City'에서 바람 빠진 듯한 올갠을,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의 '125th Street Congress'에서 "둠둠 둠둠 둠둠" 베이스를 샘플링 한 비트 위에 4명의 멤버가 각자 어린 시절 짝사랑 했던 여자와의 추억을 풀어놓는다. '90년대', '유년 시절', '미성숙한 남자' 등 <미드 90>의 키워드에 두루 부합하는 선곡이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