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이 '도착'했다. 전 세계 12개 나라에 정체불명의 반구형 쉘이 한 대씩 떠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단지 거기에 있을 뿐,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눈앞에 있는 미지의 존재가 대놓고 무서운 제스처를 취할 때보다, 아무런 동태를 보이지 않을 때 두려움은 더욱 불어나는 법. 지구 전역은 공포에 질리고, 쉘이 뜬 나라는 그들이 지구에 온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자국의 전문가를 초대한다.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애덤스)와 물리학자 이안(제레미 레너)이 미국 정부의 부름을 받는다.
<컨택트>(원제: Arrival)는 루이스의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한다. 딸이 태어나고, 그 아이가 "사랑한다"고 속삭이거나 "엄마가 미워!" 하고 핏대를 세우며 성장하고, 돌연 병들어 죽는 일련의 신들이 펼쳐진다. 그리곤 영화 제목이 큼지막하게 뜨는 순간도 없이, 루이스가 강의 도중 외계인이 나타났음을 알게 되는 대목이 이어진다. 단도직입적인 진행. 영화는 재빠르게 미군의 웨버 대령(포레스트 휘태커)이 그녀를 찾아오고, 헬리콥터에서 이안을 만나 현장에 도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프롤로그의 장엄한 분위기에 비하면 퍽 무심하게 보이는 전개다.
<컨택트>의 원작은 현존하는 최고의 SF 소설가로 추앙 받고 있는 테드 창의 중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다. 테드 창의 박학다식이 고스란히 담긴 소설은 언어학자와 외계 지성의 소통을 상당히 복잡한 이론과 개념을 동원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을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5>(2011), <라이트 아웃>(2016) 등 공포영화 시나리오만을 써온 에릭 헤이저러가 각색했다. 그의 시나리오를 통해 이론적 배경이 가득해 영화로 옮기기에 까다로워 보이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완성될 수 있었다.
하지만 <컨택트>는 관객과 게임을 즐길 생각이 없어 보인다. 호러의 컨벤션에는 좀처럼 눈을 돌리지 않고, 우직하게 원작의 세계를 계승한다. 황량한 공간에 떡 하니 버티고 있는 쉘 안의 존재들이 지구를 집어삼킬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심어주는 방향으로 서스펜스를 퍼트릴 법도 한데, 그들의 ‘도착’이 '침공'이 아님을 일찌감치 확인시킨다.
<컨택트>가 긴장을 포기했다는 뜻이 아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가벼운 트릭을 잘게 배치해 긴장의 밀도를 올리기보다, 아주 느리고 유려한 리듬으로써 루이스 일행이 쉘 안에 들어가고 거기에 있는 '헵타포드'와 소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관객의 숨을 포박한다. 현대미술가 제임스 터렐(아래 이미지)의 작품들에서 영감을 얻은, 헵타포드를 만나는 체경(體鏡)의 공간 자체가 내뿜는 에너지마저도 거대하다. 거기에 작전을 수행하는 중 느닷 없이 끼어드는 루이스와 딸의 과거는, 러프하게 배치된 플래시백이 왜 필요한 것이냐는 의문을 퍼트리면서 또 다른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컨택트>는 연출을 맡은 드니 빌뇌브의 지난 작품들과 사뭇 다르다. 그는 폭력과 고통이 넘치는 현실 세계에 발을 붙인 채 온갖 '충격'을 선사하며 이름을 키워갔다. 첫 장편을 내놓기 전까지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던 빌뇌브는 제 장기를 십분 활용해, 고통에 휘말린 인물들을 극도로 사실적인 터치로 담아 관객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해왔다. 하지만 애초에 비현실적인 소재인 외계 존재를 내세운 SF <컨택트>는 자극을 최대한 절제하고 루이스와 헵타포드의 소통이 이어지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이미 빌뇌브의 차기작으로 정해진 <블레이드 러너 2049>와 '<듄> 리부트'가 SF영화의 걸작들을 뒤따른다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이러한 변화는 의미심장하다.
아주 인상적인 음악이 등장한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흐르는 막스 리히터의 'On the Nature of Daylight'다. 낮고 높은 현악기들이 어우러지는 음악은 곧장 관객이 이 차분하고 멜랑콜리한 SF영화에 들고 나가는 문 역할을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하지만 결국 거기 있어야 할 마지막 시퀀스가 이 음악과 함께 펼쳐질 때 <컨택트>는 관객들의 마음을 훔치고야 말 것이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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