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
1926년 6월1일∼1962년 8월5일(36세)
마릴린 먼로는 죽었지만 죽지 않는 아이콘이다. 그녀가 죽은 지 꼬박 55년이 됐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기억한다. 마릴린 먼로의 금발 머리, 붉은 입술, 입가의 점, 잘록한 허리, 풍만한 가슴, 지하철 송풍구 바람에 날리는 치마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죽지 않는 아이콘 마릴린 먼로의 생을 다시 한번 알아보자.
1. 마릴린 먼로의 남자들
1.1. 첫번째 남편 짐 도허티
짐 도허티와 결혼할 당시 마릴린 먼로의 이름은 노마 진 베이커였다. 베이커는 그녀의 어머니 글래디스의 성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노르웨이계 마틴 에드워드 모턴슨이었다. 노마 진 모턴슨이 본명이지만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녀의 어머니를 버리고 떠났다. 먼로가 7살 때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먼로는 양부모 가정을 전전했다. 먼로의 양부모는 이사를 하면서 당시 16살이던 먼로와 도허티를 결혼시켰다. 먼로를 더이상 책임지지 않으려는 심산이었다. 도허티는 2차세계 대전에 참전했고, 먼로는 군수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사진작가의 눈에 띄어 모델이 된다. 결혼 4년 만에 두 사람은 이혼했다. 먼로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1.2. 두번째 남편 조 디마지오
조 디마지오는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선수다. 1951년 은퇴한 이후 1954년 마릴린 먼로와 결혼했다. 전설적인 야구선수와 당시 가장 잘나가던 섹스 심벌의 만남. 세간의 화제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디마지오와의 결혼은 화려한 시절의 마릴린 먼로다운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한 지 274일 만에 두 사람은 이혼했다. 이유는 조 디마지오의 폭력이었다. 정숙한 아내를 원했던 조 디마지오는 그 유명한 지하철 송풍구 장면을 촬영하고 돌아온 먼로에게 폭행을 가했다고 전해진다.
1.3. 세번째 남편 아서 밀러
1956년, 먼로는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유명한 극작가 아서 밀러와 결혼했다. ‘세기의 섹스 심벌’이었지만 먼로는 자신의 이미지를 싫어했다. 먼로는 평생 ‘금발의 멍청한 여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동시에 연기에 대한 열정을 품었다. 먼로는 할리우드를 떠나 뉴욕에서 말론 브란도 등이 나온 액터즈 스튜디오에서 메소드 연기를 배웠다. 공산주의자로 의심받던 지식인 아서 밀러와 결혼한 것도 자신이 ‘금발 백치미’의 상징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아서 밀러와의 결혼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두 사람은 1961년 이혼했다.
1.4.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케네디
먼로의 말년은 비참해 보인다. 아서 밀러와의 결혼 생활 중 먼로는 유산을 경험했다. 이혼 이후 약물과 술에 의존하면서 먼로는 피폐해져갔다.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와 그의 동생인 법무장관 로버트 케네디와의 관계가 이슈가 된 시점도 이때다. 먼로는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의 생일 파티에 등장해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샤넬 넘버5’ 향수만 걸친 채 자신의 집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먼로의 사인은 공식적으로는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인한 자살이지만 음모론도 있다. 케네디가(家) 특히 로버트 케네디가 개입되어 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녀의 죽음은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어서 지금도 논란거리다.
2. 마릴린 먼로의 대표작
2.1. <나이아가라>(1953)
마릴린 먼로의 신화를 탄생시킨 작품이다. 제목처럼 나이아가라 폭포를 배경으로 한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당시 미국의 대표적인 신혼여행지였다. 영화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찾은 신혼부부와 또다른 투숙객 부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영화 내용보다 중요한 건 먼로의 등장이다. 엉덩이를 흔들면서 걷는 이른바 ‘먼로 워크’가 첫 등장한 영화다.
- 나이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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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헨리 헤서웨이
출연 마릴린 먼로, 조셉 거튼, 진 피터스
개봉 1953 미국
2.2.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1953)
하워드 혹스의 뮤지컬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는 먼로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만든 영화다. 먼로가 연기한 로렐라이는 프랑스 대륙에 유럽이라는 나라가 있는 걸로 알 정도로 백치미가 차고 넘친다. 또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쇼걸이다. 반면 로렐라이의 단짝 도로시(제인 러셀)는 검은 머리에 똑똑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먼로는 영화 속에서 핑크 드레스를 입고 ‘다이아몬드는 여자들의 가장 좋은 친구’(Diamonds are girl's best friends)를 부른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를 찍기 직전 먼로는 누드사진 스캔들을 겪어야 했다. 1949년 50달러를 받고 찍은 달력용 누드사진이 공개된 것이다. 먼로는 미리 잡혀 있던 인터뷰를 취소하는 대신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기자들에게 자신의 절실함을 피력했고 대중에게 자신을 이름을 더 알리는 계기가 됐다. 반면 노마 진 시절의 불행한 삶에 대한 먼로의 이야기가 거짓말이라는 얘기도 많았다. <왕자와 무희>(1957)를 연출한 로렌스 올리비에는 “마릴린 먼로 안에는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건 너무 달랐다”고 말했다.
-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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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하워드 혹스
출연 제인 러셀, 마릴린 먼로
개봉 1953 미국
2.3. <7년 만의 외출>(1955)
오로지 마릴린 먼로를 위한 영화다. 빌리 와일더라는 감독의 이름조차 이 영화에서는 힘을 잃는다. 가장 눈부신 마릴린 먼로를 볼 수 있다. 심지어 극 중에선 “금발 미녀라면 아마 먼로겠군”이라는 대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 유명한 지하철 송풍구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보는 사진과 똑같은 장면은 영화 속에 없다.
- 7년만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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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빌리 와일더
출연 마릴린 먼로, 톰 이웰
개봉 1955 미국
2.4. <뜨거운 것이 좋아>(1959)
먼로는 더 이상 금발 백치미의 미인이 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1956년작 <버스 정류장>에서 먼로는 메소드 연기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뜨거운 것이 좋아>의 빌리 와일더 감독은 먼로를 다시 금발 백치미 미인으로 만들어버렸다. 돈이 급했던 먼로는 시나리오도 읽지 않고 계약서에 사인을 해버렸다. 역설적으로 먼로는 자신이 가장 싫어한 멍청한 금발의 이미지로 출연한 <뜨거운 것이 좋아>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갱스터의 범죄현장을 목격한 두 남자가 여장을 하고 여성밴드에 들어가는 내용인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먼로는 또 한번 유명한 노래를 부른다. ‘I Wanna Be Loved By You’가 그것이다. 속이 비치는 시스루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전 세계 남자들의 사랑을 받지만 진짜 사랑은 받지 못했다. 그런 그녀를 매우 싫어한 사람도 있다. 함께 출연한 배우 토니 커티스다. 그는 먼로와의 극중 키스 신에 대해 “히틀러와 키스하는 것 같았다”며 그녀의 연기를 평가절하했다. 이즈음 먼로는 촬영장에서 통제가 불가능했다. 잦은 지각으로 악명 높았다.
- 뜨거운 것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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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빌리 와일더
출연 마릴린 먼로, 토니 커티스, 잭 레먼
개봉 1959 미국
2.5.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1961)
이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마릴린 먼로의 유작이 된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The Misfits, <야생마>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은 먼로의 남편 아서 밀러가 각본을 쓰고 존 휴스턴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화다. 먼로는 이미 정신적으로 피폐한 삶을 살고 있었다. 알코올 중독에 수면제를 과다복용했으며 환청도 들렸다고 한다. 촬영장에서의 먼로는 엉망진창이었다. 늘 늦게 나타나고 까탈스럽게 행동했다. 그와 함께 출연한 대배우 클라크 게이블 역시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유작이다. 57세였던 그는 이 영화를 촬영한 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당시 사람들은 먼로 때문에 게이블이 죽었다고 수근거렸다. 그녀는 그 소문을 부정하지 않았다. 먼로는 심한 자책감에 시달렸다.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먼로는 게이블에게 묻는다. “어떻게 그냥 살죠?”(How do you just live?) 게이블은 “먼저 잠을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가려운 데를 긁고, 계란 프라이를 하고, 날씨가 어떤지 보죠. 깡통에 돌도 던지고 휘파람도 불고요.” 먼로는 이런 평범한 일상을 결코 누리지 못했다.
-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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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존 휴스턴
출연 클라크 게이블, 마릴린 먼로, 몽고메리 클리프트
개봉 1961 미국
3. 마릴린 먼로의 생을 다룬 영화들
3. 1.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2012)
1957년 마릴린 먼로(미셸 윌리엄스)가 영국에서 <왕자와 무희>를 촬영할 당시 상황을 담은 영화다. 연출을 맡은 올리비에 로렌스(케네스 브래너)는 셰익스피어극의 대가로, 먼로의 연기를 탐탁치 않아 한다. 둘은 계속 다투고 먼로와 동행한 남편 아서 밀러도 미국으로 돌아가버린다. 먼로는 남편이 쓴 쪽지(먼로를 멍청하다고 썼다)를 발견하고 점점 지쳐가면서 조감독 콜린 클라크(에디 레드메인)에게 의지하기 시작한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은 콜린 클라크가 쓴 논픽션 <왕자, 무희와 나>가 원작이다. 클라크는 당시 먼로와 특별한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미셸 윌리엄스의 먼로 연기가 탁월한 작품이다. 그녀의 걸음걸이, 말투 등을 거의 완벽하게 되살렸다.
-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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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사이먼 커티스
출연 미셸 윌리엄스, 에디 레드메인
개봉 2011 영국, 미국
3.2. <러브, 마릴린>(2012)
<러브, 마릴린>은 마릴린 먼로 사망 50주기에 제작된 다큐멘터리다. 그동안 공개된 적 없었던 마릴린 먼로의 개인적인 그림과 일기, 편지 등을 통해 그녀의 삶과 내면을 탐구하는 내용으로 엘리자베스 뱅크스, 글렌 클로즈, 린제이 로한 등 현시대 여배우들이 재현한 마릴린 먼로를 만날 수 있다.
- 러브, 마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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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리즈 가버스
출연 마릴린 먼로
개봉 2012 미국
3.3. <노마 진 앤 마릴린>(1996)
<노마 진 앤 마릴린>은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의 노마 진이 어떻게 세기의 섹스 심벌 마릴린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노마 진은 금발로 염색하고 코 성형수술을 하고 마릴린으로 다시 태어난다. 불우한 어린 시절과 이별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노마 진(애슐리 주드)과 마릴린(미라 소르비노)을 연기하는 배우가 다르다는 점이다. 한 사람을 두 명이 연기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먼로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 노마 진 앤 마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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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팀 파이웰
출연 애슐리 쥬드, 미라 소르비노
개봉 1996 영국
먼로가 젊은 나이에 죽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녀의 바람처럼 멍청한 금발의 섹스 심벌이 아니라 진지한 연기자로 인정받았을까. 영화평론가 데이비드 톰슨은 그녀의 바람을 아주 철저하게 짓밟는다. “마릴린 먼로가 지금껏 살아 있다면,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커리어를 엉망으로 망쳐놨을 거다. 분명 자신이 중년이 되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을 테고. 설마 먼로가 캐서린 헵번이나 메릴 스트립 같은 연기파 배우가 될 리도 없지 않았겠나. 그러다 일정 나이가 돼서 죽음을 맞았겠지. 말하기 그렇지만 때이른 죽음이 그녀를 신화로 만들어주는 데는 오히려 큰 도움이 됐다.” 데이비드 톰슨의 말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이긴 한다.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은 그녀는 후대의 우상, 이를테면 마돈나의 우상이었다. 린제이 로한이나 스칼렛 요한슨도 먼로의 팬으로 유명하다. 대중은 자신의 우상의 우상으로 먼로를 받아들였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보지 않았어도 지하철 송풍구 이미지를 알고 있는 것처럼.
제인 폰다는 뉴욕의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만난 먼로에 대해 TV토크쇼에서 얘기한 적이 있다. 화장도 하지 않고 평범한 모습으로 연기수업을 듣던 조용했던 먼로를 기억하는 폰다는 그녀에게 필요한 건 약이었다고 말한다. 먼로는 불우한 어린 시절과 대중의 뜨거운 관심 사이에서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했던 것 같다. “20세기가 만들어낸 가장 기막힌 선물”이라는 그녀의 아름다움은 결국 독이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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