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쳐’(Vulture)와 리프린트 계약을 맺고 번역한 콘텐츠를 편집한 글입니다. (written by 안젤리카 제이드 바스티앙)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필자가 어릴 적 배운 교훈 중 하나는 분노가 여성에게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맥락과 급진적인 잠재력이 기저에 깔려 있다. 분노는 반드시 파괴적일 필요는 없지만, 그 속에 세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이 교훈은 어린 시절 집에서 봐온 여성들이 분노를 연료 삼아 극복하는 모습을 통해 배운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분노라는 감정을 표출할 때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 역시 잊지 않았다. 그래서 분노로 꽉 찬 넷플릭스 드라마 <제시카 존스> 시즌 2가 유독 매력적인가 보다.
 
<제시카 존스> 두 번째 시즌에서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부분은 메인 악역으로 등장하는 앨리사 존스(자넷 맥티어)가 다섯 번째 에피소드 문어’(The Octopus)에서 한 남성을 살해한 후 직접 지핀 불을 말없이 지켜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올해 <제시카 존스>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인 크나큰 트라우마에 따른 여성 분노의 복잡한 현실이 함축된 장면이라 봐도 무방하다.
 
물론 <제시카 존스> 시즌 2는 아쉬운 점도 있다. 이번 시즌은 시즌 1 막판에 죽긴 했어도 이야기를 이끌 에너지를 가졌던 킬그레이브(데이비드 테넌트)와 같은 악역이 없다. 대신 제시카 존스(크리스틴 리터)가 자신의 과거와 IGH라는 조직을 추적하는 이야기에서 그녀의 기원을 그려냈다. 시즌 2가 핵심 악역을 두는 대신 여러 개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로 결정하면서 산만해진 감이 없지 않다. 이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는 각 인물의 이야기에서 여성의 분노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끊임없이 고민하는 제시카, 힘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트리시, 제시카보다 강한 힘을 가진 앨리사의 이야기에서 살펴본다.
 
이러한 시도는 제시카 존스를 현재를 대변하는 완벽한 슈퍼히어로로 보이게 한다. 이번 시즌 각본은 하비 와인스타인의 몰락과 #미투 운동 이전에 쓰였지만,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른 현실의 격렬한 논쟁과 재평가되는 이슈 -직장 내 성추행, 성적 트라우마 등 여성이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던 이야기- 을 다루었다. 그러나 제시카 존스 시리즈를 발 묶는 가장 큰 요인은 분노가 전적으로 물리적 폭력과 자멸에 달려있고, 여성의 삶이 특히 트라우마와 연관되었다고 이야기한다는 사실이다.

제시카와 분노의 관계는 그녀가 IGH와 연관된 능력자들을 죽인 범인 -어머니 앨리사- 을 발견했을 때 전환점을 맞이한다. 제시카는 앨리사를 통해 자신의 미래가 될 법한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앨리사의 분노는 수년 동안 여러 사건을 통해 쌓여왔고, 그 결과 자신의 행복과 평화를 위협하는 무언가를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로젠버그는 앨리사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스스로 원했던 사람이 될 수 없었다. 제시카는 이번 시즌에서 그 사실을 마음속에 새겼다라고 말했다.
 
제시카와 앨리사의 이야기는 <제시카 존스> 시즌 2에 일촉즉발의 모녀 관계를 더한 동시에 복잡한 여성 분노에 대한 이야기를 빼앗았다. 두 사람은 분노를 폭력이나 처절한 자멸로만 표출했기 때문이다. 맥티어와 리터의 연기는 빛났지만, 그들의 퍼포먼스는 시리즈의 주제가 여성의 삶이 트라우마와 폭력을 근간으로 둔다라는 사실 때문에 아쉬움을 남긴다.

트리시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트리시 역시 자신의 트라우마 가득한 과거를 만들어낸 인물 연예계 초창기 어머니의 권유로 본인을 성적으로 착취했던 맥스 테이텀(제임스 맥카프리)- 과 마주한다. 트리시가 맥스를 협박하는 상황에도, 그는 마치 자신이 학대한 15살 소녀를 대하듯 여유가 넘쳤다. 트리시는 제시카가 곁에서 지켜주고 있을 때, 맥스와 두 번째로 조우하고 제시카는 완력으로 그를 제압한다. 트리시가 힘을 구원으로 여기는 이유가 이해되는 부분이다. 힘을 제외한 모든 것을 가진 그녀는 제시카가 유일하게 가진 힘에 극도로 집착하게 된다.
 
트리시의 분노는 트라우마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근시안적이고 모든 것을 가지려 하는 특권 의식도 무시할 수 없다. 트리시의 분노는 남성우월주의를 향한 여성의 분노가 아닌 백인 여성의 특권 의식으로 가득 찬 분노에 가깝다. <제시카 존스> 작가진이 백인과 특혜에 관해 다루려 하지 않는 바람에 이 시리즈가 여성의 삶을 좀먹는 이슈와 분노를 동시에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을 낮추고 말았다.

<제시카 존스>는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변호사 제리 호가스를 통해서도 여성 분노를 탐구한다. 제리는 굉장히 약삭빠르고 이기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트리시, 제시카, 앨리사와는 달리 그녀는 폭력에 능하지 않다. 대신 그녀는 사람들의 욕망을 이용해 속이고 자신이 이득을 취하기 위해 타인이 피를 보게끔 하는 무자비한 방식에 능하다. 이번 시즌 제리의 이야기는 가장 복잡한 여성 분노 계급과 욕망, 그리고 권력의 한계 - 를 다뤘다고 봐도 무방하다.
 
<제시카 존스>의 두 번째 시즌이 현실에서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주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흥미로운 동시에 실망스러웠다. 이 시리즈가 분노를 계속 다룰 예정이라면, 여성 분노의 가장 중요한 잠재적 가치인 삶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한다는 것을 용감하게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띵양 / 에그테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