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MCU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히어로와 빌런의 싸움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꽤 오랫동안 인기 있었다. 사람들을 별 이유도 없이(혹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괴롭히고 이상한 욕망을 실현하려고 애쓰는 범죄자들의 따귀를 거세게 날려 주고 감옥에 가두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도움을 준 이들에게 쿨하게 인사를 날리며 유유히 하늘로 날아가는...!! (슈퍼히어로 장르의)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이야말로 유구한 인기를 누려 오지 않았나.

영화관을 나오면서 찝찝한 기분을 털어낼 수 없어 괜히 팝콘통에 남아 있는 옥수수 껍질에 화풀이를 하거나 같이 본 사람과 영화의 마무리에 대해 불평해 본 기억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아닐 수도 있지만..). 물론 창작자 입장에서야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두는 '열린 결말' 같은 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꽉 막힌 해피엔딩을 원한다. 열린 결말에서 가정해 볼 수 있는 불행의 가능성 따윈 현실에서도 충분히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주피터스 레거시>를 보고 난 감상이 딱 그랬다. 연달아 본다고 해도 5시간에 달하는 분량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솔직히 유쾌하지도 통쾌하지도 않다. 흥미로운 지점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뭔가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기생충>의 그 찝찝함이 중요한 과제를 대충 제출해 버린 기분이라면 <주피터스 레거시>는 데드라인이 지났는데 제출을 못 한 느낌이다.


<주피터스 레거시>의 세계에서 '더 유니온 오브 저스티스'라는 이름의 이 히어로 팀은 리더 '유토피안' 셸던 샘슨을 중심으로 100여 년의 시간 동안 지구상의 평화를 위해 싸워 왔다. 이들의 정체는 딱히 숨기지도 가리지도 않는데, 이미 그들의 얼굴과 이름은 물론이고 가족관계와 능력까지 전 세계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피터스 레거시>의 극중 시점에서 그들은 위기에 봉착해 있다. 오랫동안 지켜 온 신념은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유니온의 창립멤버였던 이들은 이제 체력도 힘도 예전에 비해 떨어졌다는 것을 느끼며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그리고 또 다른 사건을 막아내고 스스로의 신념을 지켜 가기 위해 다시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세대교체'는 히어로 무비 프랜차이즈의 대명사가 된 MCU 타이틀에서도 진행 중인 소재다. 어벤저스 1세대를 이끌었던 히어로들이 하나둘 은퇴했고, 다음 히어로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가 페이즈 4의 주요 내용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쪽의 세대교체와 이쪽의 세대교체는 결이 다르다. <주피터스 레거시>의 히어로들은 유전을 통해 초능력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셸던 샘슨을 비롯한 6명은 히어로로 거듭나게 되고, 그들의 아이들은 초능력을 타고나게 된다. 즉 고통스러운 시련 끝에 힘을 얻었던 1세대와 달리 2세대는 날 때부터 능력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시작점도, 방향성도 다른 이 히어로들의 갈등은 가장 인간적인 부분에서 시작되며, 인류의 영웅인 동시에 한 가정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여야 하는 역할의 공존을 다룬다.

불살의 원칙을 내세우는 '더 유니온 오브 저스티스'는 범죄자를 죽이지 않으면 그들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히어로가 범죄자를 죽여도 되는가? 그들의 정의에 생명의 가치를 판가름 지을 수 있는 무게감이 존재하는가?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방영된 시리즈 <더 보이즈>에서 이미 제시되었던 이 질문을 <주피터스 레거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던지고 있다.

이 시리즈는 전반적으로 셸던 샘슨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다. 그가 왜 유토피안이 되었나 다루는 동시에 100년 가까이 유토피안으로 살아온 현재, 그의 본래 자리를 넘겨주어야 하는 시점에서 지난날을 돌이켜 보아야만 하는 상황에 이른다. 두 아이들은 그가 원하는 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스스로는 예전만 못한 능력과 힘의 한계를 느끼고 있으며, 오래된 갈등은 결국 폭발하여 위기로 발전하고야 만다. 그걸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1시즌에서는 아직 제시되지 않는다.

과제를 마무리하지 못한 느낌은 여기에서 온다.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사건을 진행시켜 나가는 동안 제시되었던 문제는 단 한 가지도 해결되지 않았다. 장장 5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을 지나면서 셸던은 아버지로서 자식들과의 사소한 갈등 하나 해결하지 못했으며 부인과도 여전히 문제를 남겨두고 있다. 거기에 가장 오래된 갈등인 형 월터와의 문제는 해결의 단초조차 제시한 적이 없으며 그가 고민하는 것은 결국 자신 안의 정의일 뿐인 것처럼 보인다.


영화와 TV 시리즈가 가장 다른 점은 러닝타임의 차이일 것이고, 여기에서 관객 집중도 차이에 대한 문제도 파생될 수도 있다. 어두운 상영관에서 스크린에 집중하는 2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관객은 제 발로 박차고 나가지 않는 한은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 시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지만 TV 시리즈, 거기에 넷플릭스라는 OTT 플랫폼을 통해서라면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넷플릭스 앤 칠(Netflix and Chill)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이제 넷플릭스를 위시한 OTT 서비스는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 빈틈에 자리하고 있다. 즉 집중해서, 다른 데 시선을 두지 않고 완전히 몰입하게 하느냐는 결국 스토리 자체가 갖는 흡인력과 매력에 있다. 언제든 일시정지를 하고 꺼버릴 수도 있고, 시청 기록에서 콘텐츠 자체를 날려 버릴 수도 있는 데다 정액제 스트리밍이므로 작품에서 하차하는 데 부담조차 없다.

때문에 OTT 플랫폼의 자체 제작 콘텐츠일수록 관객을 몰입하게 하는 요소는 더 강력하고 매력적이어야만 할 것이다. 언제든 부담 없이 꺼버릴 수 있는 콘텐츠인데, 계속 볼 이유가 없다면 관객은 눈길을 주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주피터스 레거시>는 초반에 관객에게 끝까지 볼만한 이유를 강력하게 제시하지는 못한다. 샘슨이 원칙에 집착하고 자녀들에게 보이는 태도는 강압적인 구석이 있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동안 그가 뭔가를 위해 희생하는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보다는 세상 물정 모르는 이기적인 둘째 아들의 느낌이 더 강하다. 덕분에 샘슨은 리더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보다 슬프게도, 꼰대라는 이야기를 더 듣고 있는 현실이다.

<주피터스 레거시>의 쟁점이 '불살의 원칙'과 '히어로로서의 자아와 인간적 자아의 공존' 문제라고 한다면, 이런 토픽은 이미 여타의 수많은 히어로물에서 다뤄졌다. 불살에 대해서는 아주 오랫동안 여러 코믹스에서 다루어졌다. <배트맨> 시리즈가 그랬고 <스파이더맨>도 그랬다. 히어로로서의 책임감과 인간적 책임감에 대한 이슈 역시 마찬가지였다. 말하자면 이미 수많은 히어로 장르 콘텐츠에서 여러 번 제시했던 문제의식에 대해 다시금 묻고 있는 셈이다.

얄짤없이 얘기하자면 이 쟁점은 다소 진부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히어로물이 여전히 매력적인 상태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결국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그들의 관계에서 오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 관계를 설명하기에는 '셸던 샘슨이 왜 유토피안이 되었는가'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

히어로 장르에서, 거기에 첫 실사화를 하는 콘텐츠에서 이들이 어떻게 히어로로 다시금 태어났는가, 즉 기원에 대해 다루는 것은 꽤 중요한 이슈일 수 있다. 하지만 한 시즌 전체를,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갈등 속에서 보내는 건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았다.

예측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지만 적절한 반전과 앞으로의 이야기를 점쳐볼 수 있게 하는 단서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여전히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를 추측하게 하는 요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애초에 시즌 1은 전체 이야기의 프롤로그 격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를 반만 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국은 선택과 집중의 문제 아니었을까. 시간대의 교차, 세대의 차이, 히어로로서의 책임감과 인간으로서의 불완전함, 그리고 셸던 내부의 고민과 정의에 대한 원칙 문제까지 <주피터스 레거시>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차고 넘치게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중 어떤 문제도 말끔히 해결되지 않았고, 덕분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쟁점만을 던지며 1시즌이 마무리됐다. 2시즌을 제작 확정한 만큼 더 지켜볼 여지는 있겠으나 글쎄, 1시즌에 실망한 사람들이 다시 2시즌에 시간을 쓰게 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