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의 게임>이 시작됐다. 매 시즌마다 HBO의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이 괴물 같은 드라마는 이번에도 무려 1010만명(스트리밍까지 합산하면 1610만명)이라는 엄청난 시청자 수를 기록하며 역대급 시즌이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보통 여름 시즌의 드라마들이 봄이나 가을에 비해 시청률이 떨어진다는 걸 감안한다면 매우 놀라운 수치인 셈이다. 이번 시즌부터 원작보다 앞서나간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높은 화제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듯 하다. 서서히 결말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모험담에 시청자들의 이목이 쏠려있다.
 
봄에 방영됐던 작품들의 뜨거운 여파가 남아 불볕더위에 한몫하고 있는 느낌이지만 곧 사그라지리라. 여름에 접어들며 미드들이 주춤하다. 이례적으로 <왕좌의 게임>이 늦게 찾아온 경우다. 방송국들은 새 시즌이 시작할 가을을 대비하고 있다. 인기 없는 작품들은 다른 채널을 알아보거나 취소되고, 혹은 종영 수순을 밟는다. 살아남은 작품들은 바쁘게 프로덕션에 돌입해있다. 넷 기반의 스트리밍 서비스로 인해 시즌제가 조금은 희미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름은 재방송이 가득한 비수기인 동시에, 다음 시즌을 예측하고 기대하는 희망의 계절인 셈이다.

올초에 이어 다시금 미드의 사운드트랙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완결되지 않았지만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왕좌의 게임>은 물론, 모든 이야기를 훌륭하게 마치고 퇴장한 작품들과 파이널 시즌을 앞둔 작품, 그리고 새롭게 전설이 될 준비를 마친 신작들까지 모두 놀라운 음악들을 제공했다. 이들은 매력적인 사운드와 풍성한 테마들로 시청자들을 웃고 울리며 마음을 사로잡았다. 분량 상 이번에도 많은 작품들을 다 다루지 못하겠지만, 그런 아쉬움은 다음 세 번째 챕터를 기약하며 레전드를 예약한 미드의 음악 속으로 빠져보도록 하자.
 

<왕좌의 게임>
by 라민 자와디

조지 R.R. 마틴의 장대한 판타지 <얼음과 불의 노래>를 원작으로 삼은 <왕좌의 게임>2011년 탄생했다. <트로이><엑스맨 탄생: 울버린>의 각본을 썼던 소설가 출신의 데이빗 베니오프와 그의 친구 D.B. 와이스의 주도로 만들어진 이 드라마는 HBO 특유의 놀라운 완성도와 개성 넘치는 캐스팅, 탄탄한 원작과 각색이 맞물리며 <밴드 오브 브라더><소프라노스>, <브레이킹 배드> 등과 함께 21세기 드라마 사상 가장 인기 있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스케일과 치밀한 복선과 탁월한 서사, 누가 죽을지 모르는 자비 없는 핏빛 살생부로 단연 화제를 모으며 방영 초기부터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지금은 모두가 극찬해마지않는 걸작의 반열에 들어섰다. 사운드트랙 역시 두말하면 잔소리.

라민 자와디

판타지에 있어 분위기를 자아내고 주도하는 음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라민 자와디의 호쾌하면서도 서정적이고, 웅장한 스코어는 <왕좌의 게임>에 딱 맞는 세계관을 창출해냈다. 켈틱과 중세 유럽을 환기시키는 덜시머나 오토하프, 바이올린 같은 악기들은 물론, 스케일을 드러내는 강렬한 퍼쿠션과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위용, 거기에 명징한 테마를 섞어내고, 신디와 코러스까지 다 때려 박아 심장박동을 과도하게 울려대는 압도적인 사운드는 기존 드라마 음악에선 감히 들을 수 없었던 시원스런 청각적 쾌감과 흥분을 안겨준다.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역량과 존재감을 드러낸 라민 자와디는 영화 <퍼시픽 림><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그레이트 월> 등 할리우드 대작들에 투입되며 주가가 급상승했다.
 

<하우스 오브 카드>
by 제프 빌

 

국정논단이 일어나기 전까지 가장 현실감 있고 박진감 넘치는 정치드라마였던 <하우스 오브 카드>는 영화보다 더 영화스러운 현실에 밀려 다소 주춤한 감이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할리우드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급의 정치쇼가 무엇인지 똑똑히 증명해 보인다. 케빈 스페이시를 비롯해 로빈 라이트, 마허샬라 알리, 마이클 켈리 등 각 캐릭터들이 보이는 노련하고 비열한 권모술수의 모략은 가히 현실 못지않게 생생하다. 영국의 원작을 훌쩍 뛰어넘는 미칠 듯한 세련됨과 시니컬한 색채감은 제작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데이비드 핀처의 직간접적인 영향력 때문일 것이다. 그 외 에릭 로스나 토니 길로이, 앤드루 데이비스 등 유명 작가와 감독이 합류한 제작진과 베테랑 스탭들의 역량도 작품 내내 드러나며 무시 못 할 포스를 안긴다.

제프 빌

음악을 맡은 제프 빌은 다소 생소한 이름인지 몰라도 그가 이전에 담당한 미드 <><몽크>, <어글리 베티>는 생소하지 않을 것이다. 초기 재즈 씬에서 활약하던 그가 영화와 드라마 쪽으로 자리를 잡게 된 건 90년대 초 LA로 거주지를 옮기면서부터. 독립영화와 다큐, 여러 편의 TV물에서 활약한 제프 빌은 70년대부터 꾸준히 만들어진 정치 스릴러 스코어의 명맥을 이어받은 이번 <하우스 오브 카드>로 자신의 포텐을 제대로 터트렸다. 차갑고 감각적인 피아노와 위태위태한 스트링, 근근이 정치적인 상징성을 드러내는 혼(horn)의 잔향들이 조화된 그의 감각적이고 독창적인 스코어는 정치권의 추악하고 더러운 술수들을 덤덤하게 까발리며, 현대인들의 음울하고 답답한 잿빛 초상들을 스케치해나간다.
 

<베이츠 모텔>
by 크리스 바콘

로버트 블록의 베스트셀러이자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대표작 <싸이코>TV시리즈로 재해석한 작품. 애초 프리퀄로 시작했지만 올 봄에 방영된 파이널 시즌에 들어서며 원작 스토리까지 곁들여 노라 베이츠와 노먼 베이츠의 기묘한 관계를 완벽하게 그려냈다. 베라 파미가와 프레디 하이모어의 미친 케미의 살벌한 연기력이 시리즈 내내 일품이었고, 로버트 블록과 히치콕의 세계관을 넘어 풍성한 서브플롯을 첨가하고, 보다 모자 관계에 대해 심리적으로 디테일하게 접근해가며 또 다른 재미와 스릴을 안겼다. 워낙 익숙한 반전에다 파국적인 결말로 치달을 거란 걸 알기 때문에 끝으로 갈수록 힘을 잃지 않을까 우려한 것과 달리 (실망스러웠던 샤워 씬을 제외하곤) 안정적이고 깔끔한 엔딩을 장식하며 시청자들에게 안녕을 고했다.

크리스 바콘

음악을 담당한 크리스 바콘은 이전까지 그다지 두각을 나타낸 작곡가는 아니지만, 버나드 허만이 만들어냈던 전설적인 테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자적인 베이츠 모텔의 세계를 창조하는 데 큰 힘을 기울였다. 제임스 뉴턴 하워드와 대니 엘프만 곁에서 보좌했던 그의 과거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모던하면서도 아름답고 때때로 다크한 심상이 선율 곳곳에 떠돌며 기괴한 모자지간의 사연을 감싸준다. 서늘한 피아노의 터치와 싸이코의 이야기답게 으스스한 스트링의 활용이 무엇보다 좋은데, 간간이 서정적이고 애수어린 분위기가 조성되며 이들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 하다. 허먼의 강렬한 서스펜스와 긴장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바콘의 은밀하고 미스테리한 사운드도 꽤나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레프트오버>
by 막스 리히터

톰 페로타가 쓴 동명의 소설을 드라마의 명가 HBO에서 만든 작품으로 전 세계 인구의 2%가 어느 날 갑자기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증발하며 사라진다는 충격적인 설정으로 시작한다. 증발의 이유도, 원인도 모른 채 상실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야만 하는 남겨진 자들의 여러 모습들을 다루는데, 종교적이며 존재론적인 화두를 던지며 묵직한 감동과 여운을 선사해 호평을 받았다. 지난 643시즌으로 완결되었으며, 2시즌부터 원작과 사뭇 다른 이야기와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로스트>의 제작자이자 각본가였던 데이먼 린델로프가 전면에 나서고 있는 만큼 드라마의 형식이나 주제, 스타일 등이 제법 비슷한데, 무겁고 진지한 화두에 함몰되지 않은 성찰과 예술성을 드러내며 재미를 넘어선 그 이상의 것들을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막스 리히터

무엇보다 막스 리히터가 담당한 사운드트랙의 완성도가 끝판대장급이다. 영화음악과 각종 미디어에서 활약하는 것뿐만 아니라 현대음악과 클래식 쪽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는 작곡가답게 미니멀하면서도 종교적인 색채의 스코어는 쉬 잊혀지지 않는 감동과 환희, 성찰을 안긴다. 남겨진 자들의 고뇌와 분노, 충격과 슬픔을 고스란히 표현해내는 막스의 처연하면서도 아름답고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은 때론 강렬하게, 때론 은은하니 영상 곁에 머무르며 데이먼 린델로프와 톰 페로타가 말하고자 하는 테마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피아노와 스트링 앙상블, 엠비언트 사운드로 이처럼 강렬하면서도 압도적인 스코어를 만들어낸 그의 솜씨가 놀라울 뿐. 죽기 전엔 반드시 들어야 할 필청 미드 사운드트랙으로 감히 뽑아본다.
 

<리전>
by 제프 루소

잘 나가는 마블의 행보에 엑스맨의 판권을 가진 폭스에서도 FX와 함께 스핀오프 미드를 기획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프로세서 X의 숨겨진 아들인 리전데이빗 할러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리전>이다.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다중인격의 (해리성 장애를 앓는) 할러는 가장 강력한 능력치를 가진 먼치킨 슈퍼히어로 중 하나로, 드라마틱한 사연과 독특한 설정, 시니컬하면서도 자학적인 유머들로 주목받은 캐릭터다. <본즈><파고>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런칭한 작가이자 제작자 노아 홀리를 영입해 시즌 1, 8부작으로 간을 본 <리전>은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며 내년 시즌 2를 확정지었다. 스타일리쉬한 연출력과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복잡한 플롯, ‘엑스맨과의 연관관계 등이 맞물리며 시청자들의 흥미를 이끌어낸 것이 뭣보다 주효했다.

제프 루소

미드 <파고>의 인연으로 이번 <리전>에서도 제프 루소가 음악을 맡고 있다. 그는 여기서 기존의 슈퍼히어로 음악들이 가지고 있는 영웅적인 색채를 지우고, 해리성 장애를 앓고 있는 주인공의 시점에 이입해 다양한 일렉트릭 톤에 디스토션이 잔뜩 걸린 기타 사운드로 혼돈과 공허, 방황의 정서를 부각시킨다. 서서히 고조되며 배경으로 깔리는 스트링 세션은 각종 돌연변이들이 공존하고 있는 세계관을 슬쩍 암시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제프의 전문 분야인 락 사운드가 기반이 되고 있으며, 그 파워풀한 소리들이 리전의 무시무시한 힘과 숨겨졌다 발휘되는 여러 인격체의 아우성을 상징한다. 이 시리즈의 성공으로 제프 루소는 최근 새로 시작할 <스타트렉: 디스커버리> 작곡가로 결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12 몽키즈>
by 트레버 라빈 & 폴 린포드

테리 길리엄의 1995년도 영화 <12 몽키즈>Syfy 채널에서 드라마로 옮긴 동명의 작품으로, 5월에 3시즌을 종료하며 내년에 마지막으로 방영될 4시즌만을 남기고 있다. 테리 길리엄의 영화도 사진작가이자 다큐감독이었던 프랑스의 크리스 마르케가 1962년에 만든 단편 <방파제>를 원전으로 삼은 작품이었는데,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타임 패러독스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작품으로 찬사를 받았었다. <니키타><테라노바>를 만들었던 트래비스 피켓과 테리 마타라스 콤비가 주축이 돼 TV화시켰는데, 영화의 전체적인 큰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여러 디테일이나 세부적인 에피소드에서 차별점을 두며 드라마만의 색채를 강화시켰다. 영화 자체가 시공간을 오가며 반복되는 구조였기에 오히려 TV시리즈에 더 잘 어울리는 작품이란 평을 받고 있다.

트레버 라빈

짐머 사단의 베테랑 작곡가이자 락 밴드 예스의 멤버이기도 했던 트레버 라빈이 90년대 말부터 자신을 줄곧 도왔던 폴 린포드와 함께 공동으로 음악을 담당했다. 디스토피아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룬 작품인 만큼 다크하면서도 음침한 색채의 일렉트릭 사운드가 전면에 나서고 있으며, 중간 중간 비치는 라빈의 락적인 스타일과 일렁이는 피아노 톤은 마이크 올드필드의 튜브라 벨스를 연상케 할 만큼 인상적이다. 영화판의 기괴하면서도 독특했던 폴 벅마스터의 테마는 아쉽게 들을 수 없지만, 짐머레스크만의 스펙터클하면서도 감각적인 신디 스코어를 듣는 재미가 있다. 시간 여행자의 고독과 세계의 운명을 짊어진 주인공의 심정이 잘 전달되는 사운드트랙으로, 우수어리고 공감각적인 사운드스케이프가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사운드트랙스 / 영화음악 애호가


재밌으셨나요? 내 손 안의 모바일 영화매거진 '네이버 영화'를 설정하면 더 많은 영화 콘텐츠를 매일 받아볼 수 있어요. 설정법이 궁금하다면 아래 배너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