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의 신하균

2019년 설날 극장가 대목을 두고 두 한국영화 <극한직업>과 <뺑반>이 경합을 벌였다. 모두 경찰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다. 화려한 캐스팅 가운데, 악질 마약 업자 이무배 역의 신하균(<극한직업>)과 우직해 보이는 선배 윤과장 역의 염정아(<뺑반>)가 여느 때에 비해 작은 비중의 캐릭터로 참여한 점이 눈에 띈다. 이들처럼, 홀로 원톱 영화도 가능한 배우임에도 짤막하게 출연해 짙은 인상을 남긴 배우들의 활약상을 갈무리했다.

<뺑반>의 염정아


송강호

<친절한 금자씨>

친절한 금자씨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2002)에서 비극의 구렁텅이로 굴러떨어지는 신하균과 함께, 금자(이영애) 모녀를 납치하려는 일당으로 짧게 나왔다. 밤 장면이고, 차 안에서 뭐라 떠들고 있긴 하지만 의도적으로 대사는 들리지 않게 처리해, 송강호라는 걸 알아차릴 만한 건 어둠 속에서 간신히 보이는 얼굴뿐이다. 금자가 근희(김부선)로부터 얻은 비장의 무기인 '예쁜 총'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된다.


문소리

<아가씨>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의 기억으로 맴도는 이모 역이다. 커다란 벚나무에 목매달아 자살하기 전, 일찌감치 코우즈키(조진웅)가 여는 변태적인 낭독회의 주인공으로 착취 당하는 인물. 처지에 자포자기한 텅빈 눈빛 속에 일말의 신경질적인 태도가 비치는 오묘한 균형이 문소리의 역량을 제대로 증명한다.


강동원

<1987>

1987

1987년 6월 항쟁을 그린 <1987>(2017)에서 문득 강동원이 비집고 들어올 때, 극장엔 탄성이 터졌다. <늑대의 유혹>(2004)에서 태성이 한경의 우산에 들어오는 장면이 나올 때처럼. '특별출연'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6월 항쟁의 상징과도 같은 故이한열 열사를 연기해 영화 전반에 확연한 존재감을 자랑했다. 반가운 한편, 다만 실존인물을 둘러싼 과도한 설정에 대한 비판이 일기도 했다.


설경구

<1987>

1987

설경구도 수많은 배우들의 카메오로 화제를 모은 <1987>에 참여했다.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는 성명서를 쓴 재야인사 김정남 역이다. 수사망을 피해 은둔했던 실존인물로,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가는 영화에 서스펜스를 퍼트렸다.


조승우

<암살>

암살

주인공 고니 역으로 <타짜>(2006)의 성공을 견인했던 조승우. 9년 만에 최동훈 감독의 또 다른 영화 <암살>(2015)에 특별출연으로 이름을 올렸다. 영화의 중심인물인 안옥윤(전지현), 황덕삼(최덕문), 속사포(조진웅)를 염석진(이정재)에게 소개하고 작전을 하달하는 의열단장 김원봉을 연기했다.


이병헌

<밀정>

밀정

이병헌 역시 김지운 감독의 <밀정>에서 특별출연으로 김원봉 역을 맡았다. <달콤한 인생>(2005),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악마를 보았다>(2010) 등 김지운과 여러 편 작업한 연으로 성사된 캐스팅이다. 독립운동사의 아이콘 같은 인물이라 조승우와 이병헌 모두 확실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지만, 술을 진탕 마시면서 이정출(송강호)과 친분을 쌓는 이병헌의 김원봉은 한결 가볍고 호탕하다.


엄지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또 다른 김지운의 연출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선 엄지원이 카메오로 등장한다. 오프닝에서 교차되는 여러 신 가운데, 박도원(정우성)과 접선하는 독립군이다. 도대체 어디? 라고 되묻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칸 영화제 상영본을 포함한 인터네셔널 판본에서는 엄지원이 나오는 신은 삭제됐기 때문.


황정민

<달콤한 인생>

달콤한 인생

김지운 감독의 누아르 <달콤한 인생>(2005)에선 아직 국민배우로 자리잡기 전 황정민의 명연을 만날 수 있다. 선우(이병헌)를 무참히 고문했다가 끝내 응징 당하고 마는 백 사장이 바로 그다. 비열하디 비열한 태도로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라는 대사를 남기는 신은 영화의 대표적인 장면으로 손꼽힌다. 황정민은 <달콤한 인생>의 엔딩 크레딧을 장식하는 노래 'A Honeyed Question'을 직접 부르기도 했다.


김윤석

<타짜: 신의 손>

타짜: 신의 손

연기 잘하는 조연으로 서서히 이름을 알리던 김윤석은 <타짜>의 아귀 역으로 단숨에 명배우 반열에 올라섰다. 8년 만에 <타짜> 속편에도 김윤석은 어김없이 '최종 빌런' 아귀로 등장해 클라이막스를 장식한다. 극에 색다른 활기를 불어넣는다기보다 <타짜> 시리즈를 기다린 관객들에 대한 팬서비스를 톡톡히 해내는 역할이 두드러진다. 올해 공개될 <타짜: 원 아이드 잭>에서도 아귀를 만날 수 있을까.


정유미

<염력>

염력

연상호 감독은 첫 실사영화 <부산행>(2016)의 대성공 이후 1년 만에 내놓은 신작 <염력>(2017)에 다시 한번 정유미를 캐스팅 했다. 루미(심은경)의 치킨집과 시장을 밀어버리려는 홍상무를 연기했다. 맞다, 악역이다. 못된 캐릭터와는 전혀 거리가 멀어 보이는 배우 정유미의 이미지와 어떠한 동요도 없이 민사장(김민재)을 죽일 듯 패는 홍상무의 소시오패스적인 면모를 만나 색다른 시너지를 일으켰다.


김명민

<판도라>

판도라

김명민은 지진에 원자력 폭발까지 발발하는 재난영화 <판도라>(2016)에 특별출연으로 참여했다. 박정우 감독의 전작 <연가시>(2012)에 이은 두 번째 조우. 재난 앞에 무능력하기만 한 대통령 역이었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게이트가 한국을 잠식했던 2016년 말 개봉해,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 대통령상이라며 화제를 모았다. 영화와 달리, 우리는 대통령에게서 제대로된 사과를 받지 못한 것 같지만.


공효진

<지금 만나러 갑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손예진이 오랜만에 작업한 로맨스 <지금 만나러 갑니다>(2018)에는 공효진이 카메오로 출연해 친분을 과시했다. 다만 둘은 영화 속에서는 마주하지 않는다. 주인공 우진(소지섭)의 친구 홍구 역의 고창석과의 대화 신에서만 나오기 때문. "신사임당 같이" 한복을 차려입은 다소곳한 모습으로 홍구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며 웃음을 더한다. 한복 입은 공블리는 처음이라 더 반갑다.


차승원

<독전>

독전

두 종류의 차승원이 있다. 진지한 차승원, 웃긴 차승원. <독전>의 브라이언 이사는 그 둘을 동시에 겹쳐 보이는 캐릭터다. 또렷한 이목구비를 동원하되 정중함을 유지하며 상대방을 대하다가도 돌연 얼굴을 박살낼 기세로 후려치는 냉혈한. 그리고 아무나 감히 소화할 수 없는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새. 이런 기괴함이 영화 속 인물들이 그렇게 맞닥뜨리고 싶어하는 이선생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쉽사리 놓을 수 없게 한다.


한지민

<국가부도의 날>

국가부도의 날

<국가부도의 날>(2018)은 우리가 체험한 역사 그대로 파국을 향해 나아가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제시하며 맺는다. 한지민은 그 희망의 얼굴이었다. IMF 사태 20년 후, 한시현(김혜수)을 찾아가 자문을 구하면서 제 의견을 힘주어 피력하는 이이림은 분명 시현의 좌절을 만회할 수 있는 밝은 미래처럼 보인다. 실제로 김혜수는 한지민을 후배 여성배우로서 꾸준히 주목하고 응원해왔다고 밝힌 바 있어, 묘한 공명을 이룬다.


문동명 /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