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4명의 소년들이 있었다. 그리고 여자아이가 있었다. 소년들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사람을 골탕 먹이고 도망쳤다. 서로 웃었고 사랑했다.
 
그리고 58년이 지났다여느 친구들처럼 그들도 미국 전역으로 흩어졌다. 어떤 이는 건강에 큰 문제가 생겼고, 어떤 이는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져 살아가고 있고. 어떤 이는 너무나 성실한 늙음에 진저리를 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친구는... 돌연 32살 어린 여자와 결혼한다고 통보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인생 마지막 총각파티를 위해 라스베가스로 모였다.
 
영화 <라스트베가스> 이야기다.

한 사람은 아내가 챙겨준 콘돔과 비아그라를 가슴에 품고, 또 한 사람은 노후의 마지막 연금을 탈탈 털어 블랙잭을 한다. 꽃보다 할배가 무색하게 이들은 비키니 파티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블랙잭에서 딴 돈으로 호텔의 최고급 펜트하우스에서 파티를 하며 심지어 어릴 때처럼 남자 둘이 여자 하나를 두고 싸우기까지 한다. 누구에게나 늙음은 슬프고 애잔하지만 그 늙음을 꽤나 주책맞게 즐기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지어진다.
 
영화 내내 블러디 메리, 레드불 보드카 같은 다양한 칵테일들이 나온다. 이 두 칵테일의 주재료는 바로 보드카보드카는 색이 없고 향이 적은 대표적인 증류주 중 하나다. 고급품들은 조금 다르지만 대개의 보드카들은 비싸지 않은 재료를 갖고 연속증류 기법을 사용해 만든다.
 
참고로 술은 크게 양조주와 증류주로 나뉘고 그 안에서 다시 여러 분류가 생긴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양조주는 재료의 탄수화물을 당화시켜서 발효하거나 혹은 원래 함유된 당분을 발효시켜서 알코올을 만들고(최대 20도 이하), 증류주는 이를 다시 증류시켜서 만든다.
 
증류 방법은 다시 단식 증류와 연속 증류로 크게 나뉘는데, 증류 횟수가 증가할수록 원재료의 특성은 없어지고 보다 순수한 알코올만 남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당연히 연속 증류 방법으로 만든 대부분의 보드카는 재료의 풍미보다는 알코올 그 자체의 맛과 향을 갖게 된다. 참고로 연속 증류 방식의 보드카에 물을 더 타고 감미료를 넣으면 그냥 우리나라 소주와 같다. 그러다 보니 한때 우리나라 진로 공장에서도 유명한 보드카인 스미노프 레드를 생산했었다.
 
술 자체의 특성이 크지 않고 알코올의 풍미만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스트레이트로 마시기보다는 칵테일을 만드는 데 많이 쓰인다. 이미 그림이 그려져 있는 캔버스보다 하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자기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편한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그럼에도 보드카를 스트레이트로 마시고 싶다면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마시는 걸 추천한다. 이렇게 마시면 알코올의 과도한 향이 억제되고 약간 끈적한 질감이 생겨 마시기에 편하다.

여러 종류의 보드카들이 우리나라에서 사랑받고 있는데, 맛과 향이 심플하다 보니 역설적으로 그 약간의 차이가 큰 품질의 차이를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저렴한 보드카 중에는 스미노프 블랙, 조금 가격이 나가는 보드카 중에는 벨루가를 선호한다. 보드카가 그리 비싼 술이 아니니 너무 저렴한 것보다는 조금 값이 나가는 보드카를 시도해보시라 권유 드리고 싶다.

그러고 보니 영미!’를 필두로 수많은 유행어와 화젯거리를 양산해낸 동계올림픽도 어느새 끝났다. 개인적으로도 업무 관계로 평창을 여러 번 찾았는데 추운 날씨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이런 날씨 속에서도 노력한 선수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했던 사람들, 뭣보다 달달 떨며 고생했을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전 세계 사람들이 즐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날씨가 춥다 보니 더더욱 보드카 생각이 많이 났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한 북유럽 국가 사람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자기 국가 이름을 걸고 참여하지 못한 러시아 사람들 등 추운 날씨를 견디며 사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술이 바로 보드카라서 더 그랬을 것 같다.
 
<라스트베가스> 속 네 할아버지들은 즐거운 파티를 마치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우리도 세계인의 축제 동계올림픽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영화 속 네 할아버지들이 영화 말미에 각자의 방법으로 행복을 찾았듯 우리들 인생에도 그렇게 잔잔하고 즐거운 행복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간만에 신나는 파티 음악을 듣고 싶어진다. 손에 차갑게 얼린 벨루가 한 잔을 들고.

라스트베가스

감독 존 터틀타웁

출연 로버트 드 니로, 마이클 더글라스, 모건 프리먼, 케빈 클라인

개봉 201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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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렉 / 술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