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 사진 출처: 뉴스 1

지난 2022년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가 공개되었을 때, 수많은 국내 문학 팬덤은 환호했다. 젊은 독자층을 기반으로 열렬한 지지를 받은 프랑스 출신의 작가 아니 에르노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했던 불법 임신중절 수술에 대해 다룬 1974년 등단작인 장편 『빈 옷장』부터 최근 작품까지도 아니 에르노는 줄곧 자전적인 이야기와 사회 문제를 결부한 소설을 써왔다. 임신 중절, 여성의 욕망, 계급과 젠더를 아우르는 그의 문학 세계는 혐오에 대한 투쟁이 절실한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아니 에르노에 대해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억압을 예리하게 탐구한 작가다. 그는 젠더·언어·계급적 측면에서 첨예한 불균형으로 점철된 삶을 다각도에서 지속해서 고찰하여 고유한 작품세계를 개척했다”고 평가했다.

2022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 사진 출처: 뉴스 1

많은 작가의 소설이 영화화되지만, 유달리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영화로 다루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이는 그가 자전적인 이야기와 허구를 결합한 문체인 ‘오토픽션’의 방식을 택하기 때문이다. 통상적인 문학이 충분한 서사를 바탕으로 작품을 전개하지만, 아니 에르노는 인물의 삶에 닥친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정서와 사고에 집중한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에 담긴 사적인 문체는 쉽게 이미지로 변환시키기 어렵다. 특히, 아니 에르노가 다루는 인물의 감정은 반복적이지만 점진적으로 퍼져나간다는 점도 그의 작품을 영화로 각색하기 매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도 아니 에르노의 작품을 다루는 모험을 감행한 두 영화가 있다. 바로 오드리 디완의 <레벤느망 (2021)>과 다니엘 아르비드의 <단순한 열정 (2020)>이다. 그리고 아니 에르노가 직접 카메라를 든 작품인 <슈퍼 에이트 시절 (2022)>도 있다. 과연 이 작품들은 아니 에르노의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했을까?


<레벤느망> dir. 오드리 디완

영화 <레벤느망>

<레벤느망>은 아니 에르노가 2000년에 발표한 자전적 에세이 『사건』을 기반으로 감독 오드리 디완이 각색한 영화다. 2021년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의 영예를 안은 작품이기도 하다. 『사건』이 발간되었을 때 전 세계 문학계를 뒤흔들었던 것처럼 <레벤느망>도 공개 당시 많은 화제를 모았다. 『사건』은 당시 임신 중절이 불법이었던 시대를 겪었던 아니 에르노의 20대 시절을 다루고 있다. <레벤느망>의 주인공 ‘안’도 『사건』의 화자 아니 에르노와 동일한 상황에 놓여 있다. 작가를 꿈꾸며 대학에 다니던 평범한 일상에 임신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안에게 찾아온다. 아이를 낳으면 꿈을 잃고, 아이를 낳지 않으면 자유를 잃게 되는 상황이 그 앞에 닥쳤다. 안이 “여자만 걸리는 병에 걸렸어요. 그건 여자를 집에만 있게 만드는 병이에요”라고 여성의 몸을 둘러싼 임신에 대해 덧붙인 말은 서늘하다.

영화 <레벤느망>

2019년 대한민국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임신 중절 수술에 대한 처벌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프랑스는 1975년 세계 최초로 12주 이하의 태아에 대한 낙태 수술을 합법화했다. 『사건』과 <레벤느망>의 주인공은 1963-64년에 걸쳐 임신 중절 수술을 경험한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자기 몸에 대한 선택을 감수하는 행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그저 학교를 졸업하고, 작가가 되고, 꿈을 이루기를 원했던 마음이 사법제도 아래에서 짓밟힐 위기에 처했다. <레벤느망>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임신 중절의 순간을 서늘하게 그린다. 아니 에르노가 『사건』을 통해 언어로 육체의 고통을 묘사했다면, <레벤느망>은 촉각을 이용한 체험의 현장으로 관객을 이끈다. 소재에 매몰되지 않은 채, 이 영화는 묵묵히 한 여성의 신체에 일어나는 사건의 감각만을 충실하게 담는다.


<슈퍼 에이트 시절> dir. 아니 에르노

영화 <슈퍼 에이트 시절>

아니 에르노는 뒤라스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소설 『연인』과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의 각본으로 유명한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뛰어난 영화감독이기도 했다. 아니 에르노가 장 뤽 고다르와 나눈 영화에 대한 대담은 최근 『뒤라스×고다르 대화』는 국내에도 책으로 출판될 정도다. 아니 에르노 역시 글이 아닌 이미지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소개된 아니 에르노의 <슈퍼 에이트 시절>은 그의 전남편 필립 에르노가 슈퍼 8 카메라로 촬영한 홈비디오로 이뤄진 작품이다. 전 남편과 함께했던 1972년부터 1981년까지의 시간을 담고 있는 영화는 여느 평범한 프랑스의 중산층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슈퍼 에이트 시절>

<슈퍼 에이트 시절>의 작법은 마치 그의 소설 기법과 유사하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허구와 접목해 보편적인 담론으로 뻗어가는 오토 픽션의 작법처럼, 이 영화는 지극히 사적인 아니 에르노의 가족사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들은 휴가철에는 바캉스를 떠나고, 경제적 수준에 따라 이사를 하며, 자녀들은 장성해진다. 부부는 소홀해지고, 그의 작품은 호평받는다. 영화는 아니 에르노의 개인사를 집요하게 이야기하지만, 그가 써 온 소설과 달리 보편의 담론 혹은 정치적인 주제에 닿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는 부부의 관계와 자녀의 시간만이 가득 담겨 있다.


<단순한 열정> dir. 다니엘 아르비드

영화 <단순한 열정>

국내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단연 『단순한 열정』일 것이다. 프랑스에서 1991년에 발표된 『단순한 열정』은 연하의 유부남인 동유럽 출신의 외교관과 사랑의 빠진 여인에 대한 소설이다. 출간 당시부터 사실적인 묘사와 선정적인 소재로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작품의 매력은 사랑에 매몰된 존재의 세밀한 감정을 묘사하는 아니 에르노의 격렬한 문체에 있다. 열정적인 사랑에 몰두한 그가 어떻게 상대를 기억하는지, 그리고 그 열정이 어떻게 그의 삶을 앗아가는지를 기록한 『단순한 열정』은 아니 에르노의 모든 소설 중에서도 가장 매혹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단순한 열정>

이번 2월 1일 국내 개봉한 <단순한 열정>은 아니 에르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을 영화화하려는 대담한 시도를 보인 작품이다. <단순한 열정>의 관건은 얼마나 사랑의 열정을 매혹적으로 묘사했느냐에 달려있다. 가정을 소홀히 하고, 자신의 본업을 신경 쓰지 않으며, 끝내 자신의 모든 삶을 포기할 정도로 매혹적인 사랑을 그려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상대방의 매력이 아닌 사랑 그 자체에 도취하여 있는 한 여성을 그려야 한다. 파멸적인 사랑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인물의 열정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과연 다니엘 아르비드 감독의 <단순한 열정>은 형언할 수 없이 휘몰아치는 사랑의 열정을 잘 담아냈을까? 『단순한 열정』을 재밌게 읽었던 독자라면 지금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며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