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남자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늘상 하는 잡담거리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거랑 저거 중 누가 더 세?’라는 말이다. 그때 그 시절 논쟁거리(?)들 중 지금도 기억나는 게 로봇태권브이와 마징가제트 중 누가 더 센지였는데 가끔은 두 로봇 이외에 그랜다이저도 심심찮게 등장했었다. :)
뭐 대개는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그런 이야기를 많이들 하는 편인데, 술이 들어간 영화를 찾다가 오래간만에 이 영화 <람보 2>를 보다 보니 나보다 약간 동생 또래들은 람보랑 코만도 중 누가 더 세? 뭐 그런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누가 더 세? 뭐 그런 이야기까지는 아니어도 그 시절 카더라 통신을 서로 목청 높여 이야기해가면서, 뭐 람보의 근육은 안에 뭘 집어넣어서 크게 만든 거라느니, 뭐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해가면서 시시덕거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람보 1>(원제 : Rambo, the First Blood)이라는 영화는 <First Blood>라는 소설을 각색해 만든 영화로, 이후 제작된 속편과는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 반전에 대한 진지한 메시지와 더불어 전쟁이 얼마나 인간을 망가트리는가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을 던진다. 그러나 속편 <람보 2>(Rambo, the First Blood part II>)는 실베스터 스탤론 본인과 제임스 카메론이 각본을 쓴데다 당시 미국의 분위기가 미국킹왕짱만세 분위기로 흘러가면서 반전의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액션 영화 특유의 허황됨이 강조되며 결국 최악의 작품을 선정하는 골든 라즈베리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뭐 영화 전체 스토리가 ‘내부의 부당한 압력과 적들의 저항을 다 잠재우고 포로를 구출해온다’는 한줄로 정리되니 말 다한 셈인데 그래도 속 시원한 액션성에 당시 사회 분위기까지 겹쳐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영화에서 찰스 네이피어는 돈을 아끼기 위해 포로의 구출을 반대하는 악역 머독으로 출연했는데 극중 람보의 구출을 위해 출동한 헬기에게 돌아오라고 명령한 후 술을 마시다 람보의 옛 상관인 트롯먼 대령(리처드 크레나 분)과 싸움을 한다. 그때 머독이 마시는 술이 와일드 터키다.
와일드 터키는 미국에서 만드는 버번 위스키(Bourbon Whiskey)다. 잭다니엘, 짐빔과 더불어 가장 잘 알려진 버번 위스키이고, 다른 여러 버번들처럼 1800년대 중후반 켄터키주에서 증류소가 처음 세워지고 생산되었다. 어라? 위스키 철자가 왜 저러지 하는 분도 있을 것 같은데 스카치 위스키는 Whisky라 표기하지만 미국산 버번 위스키는 Whiskey라 표기한다. 예외적으로 메이커스 마크(Maker’s Mark) 버번 위스키만 처음 증류소를 세운 사람들이 스코틀랜드 아일랜드계 이주민이라서 Whisky라 표기한다.
워낙에 많이 팔리는 유명한 제품이다 보니 람보 이외에도 다양한 영화와 소설 등에 등장하는데 특히나 미국 영화에서 주정뱅이들이 병째로 마시는 장면이 등장한다면 십중팔구는 와일드 터키다. 보통은 와일드 터키 81과 101이 많이 등장하는데 맛은 101이 압도적으로 좋다. 돗수가 있어서 진하고 밸런스도 좋은데다 특유의 불량식품 같은 가벼움까지 있는고 심지어 값도 싸다. 참고로 고급품인 레어브리드는 와일드터키 101에서 불량식품스러운 가벼운 맛이 약간 덜한 대신 더 진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제품명인 81과 101은 돗수를 계산하는 단위인 Proof를 나타내는 숫자로, 미국식으로 계산하면 나누기 2를 하면 우리가 아는 돗수가 된다. 영국식 Proof는 계산하는 방식이 좀 다르고 복잡한데, 최근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마실 때는 스트레이트도 나쁘지 않지만 50도 넘는 돗수도 돗수고 스카치 위스키와 다르게 버번은 얼음을 넣어서 마셔도 맛이 쉽게 무너지거나 하지 않으니 온더록으로 얼음을 넣어 마시는 걸 개인적으론 더 선호한다.
아울러 다른 위스키도 그렇지만 와일드 터키도 최근 나오는 제품들보다 소위 올드보틀이라 불리는 예전 생산품들이 맛이 좋은 편이니 혹여 주류상가에서 먼지 뒤집어쓴 오래되어 보이는 와일드 터키를 본다면 구입하셔도 후회는 안 하실거라 생각한다.
<람보 2>가 1985년에 개봉했으니 이럭 저럭 30년 넘게 지났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환갑을 넘긴 지 오래고 영화 속에서 신비로운 눈동자를 지닌 길 안내자로 나왔던 줄리아 닉슨 솔도 할머니가 다 되었다. 얼마 전에 다시 보았던 <영웅본색>처럼 영상은 오래된 티가 났고 효과음도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본 옛날 영화는 꽤나 좋았다. 단순히 영화라서가 아니라 영화를 보는 내내 예전 내가 어렸을 때 친구끼리 몰려다니며 누가 세네 안 세네 근육이 진짜네 가짜네 해가면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치 예전 노래를 들으면 예전 기억이 떠오르듯이, 오래간만에 본 영화는 내 친구들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그 친구들이 지금 어떻게 사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하거니와 다시 만날 방법도 없을 것이고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마치 피천득의 수필 속 한 구절처럼 만나면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눈을 감으면 그때 뛰놀던 한도연립의 언덕이, 철조망 사이의 개구멍이, 오래된 달력이 걸려 있던 중국집이, 그런 것들이 친구들과 더불어 떠오른다. 그런 기억들은 잊힌 것처럼 머릿속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가 옛날 영화를 보거나, 술을 마시거나 할 때마다 문득 문득 살아나곤 한다. 액션 영화를 보고 이런 감상에 젖는 게 사실 웃기는 일인데 자꾸 그리 되니 어쩌겠나. 감정이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초등학교 때는 <람보>를 보며 낄낄거렸다. 중고등학교 때는 <영웅본색>에 푹 빠져 어울리지도 않는 코트를 입고 폼을 잡아가며 웃었다. 문득 내 사랑하는 아들은 어떤 영화를 보며 옛날을 떠올릴까 궁금해졌다. 얼마 전에 같이 <너의 이름은.>을 보러 갔는데, 나중에 그 영화를 기억하려나? 아들이 집에 오면 본 영화 중 친구들끼리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영화가 뭔지 물어봐야겠다. ^^
데렉 / 술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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