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아닌 <엘르>(elle, 그녀)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녀는 이자벨 위페르다. 감독의 이름도 심상치 않다. 폴 버호벤.
6월 15일 개봉한 <엘르>는 2016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다. 파격적인 내용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인 이자벨 위페르는 <엘르>의 미셸 역으로 올해 초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네덜란드 태생의 폴 버호벤 감독은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이었다. <로보캅> <토탈리콜> <원초적 본능>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2000년대 그는 할리우드에서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쇼걸> <스타쉽 트루퍼스> <할로우 맨>의 실패 때문이었다. 유럽으로 돌아온 폴 버호벤 감독은 자신의 장기인 볼온한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엘르>를 내놓게 된다.
영국의 영화전문지 ‘토털필름’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자벨 위페르와 폴 버호벤 감독은 “이런 유형의 게임에서 정상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다. 이런 유형의 게임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게 만드는 두 사람의 영화가 있다. 이자벨 위페르의 <피아니스트>(미카엘 하네케 감독)와 폴 버호멘의 <원초적 본능>이다. 대략 감이 잡히는지 모르겠다. <엘르>는 미셸(이자벨 위페르)이라는 한 중년 여성을 둘러싼 폭력과 비틀린 성적 욕망을 담았다. 원작이 있다. <베티 블루 37.2>의 원작자 필립 지앙의 소설 <오…>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미스터리 스릴러의 틀 안에 꿈틀거리는 욕망
<엘르>는 평범함을 거부한다. 첫 시퀀스부터 그것을 또렷이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검은 화면을 한동안 보게 된다. 갑자기 들리는 외마디의 비명. 이어서 러시안 블루 품종의 고양이의 머리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비명의 당사자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곧 관객은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다. 미셸이 복면을 쓴 괴한에게 강간을 당하고 있다. 이상한 점은 괴한이 떠난 뒤 미셸의 행동이다. 두려움에 떨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게 일반적인 행동이라면 그녀의 행동은 확실히 이상하다. 강간 당할 때 바닥에 떨어져 깨진 그릇을 아무 말 없이 치운다. 입고 있던 옷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목욕을 하는 동안 몸에서 피가 나도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붉게 물든 거품을 지워버린다.
그녀를 보는 관객은 의아하다. 어쩌면 저 강간이 일종의 게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혹시 그녀는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에 성적 흥분을 느끼는 성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해보게 된다. 폭력을 경험한 미셸이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후 영화는 표면적으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색깔을 띈다. 미셸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괴한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언어적 성추행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 자신이 운영하는 게임 회사 직원들에게 미셸의 얼굴이 합성된 변태적인 성행위 영상이 유포되기도 한다. 미셸은 범인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껍데기 안에는 미셸이 중심이 된 주변 인물들의 욕망이 꿈틀거린다. 철없는 아들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출산한 여자친구와 살고 있다. 전 남편은 젋고 예쁜 요가 강사와 사귀고 있다. 늙은 어머니에게도 젊은 애인이 있다. 사업 파트너이자 친구인 안나의 남편은 미셸에게 치근거린다.
이들에게 둘러싸인 미셸의 경우에는 어떨까. 사실 그녀는 안나의 남편과 바람을 핀 적이 있다. 지금은 그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싶어한다. 대신 옆집에 사는 유부남에게 끌린다. 전 남편의 젊은 애인에게는 질투심을 느낀다. 늙은 어머니에게는 냉정하다. 철없는 아들의 되바라진 애인은 영 탐탐치 못하다. 결코 따뜻한 말을 건네는 법이 없다. 미셸은 위에 언급한 모든 이들을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한다. 저녁 식사 테이블 아래, 그녀의 발은 이웃집 남자에게 향한다.
피해자가 아닌 피해자
<엘르>는 알다가도 모를 영화다. 러닝타임이 흐르면 어느새 폭력의 피해자인 미셸은 사라진다. 그녀는 결코 피해자 같지 않다. 심지어 어떨 때는 작은 폭력의 가해자 같기도 하다.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일도 있다.
친구 내외와 전 남편이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서 미셸은 자신이 당한 일을 말한다. 아무렇지 않게.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냐는 사람들의 말에 그녀는 ‘경찰은 안 된다’고 일축한다. 후추 스프레이와 손도끼를 구입해 스스로 자신을 지키려고 한 그녀가 경찰을 꺼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버지가 희대의 연쇄살인마였고 그 현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아버지는 가석방 판결을 받을 예정이다.
다시 이자벨 위페르가 아닌 <엘르>를 상상해본다. 이미 이자벨 위페르의 <엘르>를 본 이상 결코 다른 배우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기 쉽지 않다. 미셸은 매우 복잡한 인물이다. 아버지와의 일 때문인지 어딘가 뒤틀어진 내면의 소유자다. 무엇보다 강간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장면은 다소 충격적이다.
폴 버호벤 감독은 처음에 <엘르>를 할리우드에서 제작하려고 했다. 니콜 키드먼, 줄리안 무어, 샤를리즈 테론, 샤론 스톤, 제니퍼 제이슨 리, 마리옹 꼬띠아르, 다이안 레인 등을 캐스팅 리스트에 넣었다. 도덕적 관념을 넘어서는 복잡한 캐릭터에 배우들은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그때 이자벨 위페르가 먼저 관심을 보였다.
결국 <엘르>는 이자벨 위페르의 영화가 됐다. 폴 버호벤 감독은 12주 간의 촬영 기간 동안 어떠한 디렉팅도 하지 않은 채 이자벨 위페르의 본능에 맡겼다. 폴 버호벤 감독의 말을 들어보자. “기본적으로 이자벨 위페르에게 의존했다. 그녀가 느끼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각본과 다른 방향으로 연기해도 그녀 스스로 보여줄 수 있도록 그냥 두었다.”
<엘르>가 이자벨 위페르의 영화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녀가 연기한 미셸을 창조한 건 폴 버호벤 감독이다. 다시 한번 그의 말을 인용한다. “이자벨 위페르가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내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끝없이 이어지는 애매모호함이다. 그 말이 맞다. 언제나 애매하다. 이 여인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변화를 거듭하고, 여러 가닥이 얽히게 된다. 다른 작품에서도 같은 시도를 한 적 있다. 특히 <토탈 리콜>에서 그랬다. 완전히 다른 장르지만 꿈과 현실을 결합했다. 결국에는 어떻게 생각할지 확신할 수 없어진다. 나는 여지를 열어두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의 인생처럼 미소 뒤에 무엇이 숨었는지, 혹은 아무것도 숨어있지 않은지 알 수 없다.”
<엘르>는 분명 불편한 영화다. 첫 장면부터 그렇고 영화 내내 그렇다. 그럼에도 한시도 눈을 떼기 어렵다. 이자벨 위페르의 눈빛이 그걸 가능하게 한다. 폴 버호벤 감독의 애매모호함이 그걸 가능하게 한다. 두 사람이 만들어낸 불편함은 이상하게 매혹적이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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