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문 기자나 평론가가 내린 별점을 보고 영화를 골라본 관객이라면 한 번쯤 ‘배신감’을 느낀 적 있을 것이다. 별점이 높았는데 막상 별로였거나, 별점이 낮아서 미뤄뒀다 봤는데 굉장히 좋았다던가. 이런 전문가와 대중들의 평가가 갈린 건 영화 역사에도 자주 있었던 일이다. 해외 매체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에서 선정한 평론가와 대중들의 반응이 달랐던 영화 10편을 소개한다.

※ 제목 하단에 소개하는 ‘토마토 미터’와 ‘오디언스 스코어’는 해외 사이트 ‘로튼 토마토’의 평론가, 관객 점수다. 평론가 점수는 개봉 당시 평단의 분위기와 일치하지 않음을 염두하자.


10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토마토 미터 91% > 오디언스 스코어 44%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존재 자체가 논란이 됐다. 평단에선 “스타워즈 세계를 이해하는 것의 매력과 앞으로의 방향을 보여주는 작품”(스플라이스 투데이의 스티븐 실버) 등의 호평이 쏟아졌다. 팬덤은 개봉을 앞두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데 웬걸, 뚜껑을 열어보니 새로워도 너무 새로웠다. 평단이 호평한 ‘예상 밖의 전개’는 관객들을 당황하게 했고, ‘다양한 시도’는 팬들이 사랑하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것이 아니었다.

팬덤의 요약짤. “저 위에 오리지널이 있고, 중간에 프리퀄, 그리고 한 50피트 정도 내려가면, 거기에 <라스트 제다이>가 있지”

개봉 직후 “전작에 대한 예우라곤 전혀 없는 영화” 같은 팬덤의 비난을 피할 순 없었다. 평단에서 독자적인 작품으로 <라스트 제다이>를 평가했다면, 팬덤은 역시 시리즈를 이어갈 <스타워즈>의 큰 그림으로 이 영화를 본 것이다. <라스트 제다이>는 페미니즘이나 PC(정치적 올바름)를 강요한다는 분석에 스타워즈 팬덤이 분열하기까기 했다. 그럼에도 흥행은 했다. <라스트 제다이>는 전 세계에서 13억 달러를 벌었다. 물론 전작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벌어들인 20억 달러를 생각하면, 팬들의 거부감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이 영화의 파장은 이후 개봉한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 흥행에도 영향을 끼쳤다.

라이언 존슨 왈 “이건 스타워즈 사상 최고의 액션 장면이 될 거야, 왜냐하면 (실제로 나온 장면) 가드들이 허공을 공격하니까”


9

프레데터

토마토 미터 80% < 오디언스 스코어 87%

영화 좀 안다는 사람 붙잡고 물어보자. SF, 군인, 정글, 외계인, 무슨 영화가 생각나요? 분명 <프레데터>를 언급할 것이다. 1987년에 제작한 <프레데터>는 SF와 액션, 스릴러를 교묘하게 접목시켜 우직한 액션 영화의 지평을 넓혔다. 하지만 당시 비평가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효과적인 액션 영화”(시카고 선-타임즈의 로저 에버트)라며 감탄한 이도 있었지만, “빈약한 플롯을 끔찍한 사망 장면과 인상적인 특수 효과로 보상하려는 평균보다 조금 나은 영화”(버라이어티), “놀랄 만한 게 거의 없는, 시끄럽고 둔한 영화”(뉴욕 타임즈 자넷 매슬린)라는 식으로 <프레데터>를 평가했다.

관객들은 <프레데터>의 매력을 알아봤다. 1500만 달러를 들인 이 영화는 전 세계에서 9826만 달러의 수익을 남겼다. 그뿐만 아니라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탁월한 액션 감각을 다시금 입증했으며, ‘프레데터’라는 희대의 캐릭터를 유행시켰다. <프레데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액션이 훌륭한 캐릭터와 배경을 만나면 어떤 시너지를 내는지 보여준 좋은 예시로 기억되고 있다.

이 ‘상남자식 악수’ 장면은

다양하게 패러디 되고 있다. (왼쪽) 미국-소련-나치랑 싸우기, 토비 맥과이어/앤드류 가필드 팬-톰 홀랜드 팬-<스펙타큘러 스파이더맨> 기원


8

록키 호러 픽쳐 쇼

토마토 미터 80% < 오디언스 스코어 85%

자신의 애인을 만드는 양성애자 프랭크 박사의 성에 들린 커플의 하룻밤 이야기. <록키 호러 픽쳐 쇼>의 시놉시스를 읽고 의아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는 뮤지컬에 싸구려 SF와 섹스 코미디 등 각종 서브컬처 장르를 섞었다. 평론가들은 <록키 호러 픽쳐 쇼>를 호평하긴 했지만, 대다수는 관심도 없었다. 이 영화는 저예산인데다, 유명 배우가 나오는 것도, 그렇다고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도 아니었으니까.

<록키 호러 픽쳐 쇼> 상영 현장

그런데 어느 순간 <록키 호러 픽쳐 쇼>는 장기 상영을 시작하더니, 엄청난 팬덤을 거느린 컬트 영화가 됐다. 요즘 말로 N차 관람은 물론이고, 캐릭터들의 의상을 입고 다 같이 춤을 추는 골수팬들도 생겼다. 대체로 심야 상영이긴 했지만, <록키 호러 픽쳐 쇼>는 뉴욕에서 13년 연속 상영되고, 각종 매체에서 패러디를 양산했으며, 100만 달러로 전 세계 2억 5천 달러가량을 벌었다. <록키 호러 픽쳐 쇼>에 대한 평론가들의 반응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더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았을 뿐이다.


7

킹콩

토마토 미터 84% > 오디언스 스코어 50%

<반지의 제왕> 삼부작을 무사히 마친 피터 잭슨이 <킹콩> 리메이크를 발표했을 때, 반기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원작자의 유족이 “영화화는 불가능하다”고 자부한 <반지의 제왕>도 해냈으니, 못할 리가 있겠나. 거기다 피터 잭슨은 1933년 <킹콩>을 무척 좋아한다고 여러 번 밝혔던 팬보이였다. 2005년 개봉한 <킹콩>은 그의 연출력과 원작에 대한 팬심이 기꺼이 묻어나는 영화였다.

왼쪽이 1933년 <킹콩>, 오른쪽이 2005년 <킹콩>. 원작 반영은 충실했으나…

평단은 그 결과물에 감탄을 표했다. “원작에 대한 오마주뿐만 아니라 영화의 역사에 대한 경의”(로스앤젤레스 타임즈 카리나 초카노), “놀라울 만큼 부드럽고, 심지어 가슴 아픈 영화”(뉴스위크), “입이 떡 벌어지고 눈이 튀어나오고, 심장이 쿵쾅대는 영화”(롤링 스톤 피터 트레버스) 등의 호평이 이어졌다. 하지만 대중들은 달랐다. 그들은 3시간 중 1시간이 지나야 킹콩이 등장하는 전개에 하품했고, 지나치게 킹콩에게 몰입하는 후반부에 질색했다. 2억 달러를 들인 <킹콩>은 전 세계 5억 5천 달러를 벌면서 다행히 손익분기점을 채울 수 있다.


6

석양에 돌아오다

토마토 미터 97% = 오디언스 스코어 97%

영화사에서 가장 재평가가 잦은 장르는 단연 서부극일 것이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수많은 스타와 감독을 배출한 장르.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장르니까. 특히 세르지오 레오네가 창시한 이른바 ‘스파게티 웨스턴’은 평단의 반응이 완전히 뒤집힌 장르다. <황야의 무법자>, <서부의 무법자>에서 이어진 <석양에 돌아오다>도 그랬다. 이견이 있긴 했지만, 대체로 멍청한 B급 영화라고 정의했다.

물론 관객들은 달랐다. 이름 없는 남자(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활약을 보기 위해 극장에 앉은 사람들은 이 영화가 선사하는 인간 군상, 그들이 얽혀가는 과정, 막바지에 치닫는 갈등 등을 사랑했다. 훗날 전 세계 영화인들이 이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것만 봐도, 게임이나 드라마에서 이 영화의 대사나 장면을 오마주 하는 것만 봐도 <석양에 돌아오다>가 대중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선사했는지 알 수 있다. 지금은 평단에서도 베스트 웨스턴 영화로 소개되고 있다.

흔한_눈치게임_현장.gif


5 샤이닝

토마토 미터 87% > 오디언스 스코어 93%

스탠리 큐브릭은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하나로 소개되지만, 그가 활동하던 당시엔 혹평 세례도 많이 받았던 인물이다. <샤이닝> 역시 그랬다. “잭 니콜슨이 아니었다면, 도를 넘어 다단계로 망가진 영화는 잊혔을 것”(더 글로브 앤 메일 제이 스코트), “강박적인 대칭의 이미지는 너무 진부하고, 느슨한 서사는 서스펜스를 가로막는다”(시카고 리더 데이브 케르) 같은 혹평들이 이어졌다. 원작자 스티븐 킹이 이 영화의 각색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

반면 관객들은 <샤이닝>에 매료됐다. 평단에서 지적한 강박적인 대칭 이미지는 관객들에게 잭(잭 니콜슨)의 심리를 시각으로 전했고, 스산한 분위기는 기존의 오컬트와는 다른 매력을 안겨줬다. 실제로 그의 전작 <시계태엽 오렌지>보다 더 높은 흥행 성적을 거뒀다.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샤이닝>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됐고, 지금은 걸작 호러 영화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패러디 하기 참 좋은 영화라 인기가 오래 가고 있다 (위, 아래 모두 맨 왼쪽이 원본)


4

마더!

토마토 미터 69% > 오디언스 스코어 50%

‘문제작 제조기’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최신작 <마더!>는 평단에서도 만장일치 호평이 아녔다. “이건 허세다. 하지만 야망에 대한, 가벼운 것들을 걷어차려는 영화인 허세다”(씨네뷰 존 브리스데일), “느리게 타오르면서 격렬한 화제로 번지는”(인디와이어 벤 크롤) 등의 호평에서 <마더!>가 가진 호불호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다만 대중들의 반응은 평단이나 업계에서 예측한 것보다 훨씬 나빴다. 북미 실관람객들의 만족도를 조사하는 시네마 스코어 점수는 무려 F,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닦이’란 신조어를 만든 <그린 랜턴>도 B, 잔인해서 호불호가 갈리는 <호스텔>도 C-에 불과하다. <마더!>가 받은 F는 사실상 재미있다, 없다 수준이 아니라 관객들이 내용이나 형식에 큰 거부감을 의미한다고 봐야 적당하다. 평론가들이 <마더!>의 야심찬 상징과 은유에 현혹된 것과 달리, 관객들은 도리어 그 형식에 반발했고, 결과적으로 <마더!>는 감독과 주연의 이름값을 못한 채 흥행에 참패했다.


3

스카페이스

토마토 미터 81% < 오디언스 스코어 93%

쿠바에서 미국으로 강제 이주 온 청년 토니 몬타나(알 파치노)의 범죄 세계 평정기를 그린 <스카페이스>. 1980년대를 대표하는 갱스터 무비로, 지금도 여러 작품에서 오마주나 패러디의 대상이 되는 인기작이다. 하지만 당시 평단은 대체로 B급 갱스터 영화라는 분위기였다. “조잡한 <대부> 패러디”(보스턴 글로브 제이 카), “90분의 경쾌한 악몽이 3시간의 젠체하며 불규칙인 우울한 경험으로”(시카고 리더 데이브 케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토니가 범죄계에 발을 담으며 겪는 일들은 관객들에게 매력으로 다가왔다. 토니의 삶은 관객에게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나 반발심을 직접 느끼게 했고, 특유의 스타일은 대중매체에 끊임없이 재생산돼 <스카페이스>를 80년대의 아이콘이란 자리를 내줬다. 결국 <스카페이스>를 혹평했던 평단도 시간이 지나며 이 영화가 가진 날것의 매력과 영향력을 인정하게 됐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퓨쳐의 ‘토니 몬타나’, 게임 ‘페이데이 2’의 토니 몬타나, <마약왕>, <워 독> 포스터. 모두 <스카페이스>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2

싸이코

토마토 미터 97% > 오디언스 스코어 94%

알프레드 히치콕의 대표작 중 하나 <싸이코>가? <싸이코>가 개봉했을 당시, 평론가들은 이 영화가 저예산(총 제작비 80만 달러)이라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영화보다 TV 프로그램 같다는 평가도 있었다. 한 평론가는 이 작품을 "결과적으로 히치콕이 이끌어낸 대단원은 관객들에게 꽤 평범하게 다가올 것이다”(뉴욕 타임즈 보슬리 크로러)라고 비평했다.

그런데 정작 그가 말한 대단원은 이후 여러 매체와 캐릭터에 영향을 미쳤고, <싸이코>의 기상천외하고 예측불허의 전개는 현대 스릴러 영화에 모티브를 제공했다. 관객들은 베이츠 모텔이란 기묘한 공간과 <싸이코>에서 묘사하는 미스테리한 인물에 매료됐다. <싸이코>는 시간이 지날수록 재평가 받았고, 이제는 ‘과대평가받고 있다’는 의견이 등장할 만큼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1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토마토 미터 88% = 오디언스 스코어 88%

실제 은행 강도 커플 보니와 클라이드를 묘사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공개와 동시에 혹평 받았다. 두 가지 이유였다. 범죄자 미화, 필요 이상의 폭력성. “난잡하고 멍청한 페어가 저지른 끔찍한 약탈을 그린 슬랩스틱 코미디의 싸구려 부분”(뉴욕 타임즈), “일부 좋은 부분이 있으나 이 모든 걸 제멋대로 섞은 듯 일관성이 없는 건 이 영화의 명백한 실패”(버라이어티) 같은 혹평은 영화에 대한 평단의 적대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런데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상대적으로 굉장히 빠르게 재평가 받았다. 뉴스위크의 조 모겐스턴의 일화가 유명하다. 그는 개봉 전 이 영화에 대해 혹평을 썼으나 개봉 직후 일반관에서 영화를 다시 봤다. 이 영화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는 자신이 이 영화에 대해 놓친 점이 있다는 걸 직감했고, 바로 다음 호에서 영화에 대한 리뷰를 새로 게재했다.

실제 보니와 클라이드는 사랑하는 관계를 사진에 담았다. 영화 역시 이런 사실을 세심하게 옮겼다.

이런 재평가의 움직임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제작자들의 시선까지 바꿨기 때문이다. 폭력적이라 혹평 받은 이 영화가 성공하자 할리우드는 폭력과 성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이후 <내일을 향해 쏴라>, <와일드 번치> 등 범죄자들의 일화를 다룬 영화들이 등장했고, 성적 묘사 또한 한층 자유로워졌다.

최근 넷플릭스로 공개된 <하이웨이맨>은 보니와 클라이드를 쫓는 수사관을 그린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