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왼쪽)와 엔니오 모리꼬네.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 엔니오 모리꼬네가 지난 7월 6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을 기리며, 1960~70년대 모리꼬네가 작업한 갖가지 장르의 오리지널 스코어들을 자기 영화에 배치해 애정을 드러내온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리꼬네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받은 <헤이트풀 8>(2015) 속 음악들을 곱씹어본다.


L'ultima diligenza di Red Rock

ENNIO MORRICONE

쿠엔틴 타란티노는 <킬 빌> 시리즈(2003~4), <데스 프루프>(2007),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 등 연달아 엔니오 모리꼬네가 남겨 놓은 과거의 명곡들을 영화 곳곳에 사용했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5)는 모리꼬네의 오리지널 신곡 ‘앙코라 퀴’(Ancora Qui)를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본 이후 모리꼬네는 다시금 타란티노와 작업하지 않겠노라고 밝힌 바 있지만, 그 다음 영화 <헤이트풀 8>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모리꼬네가 맡게 됐다.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1992) 이래 줄곧 기존의 음악들로만 영화음악을 구성했던 타란티노에게도 첫 오리지널 스코어인 셈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가 눈을 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목상을 클로즈업 하는 것에서 시작해 저 멀리서 힘차게 달려오는 마차가 프레임을 빠져나가는 과정을 롱테이크로 담은 <헤이트풀 8>의 2분 30초 간의 오프닝 시퀀스 속 ‘룰티마 딜리젠사 페르 레드 락’(L'ultima diligenza per Red Rock)은 모리꼬네와 타란티노 세계에 입성했음을 자명하게 알려준다. 눈(雪)을 뜻하는 제목의 ‘네베’(Neve)는 여러 버전이 영화 곳곳에 삽입돼 <헤이트풀 8>의 서스펜스를 극대화한다. 수차례 아카데미 시상식 영화음악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모리꼬네는 <헤이트풀 8>으로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Regan's Theme

ENNIO MORRICONE

오랜 설왕설래 끝에 워렌 소령(새뮤얼 L. 잭슨)이 존 루스(커트 러셀)와 그가 교수형 시키고자 잡아두고 있는 데이지 도머그(제니퍼 제이슨 리)가 탄 마차에 올라타고 눈 덮인 광야를 달리는 모습은 ‘레이건의 테마’(Regan's Theme)와 함께 한다. 그런데 레이건이 누구지? 이 곡 역시 엔니오 모리꼬네의 작품이긴 하지만, <헤이트풀 8>의 오리지널 스코어가 아닌, 모리꼬네가 1977년 발표한 <엑소시스트 2> 스코어에서 가져온 것이다. <엑소시스트> 시리즈의 주인공 레이건(린다 블레어)를 위한 테마다. 워렌, 존, 데이지 세 사람은 물론, 마차를 끄는 오비와 워렌이 잡아놓은 죄수들까지 한데 실은 마차를 끌고 가는 말 두 마리의 힘겨운 움직임을 가깝고 느리게 쳐다보는 모습이 ‘레이건의 테마’의 성스러운 곡조와 함께 펼쳐진다. 공포영화의 스코어가 서부극에도 이렇게 잘 들어맞는다.


Apple Blossom

THE WHITE STRIPES

데이지는 존에게 붙들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다. 워렌이 존을 추켜세우자 데이지는 “베짱은 있는데 머리는 영 별로야, 얕은 우물에 다이빙 할 사람이지”라 말하고 존에게 얻어맞는다. 그 꼴을 보고 존과 워렌이 웃으니, 데이지는 워렌을 보고 입맛을 다시며 기분나쁜 미소를 짓다가 금세 심각해지는 걸 반복한다. 나중에서야 알게 될 일이지만, 데이지의 이런 태도는 예상치도 못하게 여정을 같이 하게 된 워렌이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걸 직감하고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일 터. 차마 웃기도 좀 그런 광경에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애플 블러섬’(Apple Blossom)이 붙는다. 화이트 스트라입스가 서서히 인디 신의 강자로 떠오르던 2000년 발표한 앨범 <더 스테일>(De Stijl)에 수록된 노래다. 쟁쟁거리는 기타에 아슬아슬 노래하는 잭 화이트의 목소리가 얹어지는 노래가 이 상황의 엉뚱함을 한껏 살린다. 드럼과 피아노가 더해져 꽤나 그럴듯한 분위기가 되면 눈발을 뚫고 미니의 잡화점을 향해 달리는 바깥 풍경이 이어진다. 잭 화이트가 운영하는 음반 회사 서드 맨(Third Man)은 <헤이트풀 8> 사운드트랙의 LP를 제작했다.


Jim Jones at Botany Bay

JENNIFER JASON LEIGH

워렌 소령이 노인 장교에게 그의 아들을 능욕했다는 걸 말해주면서 (모리꼬네의 ‘네베’가 특히 인상적으로 쓰인 대목이다) 도발해 결국 그를 정당방위로 죽이는 시퀀스를 지나, 데이지는 누군가 커피 포트에 독약을 타는 걸 발견하곤 대뜸 기타를 집어 들어 노래를 부른다. ‘짐 존스 앳 보타니 베이’(Jim Jones at Botany Bay), 19세기 초부터 전해져 1907년 처음 녹음된 호주의 민요다. 밀렵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화자 짐 존스가 유배지로 떠나던 중 해적을 만나게 되면서 생기는 사건을 노래하는 곡이다. 평소의 째지는 듯한 목소리가 아닌 꽤나 나긋나긋 듣기 좋은 목소리로 음울한 곡조를 노래하는 제니퍼 제이슨 리의 목소리에 긴장이 누그러지다가도, 노래하는 데이지가 존과 오비가 커피를 마시는 걸 힐끗힐끗 살피는 걸 보면 또 다른 긴장이 피어난다. 존에게 듣기 좋다는 칭찬을 받고 계속 노래를 이어가던 데이지는 때가 되었다고 느꼈는지 “결국 난 쇠사슬을 끊고 숲속으로 떠나리라. 존, 넌 곧 죽을 거고 난 멕시코로 떠날 거야”라고 노래해 존의 속을 긁는다.


Bestiality

ENNIO MORRICONE

결국 데이지는 존에게 기타를 빼앗기고 다시 쇠사슬이 채워진다. 그 순간 엔니오 모리꼬네의 ‘비스티얼리티’(Bestiality)가 튀어나온다. 이 곡 역시 <헤이트풀 8> 오리지널 스코어가 아닌, 그가 음악을 맡은 존 카펜터의 SF 걸작 <괴물>(1984) 스코어의 일부다. 처음엔 현악기들이 장난스럽게 울리다가 여러 악기들이 겹쳐지면서 순식간에 텐션을 높여버리는 음악은, 독이 든 커피를 마신 존이 과연 언제쯤 죽게 될지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게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괴물> 스코어 중 3곡을 <헤이트풀 8>에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괴물>이 <헤이트풀 8>을 연출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밝힌 바 있다. <괴물>은 한파로 뒤덮인 한정된 공간에 여러 사람들이 어우러져 갈등에 휩싸이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고, 이 영화의 주연 배우는 바로 <헤이트풀 8>에서 존을 연기한 커트 러셀이다. 쇠사슬을 채우고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존은 흥건히 피를 토해내고,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의심으로 가득했던 미니의 잡화점은 순식간에 살육의 현장이 된다. 창공을 가르는 비행기마냥 굉음을 쏟아내던 음악은 데이지가 존에게 총구를 겨누자 바로 멎는다.


Now You're All Alone

DAVID HESS

<헤이트풀 8>의 다섯 번째 챕터 ‘4명의 승객’은 미니의 잡화점이 어떻게 괴한들에게 접수되었는지 보여주는 시퀀스다. 데이지의 오빠 조디 도머그(채닝 테이텀)의 일당들은 데이지와 존이 눈보라를 피해 미니의 잡화점에 들를 걸 예상하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죽인다. 백인인 노인 장교만 빼고. 처참한 살육이 끝나려던 찰나 조 게이지, 아니, 그라우치 더글라스(마이클 매드슨)는 도망친 흑인을 잡고자 밖으로 나온다. 데이비드 헤스의 노래 ‘나우 유어 올 얼론’(Now You're All Alone)은 살인보다는 소복이 쌓인 새하얀 눈에 더 어울린다. 어쿠스틱 기타 위로 흐르는 감미로운 목소리는 눈발을 흩날리는 바람 같다. 하지만 그라우치는 묘하게 웃음을 흘리며 하얀 눈밭에 정직하게 새겨진 핏자국을 따라간다. 노래가 너무나 청아하기 때문에 머잖아 죽음으로 이어질 풍경이 더욱 비정하게 보인다. ‘나우 유어 올 얼론’는 <스크림> 시리즈의 감독 웨스 크레이븐의 데뷔작 <왼편 마지막 집>(1972)의 사운드트랙에 수록됐다.


There Won't Be Many Coming Home

ROY ORBISON

<헤이트풀 8> 속 ‘성난 8인’은 결국 모두 죽는다. 존의 뜻을 따라 데이지를 목매달아 놓고 서서히 흘리며 죽어가던 워렌과 크리스(월터 고긴스)는 링컨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침묵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엔딩곡은 로이 오비슨의 ‘데어 원트 비 매니 커밍 홈’(There Won't Be Many Coming Home)이다. 1950~60년대 전성기를 누린 로큰롤 아티스트 로이 오비슨은 어마어마한 인기에 힘입어 웨스턴 영화 <패스티스트 기타 얼라이브>(1967)에 주연으로 출연하고, 오랜 작곡 파트너 빌 디스와 함께 영화 사운드트랙까지 만들었다. <패스티스트 기타 얼라이브>의 엔딩곡이 바로 ‘데어 원트 비 매니 커밍 홈’였다. 제목처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두 사내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듯한 노래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