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개봉해 이제 막 데뷔작을 내놓은 아리 애스터 감독을 단숨에 할리우드의 기대주로 떠오르게 한 <유전>이 다시 한번 한국 극장가에 상영되고 있다. <유전>에 관한 갖가지 사실들을 정리했다.


___ <유전>은 디오라마와 실제를 연결하면서 시작한다. 절대자가 희생물을 바라보는 느낌을 주기 위해 집에서 벌어지는 신은 방음 스튜디오를 개조한 공간에서 촬영됐고, 천장과 벽이 없어서 보통 방에서 촬영할 때보다 더 먼 곳에서 배우들을 찍었다.

___ 아리 애스터는 시나리오를 작업하기도 전에 모든 등장인물에 대한 상세한 전기를 썼고, 아직 로케이션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75페이지에 달하는 촬영 리스트를 만들었다. 토니 콜렛은 아리 애스터가 지금껏 자신이 함께 일한 이들 중 가장 준비성이 투철한 감독이라고 말했다.

___ 토니 콜렛은 사실 공포영화를 선호하지 않는다. 무겁고 어두운 영화가 아닌 코미디만 작업하길 원했지만, 전형적인 공포영화가 아닌 <유전>의 시나리오가 너무 마음에 들어 결국 애니 역을 고사할 수 없었다. 공개 이후 <유전>의 애니 역은 콜렛의 커리어 최고 연기라는 극찬이 쏟아졌다.

___ 아리 애스터는 전통적인 호러의 ‘깜짝 놀래키기’(Jump Scare)에 기대는 것보다 감정을 사로잡는 방식을 공포를 추구했다.

___ 조앤이 애니에게 칠판으로 영혼을 불러들이는 걸 보여주는 신. 특수효과 팀은 분필과 칠판 아래에 자석을 다는 방식으로 분필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분필 안에 자석을 넣어 부드럽게 글씨를 쓰게 하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웠다고.

___ 피터 역의 알렉스 울프에 따르면, 영화의 첫 편집본이 3시간을 훌쩍 넘겼고 편집된 대부분이 가족의 대화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___ 촬영은 유타 주 파크시티, 솔트레이크시티, 샌디 등에서 32일간 진행됐다. 아리 애스터는 유타를 둘러싼 산들이 숨막힐 정도로 아름답지만, 그만큼 위협적이고 불길하다고 생각해 촬영지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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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트리트먼트>

___ 가브리엘 번과 알렉스 울프는 HBO 드라마 <인 트리트먼트>에서도 부자지간으로 출연한 바 있고, 울프와 밀리 샤피로는 프로페셔널 칠드런 스쿨 동문이라 이미 서로 알고 있었다. 토니 콜렛만 이들과 연이 없었던 상황은 애니가 가족 내에서 느끼는 소외감을 반영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___ 아리 애스터는 알렉스 울프와 밀리 샤피로가 영화 속 캐릭터로서 바깥에 나가 함께 밥 먹고 오기를 청했다. 샤피로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몇 시간 사이, 울프는 그녀가 입을 열게끔 무던히도 애썼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

___ 로버트 레드포드의 <보통 사람들>(1980), 이안의 <아이스 스톰>(1997), 토드 필드의 <침실에서>(2001), 로만 폴란스키의 <로즈메리의 아기>(1968), 니콜라스 뢰그의 <지금 보면 안돼>(1973), 잭 클레이튼의 <공포의 대저택>(1961). 아리 애스터가 <유전>을 연출하면서 영향 받은 작품들이다. 앞선 세 작품은 가족 드라마, 후자는 고전 공포영화다. 애스터는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마주한 고통에 관한" 이야기로서 <유전>을 써내려갔고, 배우와 스탭 역시 호러가 아닌 가족 드라마라고 여기며 작업했다.

<로즈메리의 아기>

___ 콜린 스텟슨은 <유전>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걸어다닐 때 들리는 물이나 동물 소리”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했다고 한다. 음악이 깔리는 순간에도 찰리의 “똙” 소리가 묻히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터. 어느 순간 귀에 그 음악이 ‘감지’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끊임없이 신경을 긁기 시작한다. 전체 127분 러닝타임에 85분 동안 음악이 사용됐다.

___ 미술감독 그레이스 윤은 이교도 의식과 사이비 종교를 조사해 세트 디자인을 완성했다. 그가 <유전> 바로 직전에 작업한 영화는 에단 호크가 신부로 출연한 <퍼스트 리폼드>(2017)였다.

<퍼스트 리폼드>

___ 피터가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첫 번째 신, 칠판에는 “운명을 탈출하는 것”이라고 쓰여져 있다. 공포영화의 고전 <할로윈>(1978) 속 주인공은 수업시간에 바로 그 주제에 대해 토론한다. <유전>은 <할로윈>의 2018년 리부트작 예고편이 공개된 날에 개봉했다.

___ 호주의 한 도시에서는 전체관람가 영화 <피터 래빗>(2018) 상영 전 <유전> 예고편이 나오는 바람에 아이들이 충격에 빠져 모두 상영관을 빠져나왔다. 극장은 스크린을 끄고 모든 관객들에게 무료관람권을 제공했다고.

___ 토니 콜렛은 페인트 시너 신을 위해 물에 흠뻑 젖은 옷을 입은 걸 촬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1990년 <밀러스 크로싱>의 가브리엘 번 / 1994년 <뮤리엘의 웨딩>의 토니 콜렛

___ 부부를 연기한 가브리엘 번과 토니 콜렛은 사실 22살 차이다. 번이 코엔 형제의 <밀러스 크로싱>에서 주연으로 활약했을 1990년 당시 콜렛은 10대였고 아직 첫 영화를 찍기도 전이었다.

___ 마감 기한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애니는 갤러리로부터 전시 날짜에 대한 전화 메시지를 받는데, 아리 애스터가 그 목소리를 맡았다.

___ 부서진 가족을 보여주는 건 <유전> 이전에 발표한 단편에서부터 아리 애스터의 꾸준한 관심사였다. 석사 졸업 작품으로 만든 단편 <존슨 가에 관한 기묘한 것>(2011)은 아들에게 성적으로 학대당하는 아버지, 2013년 발표한 16분짜리 단편 <뮌하우젠 증후군>(2013)은 아들이 대학을 그만두는 걸 막기 위해 독을 먹이는 어머니가 주인공이었다.

___ 피터가 책상에 얼굴을 처박는 신은 스턴트를 쓰지 않고 알렉스 울프가 직접 찍었다. 사실 울프는 실제 책상에 박아서 코가 부러져도 상관없다며 감독을 설득했지만, 애스터는 그런 위험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전장치가 책상 절반에만 적용된 탓에 결국 울프는 턱이 나가는 부상을 입고 말았다.

*** 스포일러성 정보가 있습니다 ***

___ 애니가 어머니 유품인 책에서 보이는 파이몬은 잘려진 머리 셋을 들고 있다. 어머니가 차고 있는 목걸이의 문양 역시 사람의 머리 3개가 겹쳐 있는 듯한 모양새다. 조앤의 집, 피터와 찰리가 파티로 향하는 중에 잡히는 나무에서도 그 문양이 있음을 똑똑히 보여준다. 애니의 어머니, 애니, 애니의 딸 찰리 모두 머리가 잘려 희생되고 나서야 결국 건강한 남성인 피터의 몸으로 이동하고야 만다.

___ 영화 속 찰리는 찰리 몸에 깃든 파이몬이다. 감독의 말에 의하면, 태어났을 때부터 찰리는 파이몬의 숙주였다. 수업시간에 만지고 있던 장난감에 비둘기 머리를 잘라 왕관을 씌워놓은 것이 조앤이 떠나버린 집에서 발견되는 등 사실 찰리가 파이몬의 숙주라는 걸 상정하고 영화를 따라간다면 더욱 많은 실마리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___ 애니가 남편이 불타는 애비활활 모습을 보며 절규하는 모습은 딱 한 테이크 만에 완성됐다. 이 숏은 영화의 마지막 촬영이기도 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