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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30주년을 맞는 한국영화들: 트렌디 멜로 전성시대,〈101번째 프로포즈〉와〈첫 사랑〉

한국영화의 첫번째 황금기는 1960년대다. 휴전 이후 1950년대 후반부터 한국영화산업은 꾸준히 성장하기 시작하여 60년대에 이르면 연간 제작편수 200편이 넘는 완연한 성장 산업으로 안착하게 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황금기에 개봉했던 대부분의 영화들이 멜로 장르였다는 사실이다. <미워도 다시 한번>(정소영, 1968), <초우>(정진우, 1966), <아낌없이 주련다>(유현목, 1962), <맨발의 청춘>(김기덕, 1964) 등은 황금기 멜로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1970년대 텔레비전의 부상으로 한국영화는 급격한 하락세에 놓이지만 그럼에도 멜로 영화는 늘 주류에 차지하는 흥행 장르였다. <영자의 전성시대>(김호선, 1975), <별들의 고향>(이장호, 1974), <꽃순이를 아시나요>(정인엽, 1979) 등의 작품들은 최악의 불경기에도 관객몰이에 성공했던 호스티스 멜로영화들이다.

이후 1980년대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던 토속 에로 영화들(<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정진우, 1981), <산딸기>(김수형, 1982)), 그 반대선상의 사회적 리얼리즘 영화들(<칠수와 만수>(박광수, 1986))이 서서히 등장할 수 있었던 춘추전국 시대를 거쳐 90년대에는 다시금 멜로 영화들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물론, 90년대의 멜로 영화들은 60년대의 ‘정통 멜로’ 혹은 ‘신파 멜로’와는 큰 차이를 드러낸다. 주로 (결혼) 제도권으로 들어가지 못한 여성들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선대의 멜로 영화들(<미워도 다시한번>, 호스티스 영화들)과는 달리 90년대 새롭게 등장한 멜로영화들은 비극보다는 희극에 가까운 로맨틱 코미디적 설정과 주체성을 가진 여성 캐릭터의 활약을 경향으로 한다.

〈101번째 프로포즈〉 포스터
〈101번째 프로포즈〉 포스터


일련의 작품들 중에서도 오석근 감독의 <101번째 프로포즈>와 이명세 감독의 <첫 사랑>은 올해 개봉 30주년을 맞는 한국영화임과 동시에 90년대 영화산업의 변화와 관객문화의 급격한 변화를 상징하는 이른바, ‘트렌디 멜로드라마’다. 먼저 소개할 <101번째 프로포즈>는 후지티비에서 1991년에 방영했던 드라마를 영화화 한 것이다.

​영화는 노총각이자 건설회사 계장인 구영섭(문성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99번이나 선을 봤지만 번번히 퇴짜를 맞는 중이다. 그러나 100번째로 첼리스트 정원(김희애)과 선을 보게 된 영섭은 너무나 과분한 여자임을 알지만 그녀의 마음을 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죽은 약혼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정원도 성실하고 순수한 영섭의 사랑에 차츰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정원이가 꿈에도 잊지 못하는 죽은 약혼자와 너무나도 흡사한 김준기라는 남자가 나타나고 정원은 사랑과 과거의 기억 사이에서 결국 준기에게 마음을 돌린다. 한편 영섭은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사법시험에 도전하고, 시험에 합격하는 날 정원에게 자신의 결혼 반지를 받아달라고 했지만, 그는 시험에 떨어지고 정원에게 주려던 결혼 반지를 강에 던져 버린다. 그러나 정원은 옛사랑의 기억보다 더 진실하고 소중한 또 하나의 사랑을 깨닫고 야간 작업장에 일하고 있는 그를 찾아간다.

 

<101번째 프로포즈>는 “<서편제>와 함께 빈사상태에 빠진 국산영화의 체면을 살려주고 있는 작품”으로 언급되며 (당시) 신인감독의 작품으로는 주목할 만한 흥행을 기록했다. 영화는 많은 지점에서 할리우드식 트렌디 멜로드라마의 관습을 따르고 있다.

 

〈101번째 프로포즈〉 스틸컷
〈101번째 프로포즈〉 스틸컷


​첫번째,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롭 라이너, 1989)가 그렇듯 영화의 인물 구성은 메인 캐릭터인 한 커플과 그들의 사이드킥인 남녀 한 쌍이다. 이 작품에서는 김승우가 연기하는 구영섭의 동생, 김금용이 맡은 정원의 친구가 그것이다. 따라서 영화의 전개는 중심 캐릭터들이 가까워지는 과정, 혹은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이지만 이야기를 채우는 상당부분은 이 사이드킥 캐릭터들의 소소한 대사(주로 코미디에 가까운)와 콩트적 설정인 것이다. 이러한 지점은 지난 한국 멜로영화들이 과도한 신파, 다시 말해 ‘어쩌다 남자를 잘못 만나 팔자를 망친 여자’의 비극적 운명을 메인 스펙터클로 했던 경향과는 완전히 다른 면모라고 할 수 있다. <101번째 프로포즈> 역시 ‘결혼’이라는 화두를 메인 이슈로 두지만, 이는 지극히 90년대적 맥락에서의 사랑을 규격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 더 현저한 영화의 중추는 ‘영섭’과 ‘정원’의 순애보적인 로맨스다. 아마도 이 영화가 90년대의 젊은 관객들에게 소구되었던 이유는 그간 한국영화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지극히 유약한 남자의 지극히 한결 같은 구애였을 것이다. 이는 반대로 말해 응답을 기다리는 여성이 아닌, 응답의 주체가 되는 여성이 출현, 즉 로맨스의 재현에 있어 완전한 젠더적 전복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101번째 프로포즈〉 스틸컷
〈101번째 프로포즈〉 스틸컷


<101번째 프로포즈>의 이러한 진보성은 이 영화가 기획영화의 주체였던 ‘신씨네’가 제작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1992년 한국영화 중 가장 높은 흥행을 기록했던 대한민국 1호 기획영화(투자자나 감독이 주체가 아닌 ‘기획자’ 혹은 ‘프로듀서’가 영화의 전반을 기획하여 만드는 프로젝트), <결혼이야기> 그리고 뒤를 이은 <미스터 맘마>를 제작했던 신씨네는 불과 1년만에 또 다른 트랜디 멜로 영화, <101번쨰 프로포즈>로 관객몰이에 성공한 것이다.

 

(사진 출처 = 블로그 '천만방문한곳' )
(사진 출처 = 블로그 '천만방문한곳' )


신씨네가 제작한 앞선 두 영화와 <101번째 프로포즈>에는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멜로 혹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적 공통점을 제외하고 세 작품들은 모두 결혼, 혹은 육아 라는 제도적 이슈를 근간으로 하고 있지만(이런 맥락에서는 60년대 정통 멜로 영화들과 뿌리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으나) 영화의 관점은 ‘관습’이 아닌 제도적 ‘이면’이다. 예컨대 <결혼이야기>는 신혼 부부의 사소한 갈등, 특히 남녀의 역할 분담에서 오는 소소한 싸움들이 주요한 에피소드가 되는 작품이고, <미스터 맘마>는 가부장적인 남편을 참지 못하고 가출한 아내를 대신하여 육아를 떠 안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시대적 한계가 명확하기는 하나 두 작품 모두 가부장의 지배에서 오는 제도의 병폐를 명백히 드러내는 시도를 보인다. 비슷한 맥락에서 <101번째 프로포즈> 역시 ‘연애’라는 제도의 혁신을 종용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분명 2000년대까지 이어졌던 트랜디 멜로 영화 제작의 신호탄이었다.


※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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