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으로 음용되는 칵테일에서 가장 많이 요구되는 덕목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유도리’라고 생각한다. 풀어 설명하자면, 대충 만들어도 어느 정도 좋은 맛이 나야 한다는 뜻이다. 칵테일 중 가장 유명한 진 토닉이 대표적이겠고, 개인적으로는 캄파리와 토닉워터의 조합도 유도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완벽한 반대 방향에 아마도 마티니가 있을 것이고.
물론 대충 만들어도 맛있다는 것이 정성을 들여봤자 소용없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칵테일이든 100%의 맛을 만들려면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지만 대충 만들어도 80% 정도의 맛이 나는 칵테일이 있는 반면, 대충 만들면 맛이 0으로 수렴하는 칵테일도 있다는 뜻이다.
대중적인 칵테일이 되려면 결국 그 ‘대중’이 그 칵테일을 만들어야만 하고, 그 일반 대중이 정말 프로 바텐더가 만드는 것만큼의 사전 준비와 기술로 칵테일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때로는 칵테일에 별 관심이 없는 이자카야의 점원이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집에서 그야말로 대충 만들어 마실 수 있는, 그래도 어느 정도 맛이 보장되는 칵테일이 대중적인 칵테일이란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칵테일 중 일본에서 특히 인기 있는 칵테일이 있다. 바로 미즈와리와 하이볼이다.
만드는 방법은 정말 간단하다. 미즈와리는 잔에 얼음을 넣고 위스키를 넣은 뒤 물을 더 넣어 섞으면 되고 하이볼은 물 대신 탄산수를 넣으면 된다. 간단하지만 위스키를 잘 고르면 꽤나 맛이 좋고 도수가 높지 않아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가는데다 하이볼이나 미즈와리를 만드는 데 적합한 위스키가 일본에서 워낙에 저렴하게 판매되기 때문에 특히 일본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물론 하이볼도, 미즈와리도 제대로 만들려면 당연히 잔, 얼음, 위스키의 종류, 제법에 이르기까지 신경써야 할 것이 많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고는 말하기 힘들겠지만 이런 여러 중요한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물이다. 차나 커피를 만들 때 어떤 물을 쓰느냐가 중요하듯이 미즈와리를 만들 때도 어떤 물을 사용하는지가 정말 중요하다. 그 미즈와리를 만들 때 쓰는 물로 이론상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위스키를 만드는 물이라고들 하는데 그 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따온 영화가 있다. 바로 <마더 워터>.
엄밀히 말하면 마더 워터란 말을 실제 스코틀랜드의 증류소 등에서 쓰는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증류소에서 근무했던 분들에게도 물어볼 기회가 있었지만 처음 듣는다는 대답을 들었었다. 그래도 그 물을 마더 워터라고 부를 수는 있겠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사실 영화 속에서는 ‘근원’이란 의미를 중의적으로 포함하고 있기도 하고.
<카모메 식당>을 보셨다면 꽤나 낯이 익을만한 배우들이 스크린에 등장한다. 주인공도 같고, 다른 배우들도 꽤나 겹친다. 두 영화의 감독이 다른데도 그렇다. <카모메 식당>을 연출한 오키가미 나오코 감독은 영화 <안경>, <토일렛>,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를 만들었고, 이 영화 <마더 워터>를 연출한 마츠모토 카나 감독은 영화 <도쿄 오아시스>와 드라마 <빵과 스프와 고양이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 두 감독들이 만든 작품들은 비슷한 배우들이 비슷한 분위기에서 비슷한 내용으로 스크린을 채운다. 마치 ‘오키가미/마츠모토 월드’ 같은 느낌이랄까. 하긴 출연진뿐 아니라 스태프와 영화사도 같다고 하니 일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영화들에서 굳이 다른 걸 꼽자면 세세한 스토리와 영화 배경일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낯익은 배우들의 연기가 편안하고 따뜻하다. <마더 워터>도 교토를 배경으로, 벚꽃이 피는 계절에 포스터에 나온 7명의 사람들이 이렇다 할 특별한 일 없이 일상을 보내는 것이 다인데, 마치 핀란드 헬싱키를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이 그다지 큰 사건도 없이 생활을 이어나가는 <카모메 식당> 같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들이 이런 영화를 ‘슬로우 무비’라고 하는 것 같다. 영화 속 사람들이 두부를 만들고, 커피를 내리고, 산책을 하고, 매일 밤 미즈와리를 만들고, 의자를 고치고, 목욕탕을 지키고,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어 혼자서 맛있게 혼술을 즐기고, 그런 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나름 아름답게 꾸며가는 모습을 보며 머릿속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신경 줄들을 한올 한올 풀어가는 기분, 그게 이런 영화를 보는 참맛이 아닐까 한다.
영화 속에서 세츠코 역으로 나오는 코바야시 사토미는 그의 일터인 바에서 매일 저녁 미즈와리를 만든다. 영화 속에서는 야마자키 위스키를 사용해 미즈와리를 만드는데 요새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맛상>이라는 NHK 드라마가 대히트를 치고 중국에서 위스키 붐이 일면서 일본 위스키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버렸기 때문이다. 작년에 홋카이도의 요이치 증류소에서 유료 시음을 하다가 요이치 25년이 너무 맘에 들어 "이거 파는 거 없냐"고 물었더니 증류소에서 일하는 백발의 바텐더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우리도 이거밖에 없다"며 반쯤 남은 보틀을 흔들었다. 아쉬움을 가득 안고 바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일본 위스키의 고숙성 원액은 이제 구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아 물론, 비상식적인 가격을 치르면 구할 수 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렇듯이.) 그래도 다행인 것이, 미즈와리나 하이볼을 만들기에 좋은 위스키는 아직 가격이 오르지 않았다. 바로 산토리 가쿠.
위스키도 상품이다 보니 당연히 등급이 있는데, 가쿠는 꽤 저렴한 편이다. 일본 편의점에서 작은 사이즈의 병과 탄산수 두어 개를 1만 원이 안 되는 가격으로 살 수 있다. 1천 엔 정도만 들여도 집에서 위스키 하이볼을 만들어 마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냥 마셔도 나쁘지 않지만 미즈와리나 하이볼을 만들면 정말 맛이 좋다. 가격 생각하면 큰절하고 싶을 정도다. 게다가 위에 언급한 대로 ‘유도리’감까지 좋아서 대충 만들어도, 조금 분량이 흔들려도 마시기 편하고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한국에 수입되는 순간 가격이 3배남짓 비싸지는 것이 안타까운데, 그건 뭣보다 우리나라 주세 체계 탓이 크니 수입하는 이들을 너무 욕하지는 말자.
뭐 그래도 언급한 대로 산토리 가쿠는 우리나라에선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고 약간은 구하기도 어려워서 아쉬운데, 가쿠의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가쿠 대신 윈저 12년을 사용해도 좋으며 소소한 팁이지만 술을 냉동실에 넣어놓았다가 만들면 더 맛있다.
위에 언급한 대로 위스키만 잘 고르면 하이볼이나 미즈와리라는 칵테일은 대충 만들어도 꽤나 맛이 좋은 편이지만, 정말 프로페셔널 바텐더가 만드는 제대로 된 하이볼이나 미즈와리를 맛보고 싶다면 바에서 드셔보시면 좋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남동의 Bar Soko에서 윈저 12년 하이볼을 마시고 정말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나고,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한번 가보시라고 권유 드리고 싶다.
이 영화 <마더 워터>도 그렇고, 다른 비슷한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인데, 보통은 영화를 보며 미즈와리나 하이볼을 만들어 마시게 된다. 미즈와리나 하이볼처럼 주위 어디에나 있는, 흔하디흔한 삶을 살아가는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가 영화에 실려 나에게 전해온다. 그런 영화를 보며 천천히 한 잔의 술을 마시다 보면 이 낯익은 배우들이 만드는 세계가 나를 감싸주는 걸 느끼게 된다. 바쁜 일상에 지칠 때쯤, 한 번쯤 보기 좋은 영화다. 혹시 안 보신 분이 있다면, 추천드린다.
- 마더 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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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츠모토 카나
출연 고바야시 사토미, 코이즈미 쿄코
개봉 2010 일본
데렉 / 술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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