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좋아한다. 5년 전만 해도 내게 고양이란 지나가다 길에서 마주칠 수 있는 가장 귀여운 존재, 쓰레기통을 뒤지다 옆집 아주머니께 쫓겨나는 가여운 존재 정도였다. 십 대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동생과 나는 애완동물을 키우자고 엄마 아빠에게 떼쓰고, 사정하고, 졸랐지만 부모님은 네발 달리고 털 난 동물이라면 무조건 반대를 외쳤다. 결국 인간을 제외한 포유류를 우리 집에 들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 시절 있지도 않은 애완동물 이름을 고민해서 짓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2014년 3월, 평생 우리 집에 올 수 없을 것 같던 손님이 찾아왔다. <인사이드 르윈> 속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작)가 잠시 머문 집 현관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그 노란 고양이처럼 우리 가족의 삶에 고양이 한 마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인사이드 르윈>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짜미

고양이 이름은 짜미다. 연고도 없는 길에서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만나 우리 집까지 오게 된 짜미는 첫날 마치 원래 자신의 자리였던 양 내 방 의자에 배를 깔고 누웠다. 그렇게 에디터는 집사가 됐다. 고양이가 등장하는 영화를 관심 있게 보게 된 것도 그때부터다.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에서 제임스(루크 트레더웨이)는 길 위에서 버스킹을 하며 살아간다. 길에서 사는 제임스와 길고양이 밥은 당연스럽게 길에서 만나고, 둘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힘들 때나 붙어있으며 어느새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 사이가 된다. <인사이드 르윈>과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두 편의 영화 속 고양이들을 보며 신기했던 점은 딱 한 가지였다. 어쩜 저리 소리 한번 안 내고 얌전할까. 짜미는 현관문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죽는다고 냥냥 대는 통에 산책은 고사하고 미용하러 6개월에 한 번씩 겨우 나가는 것도 진이 빠지는데. 길 위에서 목줄을 맨 채 우아하고 꼿꼿하게 걷는 영화 속 밥의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고양이는 불러도 오지 않는다>
<고양이는 불러도 오지 않는다>

고양이들은 특이하다. 부르면 안 온다. 아무리 불러도 귀만 한번 쫑긋하거나, 후하게 인심 쓰면 고개를 한번 스윽 돌려주는 정도다. 안 부르면 온다. 식탁에 둘러앉아 가족들이 밥을 먹고 있으면 슬쩍 옆에 와 사료를 오도독 씹어 먹고, 무심한 듯 방에 들어가 앉아있으면 콧등으로 문을 스윽 밀어 열곤 괜히 내 앞을 어슬렁거린다. <고양이는 불러도 오지 않는다>의 쿠로와 친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부를 땐 절대 안 오는 도도한 쿠로와 친도 잠 잘 때가 되면 미츠오(카자마 슌스케)의 이불 안으로 들어가 잠을 잔다. 미츠오는 그럴 때마다 “이불 속은 안돼!”라며 짜증을 버럭 내기 일쑤지만, 그도 이내 인정하고 만다. “따뜻해.” 정말이다. 모든 고양이들이 그렇듯 짜미도 그렇다. 내 팔과 몸통 사이로 쏙 들어와 함께 기대 자다 보면, 겨울엔 그 온기가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고양이 춤>
<고양이 춤>

엄마와 나는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거의 매일 저녁밥을 먹고 집 근처 산책로를 걷는다. 별다를 것 없이 늘 똑같았던 엄마와의 저녁 산책은 새로운 식구가 들어온 이후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고양이 사료와 물과 플라스틱 그릇을 꼭 챙겨나가는 것. <고양이 춤> 속 길냥이들만큼이나 우리 동네 곳곳에도 고양이들이 참 많았다. 하긴 어느 동네나 그런 것 같긴 하다. 우리 집 뒤엔 작은 산이 있었는데, 봄이면 노오랗게 물드는 개나리꽃 덤불은 그들의 집이었고, 식당이었고, 놀이터였고, 화장실이었다. 엄마와 내가 간간이 그들의 밥을 챙겨주듯 맘씨 좋은 한 아주머니는 큰 플라스틱 통에 사료와 물을 한가득 부어놓고 고양이들의 뷔페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만 있으면 참 좋으련만.

<고양이 춤>

그들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뜯어놓는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해를 가하려 했던 <고양이춤> 속 어떤 할아버지처럼. 하지만 나는 그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만큼이나 그들을 ‘예뻐했던’ 사람을 더 싫어한다. 잠깐 귀여운 모습에 혹해 키우고는 쉽게 버려버리는 사람들. 매일 고양이와 놀아주고, 밥을 챙겨주고, 응가를 치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때맞춰 예방 접종을 하고,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예기치 못한 병치레에 병원을 데려가고, 적어도 며칠에 한 번씩 이빨을 닦아주고, 말도 못하게 날리는 털을 감당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다. 키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책임은 아무나 질 수 없다. 책임이라는 그 단어보다 훨씬 무거운 무언가가 있다. 그건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선 안되는 것이다.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시작도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고양이를 좋아한다. 5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네발 달리고 털 난 동물이 우리 식구가 되었다. 어디 한번 데려오기만 해보라고 으름장을 놓던 아빠가 요즘 사는 재미에 짜미가 8할을 차지하고, 딸내미에게 사랑한단 소리가 인색한 엄마는 짜미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이쁘다, 사랑해”를 연발한다. 나와 동생은 말할 것도 없이 짜미에게 온갖 애정을 듬뿍듬뿍 쏟아낸다. 동물을 키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고 추억을 쌓으며 짜미 또한 ‘애완’ 동물이 아닌 평생을 함께 할 ‘반려’ 동물이 되었다.

인사이드 르윈

감독 조엘 코엔, 에단 코엔

출연 캐리 멀리건, 저스틴 팀버레이크, 오스카 아이삭, 존 굿맨

개봉 2013 미국,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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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깨 위 고양이, 밥

감독 로저 스포티스우드

출연 루크 트레더웨이

개봉 2016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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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불러도 오지 않는다

감독 야마모토 토루

출연 카자마 슌스케, 츠루노 타케시, 마츠오카 마유, 이치카와 미와코, 야시바 토시히로

개봉 2015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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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춤

감독 윤기형

출연 이용한, 윤기형, 길고양이들

개봉 2011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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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박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