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주·김세휘·김한결·이언희, 2024년 한국 상업영화의 여성감독들

올해 한국 상업영화 중 여성감독의 작품은 총 몇 편?

올해 극장 개봉한 한국 상업영화 중, 기억에 남는 영화 10편을 골라보자. <파묘> <베테랑2> <범죄도시4> <탈주> 등.. 그렇다면 기억에 남는 영화 10편의 리스트 중, 여성감독이 만든 작품은 몇 편이나 되는가.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예술영화를 포함해 리스트를 작성한다면 여성감독의 비율은 조금 더 높아질 것이다. 물론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구분이란 어디까지나 산업의 관점에서 나눈, 편의를 위한 구별에 지나지 않지만, 올해는 김다민 감독의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남궁선 감독의 <힘을 낼 시간>, 정지혜 감독의 <정순>, 김수인 감독의 <대치동 스캔들>, 김은영 감독의 <더 납작 엎드릴게요>, 이미랑 감독의 <딸에 대하여>, 김현정 감독의 <최소한의 선의> 등, 다양한 신진 여성영화인들이 독립영화를 무대로 저마다의 장기를 선보였다.

 

분명 여성감독들이 해마다 점점 더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상업영화의 문턱을 넘는 여성영화인들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3년 한국 영화 성인지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상업영화 35편 중 여성감독의 작품은 딱 한 편뿐이었다. 그 작품은 바로 임순례 감독의 <교섭>. 비율로 따지면, 상업영화 중 약 3%만이 여성감독의 작품인 셈이다.

 

그러나 올해는, 작년보다는 훌쩍 오른 수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올해 개봉한 상업영화의 감독 중, ‘무려’ 네 명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단 한 명뿐이었기에, ‘불과’ 네 명에 지나지 않는 2024년 개봉 상업영화 여성감독의 수를 ‘무려’라고 표현하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이들의 등장은 분명 큰 가치가 있기에 아래에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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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시민덕희〉, 〈그녀가 죽었다〉, 〈대도시의 사랑법〉, 〈파일럿〉

박영주 감독의 <시민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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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덕희〉 제작보고회 현장의 박영주 감독

‘천만영화’와 독립영화로 양분된 한국영화계에 ‘중박’ 역할을 할 ‘허리’가 필요하다고 모두가 입 모아 말하는 가운데, 올해 1월 개봉한 <시민덕희>는 그 중간을 담당한 상업영화였다. <시민덕희>는 소위 말해 ‘알짜’같은 작품이기도 했는데, 영화는 누적 17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주연한 라미란은 ‘2024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시민덕희>가 모티브로 한 실화의 주인공은 영화의 흥행 이후 국민권익위로부터 포상금 5천만 원을 받게 됐다.

<선희와 슬기>로 장편 데뷔를 한 박영주 감독에게는 <시민덕희>가 첫 상업영화 연출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재학 중이던 때 만든 단편영화 <1킬로그램>으로 칸영화제에 초청되었던 그가 상업영화의 영역에 도전한 건 다소 의외이기도 했는데, 박영주 감독은 <시민덕희> 개봉 당시 씨네플레이와의 인터뷰에서 “본래 상업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었다”라며 남다른 개봉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기분 좋은 의외성’으로 범벅된 영화와 여성감독이다.


김세휘 감독의 <그녀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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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죽었다〉 촬영현장의 김세휘 감독(왼쪽), 배우 변요한

 

독특한 장르영화로 과감히 데뷔한 여성감독이 나타났다. 배우 변요한과 신혜선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올해 5월에 개봉해 누적 123만 관객을 동원하며 준수한 성적을 보였는데,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다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녀가 죽었다>는 영화 <맨홀>(2014), <치외법권>(2015), <인천상륙작전>(2016) 등에서 스크립터로 활동한 김세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충무로의 감독들이 대개 조감독을 거치거나 영화학교에서 단편영화를 몇 편 제작한 후 장편 데뷔를 하는 것과는 달리, 김세휘 감독은 단박에 상업영화로 장편 데뷔했다. <그녀가 죽었다>는 신인답지 않은 과감한 선택이 돋보이는 작품인데, 가령 관객에게 절대 호감을 살 수 없는 두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점이 그렇다. 뻔하지 않은 길을 가는 김세휘 감독의 ‘배짱’이 엿보인다.


김한결 감독의 <파일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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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X 한국영화감독조합의 [한국영화, 감독] EP. 12 김한결 감독

김한결 감독의 <파일럿>은 말 그대로 역사를 썼다. <파일럿>이 누적 471만 관객을 동원해 역대 여성감독의 한국영화 중 가장 큰 흥행을 기록한 것. <파일럿> 이전까지 가장 흥행한 여성감독의 한국영화는 약 401만 관객을 동원한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이었으니, 약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크게 흥행한 한국여성감독의 영화가 그만큼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단편 <구경>(2009)으로 청룡영화제 단편상을 수상한 김한결 감독은 장편 데뷔를 상업영화로 한 케이스인데, 그의 장편 데뷔작 <가장 보통의 연애>(2019)는 약 29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다만, 씨네플레이와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의 인터뷰 시리즈 [한국영화, 감독]에 출연한 김한결 감독은 정작 장편 데뷔 후 영화를 하지 않을 생각을 했고, 한동안 자신이 만든 영화를 못 봤다고. 그러나 그 기다림과 고뇌의 끝은 <가장 보통의 연애> <파일럿>의 연타석 흥행과 신기록으로 이어졌으니, 이제는 김한결의 다음이 궁금해지는 건 당연지사다.​


이언희 감독의 <대도시의 사랑법>

〈대도시의 사랑법〉 촬영 현장의 배우 노상현(왼)과 이언희 감독
〈대도시의 사랑법〉 촬영 현장의 배우 노상현(왼)과 이언희 감독

적어도 한국 상업영화에서 이런 그림을 본 적이 없었다. 이언희 감독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 임신중단, 교제폭력 등의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귀한 상업영화다. 이언희 감독은 충무로에서 약 20년간 활동해 온 여성감독으로, <탐정: 리턴즈>(2018) <미씽: 사라진 여자>(2015) 등을 연출해 왔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이 더욱 귀한 이유는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 등 주요 스태프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감독, 제작자, 작가 모두가 남성인 영화는 흔하지만 그 반대인 작품은 손에 꼽을 수 있기에 <대도시의 사랑법>은 더욱 가치 있다.

 

이언희 감독은 과거 <미씽: 사라진 여자> 개봉 당시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남편(이권 감독)이 '작년에 디렉터스컷 갔는데 거기 여자 감독들 많던데? 10명도 넘어' 이러는 거다. 화가 났다. 그 자리에 200~300명 정도 왔다고 들었는데 10명이 넘는 게 많은 건가? 물론 점점 많아지고 가시화되는 부분은 있는데 통계화되지 않을 정도로 많으면 세상이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 나도 여성감독이 아니라 이언희라는 감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라며 충무로에서 활동하는 감독으로서,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가진 신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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