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꿈 같이 사라지고, 어느덧 가을이다. 이 시기가 되면 신나는 뮤지컬 영화도, 간질간질한 로맨스도, 시원한 액션도 그렇게 보고 싶지 않다. 살갗에 닿는 건조한 바람처럼 고독한 영화들이 필요한 시기다. 그렇다고 너무 슬픈 영화를 보면 겨울을 맞이하기도 전에 마음이 시려질 테니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바깥에서 홀로 있기 좋은 요즘, 고독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오늘은 고독과 쓸쓸함을 주제로 한 영화 다섯 편을 소개한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고독을 표현하고 있으니 취향에 맞게 가을을 즐겨보자.


그녀
Her

감독 스파이크 존즈
출연 호아킨 피닉스, 에이미 아담스, 루니 마라, 스칼렛 요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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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갈 만나서 더 외로울 때가 있다. 자기 직전, 감성에 젖어 누군갈 찾아보지만 이해가 수반되지 않은 만남은 결국 내가 혼자라는 사실만 절실히 느끼게 할 뿐이다. <그녀>는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외로운 남자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와 그의 OS체제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에 관한 이야기다. 

아내와 이혼한 후, 테오도르는 외로움에 폰섹스도 하고, 소개팅도 해보지만 잘 되지 않는다. 얘기할수록 공허해지고, 즐거워도 어딘가 한 군데 빠져 있는 느낌이 든다. 그는 소개팅 한 상대와 헤어진 후 사만다와 대화를 나누는 중 "문득, 이미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다 경험해 버린 게 아닐까 생각해. 이제부터는 쭉, 새로운 감정을 하나도 못 느끼고 덤덤이 살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내가 느꼈던 그 감정에서 축소된 어떤 것들만 남은...."이라고 말한다. 

그런 테오도르가 사만다와 만나면서 사랑을 배워간다. <그녀>는 인간과 OS의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결국엔 평범한 사랑 이야기다. 테오도르가 사만다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오해하고 또 다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다름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사랑의 과정을 겪은 그는 이제 사랑을 안다. 호아킨 피닉스의 섬세한 연기와 스칼렛 요한슨의 나른한 목소리가 돋보이는 영화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톤과 음악이 서늘한 가을을 포근하게 만들어 준다. 

그녀

감독 스파이크 존즈

출연 호아킨 피닉스, 에이미 아담스, 루니 마라, 스칼렛 요한슨

개봉 201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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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재스민
Blue Jasmine

감독 우디 앨런
출연 케이트 블란쳇, 알렉 볼드윈, 샐리 호킨스, 바비 카나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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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백을 던지며 엉엉 울고 싶다. 호텔 최상층 스위트룸에서 '서울의 야경은 너무 서글퍼'라며 청승 떨고 싶다. 돈만 있으면 슬퍼도 괜찮을 것 같은 마음에 자주 뱉는 말이다. <블루 재스민>은 뉴욕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던 재스민(케이트 블란쳇)이 빈털터리가 된 후에 겪는 일을 그린 영화다. 남편 할(알렉 볼드윈)의 사기 혐의로 집안이 몰락하자, 재스민은 자신의 동생 진저(샐리 호킨스)를 찾아간다. 빈털터리인 채로 동생에게 얹혀사는 입장이 됐지만, 그는 여전히 화려했던 과거에 집착하며 신경쇠약 증세까지 보인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이야기를 결혼해서 팔자 고치려다 실패한 여자의 이야기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재스민은 돈이 없어서 신경쇠약에 걸린 것이라기보다, '자신의 가면을 지탱해 줄 돈'이 없어서 우울하다고 볼 수 있다. 돈이 많을 땐 행복해보였던 그이지만 출신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해 그는 자신을 화려한 재스민으로 꾸며낸다. 과거엔 돈으로 텅 빈 자신을 꾸미며 과시했던 그는 여전히 과시하고 싶어 하지만 보여줄 것이 없다. '나'로 살지 않는 이의 말로는 참으로 고독하다. 

블루 재스민

감독 우디 앨런

출연 케이트 블란쳇, 알렉 볼드윈, 샐리 호킨스, 바비 카나베일

개봉 201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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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디 에어
Up In The Air

감독 제이슨 라이트먼
출연 조지 클루니, 베라 파미가, 안나 켄드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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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부담스럽고, 가족, 친구, 연인과의 관계가 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가끔 찾아온다. 그럴 땐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로워지고만 싶다. <인 디 에어>는 기업을 대신해서 사원에게 해고 통보를 하는 베테랑 해고 전문가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의 이야기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해고당할 사원을 만나는 게 일인 그는 1년에 322일 출장을 간다. 그러다보니 집보다 비행기가 편하고, 일상이 오히려 짐처럼 느껴진다.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천만 마일리지를 모아 세계에서 7번째로 플래티넘 카드를 만드는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라는 인생 모토를 가진 그는 정착하지 않고 공중에서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며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 두 가지 변화가 찾아온다. 화상통화로 해고 통보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한 신입사원 나탈리(안나 케드릭)와 자신과 똑 닮은 가치관을 갖고 있는 여자 알렉스(베라 파미가)의 등장이다. 인생은 여행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던 그는 두 사람을 만나며 점차 변해간다. 건조한 현대인의 삶을 위트 있게 다룬 <인 디 에어>는 뻔한 로맨스에서 벗어났다. 영화가 말하는 건 '삶의 의미는 자신만이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문득 인생이 쓸쓸할 때 꺼내보면 좋다. 조지 클루니의 목소리는 쓸쓸하면서도 어쩐지 위로가 된다.

인 디 에어

감독 제이슨 라이트맨

출연 조지 클루니, 베라 파미가, 안나 켄드릭

개봉 201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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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티풀
Biutiful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출연 하비에르 바르뎀, 마리셀 알바레즈, 에두아드 페르난데즈, 디아리아투 다프, 쳉 태 쉔, 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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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때로 결말이 뻔한 삼류 영화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싸구려 영화관에서 나가고 싶은데도, 티켓 값이 아까워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가질 못하고 있다. <비우티풀>은 조금 이르게 겨울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영화다. 주인공 욱스발(하비에르 바르뎀)은 불법 체류자들에게 일거리를 주는 인력 브로커다. 그에겐 조울증을 앓고 있는 아내와 그가 거둬야 할 어린 자식 둘이 있다. 그는 죽은 이들의 영혼을 볼 수 있는 능력으로 그들을 달래는 일을 하지만 정작 그의 영혼은 편히 쉬지 못한다. 

그는 암 말기 판정을 받고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3개월 정도라는 이야길 듣는다. 욱스발은 지옥 같은 빈민촌에 남겨질 아이들을 떠올린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아이들을 위해 처절하게 돈을 모은다. 그는 죽어가는 존재지만 어떤 보살핌도 없이 남은 생을 치열하게 산다. 그 과정에서 그는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존재인지 깨닫는다. 영화는 관객에게 '삶은 아름다운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불행이 삶을 강타해도 희망을 찾으려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뒤틀려도 아름답지 않은가.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는 영화를 이끌고 간다. 많은 표정을 짓지 않아도 욱스발의 삶을 완벽하게 표현해내며 관객들이 그의 삶을 이해하도록 만든다. 

비우티풀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출연 하비에르 바르뎀, 마리셀 알바레즈, 에두아르드 페르난데즈, 디아리아투 다프, 쳉 태 쉔, 뤄진

개봉 201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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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에
Le Fabuleux Destin D'Amelie Poulain , Amelie Of Montmartre

감독 장-피에르 주네
출연 오드리 토투, 마티유 카소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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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다고 꼭 슬퍼야만 할까. <아멜리에>는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로 고독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인공 아멜리에 폴랑(오드리 토투)은 홈스쿨링을 해 친구가 없었다. 고독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몽상을 하거나 혼자 놀며 지냈다. 성장한 아멜리에는 곡식 주머니에 손 넣기, 생마르땅 운하에서 물수제비뜨기, 숟가락으로 크렘 부를레 깨기 등 여전히 혼자 지내고 있었다. 아멜리에는 소녀처럼 순수하고, 고독한 사람이었다. 그는 남의 집을 망원경으로 살피거나, TV를 보는 등 세상과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멜리에는 자신의 욕실에 숨겨져 있던 보물 상자를 발견한다. 상자의 주인을 찾아주기로 한 그는 TV를 끄고 상자의 주인을 수소문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외로움과 아픔을 알게 된다. 아멜리에는 상자의 주인을 찾아 주고, 기뻐하는 그의 모습에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낀다. 이후 그는 혼자놀기로 다져진 재치와 상상력으로 주변인이 겪던 외로움을 채워주려 한다. 영화는 고독에 대처하는 방법을 사랑스럽게 그려냈다. 오드리 토투는 슬픔을 가진 사랑스런 아멜리에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영화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아멜리에

감독 장 피에르 주네

출연 오드리 토투, 마티유 카소비츠

개봉 2001.10.19. / 2012.02.23.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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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김명재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