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을 손으로 들기도 귀찮아서 머리에 낀 황정민처럼 살고 있는가. 아니면 '열정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다.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벌레는 대충'이라는 명언을 남긴 유노 윤호의 말처럼 살고 있는가. 얼마 전 '대충 살자 시리즈'가 트위터에 유행처럼 불어닥쳤다. 이 문장이 유행이 된 이유는 지금 우리가 너무 열심히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이라면 모든 면에서 100% 열정을 불태울 수 없는 법. 너무 열심히만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놓치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를 골라왔다. 혹시 지금 열정을 불태우다 번아웃 직전에 놓인 상태라면 주목하자.


소공녀
감독 전고운
출연 이솜, 안재홍

대충 살자. 오늘 잘 집은 없어도, 오늘 마실 위스키 한 잔은 소중한 미소처럼.

탁월한 집안일 능력으로 프로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먹고사는 미소(이솜). 그래도 월세와 담뱃값, 위스키값을 균형 있게 배분해 살아왔다. 그러나 봉급 빼고 월세, 담뱃값, 위스키값이 다 함께 오른 팍팍한 현실, 하루 한 잔 마시는 위스키를 포기할 수 없던 미소는 제일 먼저 집을 포기하기로 한다. 떠돌이 신세가 된 미소는 잘 곳을 찾기 위해 오랜만에 친구들을 찾아 나선다. 철없던 시기를 함께 보낸 친구들이었는데 어느덧 결혼한 친구는 시댁에서 눈칫밥 먹으며 살고 있고, 직장인 친구는 과로사 직전의 냉정한 현실주의자가 되었다. 미소는 자신을 재워주지 않는 것보다 '너 아직도 이렇게 살고 있어?'라고 말하는 듯 보이는 친구의 눈빛에 더욱 상처받는다. 그러나 영화 속 미소가 불쌍해 보이진 않는다. 아마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걸 제일 마지막에 포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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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감독 전고운

출연 이솜, 안재홍

개봉 2018.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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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왕
감독 백승화
출연 심은경, 박주희
대충 살자.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를 아는 만복이처럼.

만복(심은경)은 뭐든 적당히 하고 살고 싶은 요즘 10대들의 모습이 반영된 캐릭터다. 선천적 멀미 증후군 때문에 왕복 4시간을 걸어서 등하교 해서 그런지 만사가 피곤한 그녀는 대충 사는 게 삶의 모토다. 그런데 유노 윤호 같은 열정 부자 담임 선생님은 만복의 타고난 경보 솜씨를 알아보고 본격적인 운동 경보를 할 것을 추천한다. 그때부터 만복의 일상에 '열정', '패기'라는 단어가 끼어든다. 만복은 자신의 의외의 재능 발견하고 나름 의지를 불태우며 열정적으로 경보 선수를 준비한다. 자신의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렸지만 어느 순간 스스로 멈추길 선택한다. 어쩌면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것보다 결승선을 앞에 두고 멈추는 것이 더 큰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로 인생을 살고 싶은 당신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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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왕

감독 백승화

출연 심은경, 박주희

개봉 201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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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코바야시 사토미, 이치카와 미카코, 카세 료

대충 살자. 남이 끄는 자전거 뒷좌석에 앉아 편하게 멍 때리는 타에코처럼.

여기 소개된 영화 중 가장 대충 볼 수 있는 영화가 있다면 아마 이 영화가 아닐까 싶다. 틀어놓고 아무 생각 없이 보다 지루해서 잠들어도 별지장이 없다. 이런 영화 보다 잠들면 숙면을 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안경>이 특이한 지점은 '주인공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만 담았다는 것이다. 생물 선생인 하루나(이치카와 미카코)가 학생을 가르치는 장면도 없고, 민박집 주인의 노동 장면도 없다. 이 마을로 떠나야만 했던 주인공의 현실 공간도 보여주지 않는다. 어찌 보면 쓸 데 없는 장면만 나열한 거 같아 보이는데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편해진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쳇바퀴 같은 일상의 시간과 시간 사이에 어떤 공백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꺼내보면 좋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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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고바야시 사토미, 이치카와 미카코, 카세 료

개봉 2007.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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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감독 임순례
출연 김태리, 류준열, 문소리

대충 살자. 하루 시간표 전부가 삼시 세끼인 혜원처럼.

혜원(김태리)은 연애도 열심히 했고, 취업 준비도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하지 않은 건 밥 먹는 것뿐이었다. 밥 먹을 시간과 체력까지 몽땅 소진해서 살았기 때문이다. 원하던 결과도 얻지 못하고 지쳐버리기만 한 혜원은 충동적으로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살던 시골집에서 홀로 살기로 한다. 혜원은 이곳에서 그동안 열심히 하지 않았던 '밥 먹기'를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자 한다. 제철에 직접 키운 농작물로 한 끼 한 끼 정성들여 지어, 소중한 사람들과 나눠 먹는다. 좋은 회사 들어가야 돼. 좋은 남자친구 만나야 돼. 오만가지 목표에 전전긍긍하다 '삼시 세끼 잘 차려 먹자'라는 단출한 목표 하나만을 세우자 마음이 편안해진다. 영화 속 혜원처럼 열심히 사느라 뒤로 밀어두었던 다른 일들에 공을 들여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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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감독 임순례

출연 김태리, 류준열, 문소리, 진기주

개봉 201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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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 대신 뜨개질
감독 박소현
출연 나나, 주이, 빽

대충 살자. 5시 30분이면 퇴근하는 겨울 해처럼.

<리틀 포레스트>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면 <야근 대신 뜨개질>은 참 현실적이다. 제목부터 더 현실적이지 않은가.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었다지만 아직 도처엔 야근하는 사람 천지다. 칼퇴 후 다른 무언갈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영화 속 여자들은 뜨개질을 선택했다. 이들은 뚜렷한 목적도 의미도 없이 야근 말고 다른 걸 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지만 뜨개질 하는 그 시간은 그녀들에게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그전에는 코앞의 쌓인 일들을 해치우느라 자신도 돌아보지 못했다면, 뜨개질을 하면서 노동 현장에 대해 고민하고, 나아가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생각할 여력도 생겼다. 이 모든 것은 어쩌면 영화 스틸컷 속 탁상 달력에 쓰여있는 '해 떨어지면 퇴근합시다'라는 말부터가 시작인 것 같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일찍 밤이 찾아와 퇴근길이 슬픈 직장인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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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 대신 뜨개질

감독 박소현

출연 나나, 주이, 빽

개봉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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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조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