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두 종목, 야구와 연애가 만났다. 외딴섬에서, 낯선 여행지에서, 남매가 함께 출연해, 생애 단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못한 ‘모솔’들끼리 짝을 찾는 등 끊임없이 진화한 ‘K-연프’(연애 프로그램)라는 장르는 이제 여기까지 왔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욕망과 사회적 트렌드를 가장 기민하고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남녀가 한정된 공간인 셰어하우스에 모여 며칠간 합숙하며 감정을 주고받던 전통적인 관찰 예능의 방식을 넘어, 지금의 연애 프로그램은 이별한 연인들을 한데 모으거나, 성별의 경계를 허물고, 돈과 사랑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는 등 끊임없이 그 외연과 한계를 확장해 왔다. 그리고 2026년 가을, ‘취향 기반의 만남’이 가장 유행하는 시대적 흐름을 타고 티빙(TVING) 오리지널 〈원수는 외야석에서♥〉가 등장하며 이른바 ‘K-연프’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14일 첫 회를 공개한 티빙 오리지널 연애 리얼리티 〈원수는 외야석에서♥〉는 기존 K-연프의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비튼다. 응원하는 팀이 다른 남녀가 실제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소개팅을 하고, 경기가 끝나면 최종 선택을 한다. 소개팅남과 소개팅녀 사이에 경기 중반 제3의 참가자 ‘메기’가 합류해 삼각 구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매회 새로운 참가자가 등장하고, 만남부터 선택까지 길면 다섯 시간, 짧으면 세 시간의 경기 한 판 안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

중계석에서 소개팅을 생중계하는 ‘실시간’의 묘미
〈원수는 외야석에서♥〉를 다른 연애 프로그램과 가장 확실하게 구분하는 것은 MC들의 자리다. 〈원수는 외야석에서♥〉의 MC들은 스튜디오가 아닌 야구장 중계석에 앉아, 외야석에서 벌어지는 소개팅을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지난 7일 서울 서대문구 모처에서 만난 〈원수는 외야석에서♥〉의 이기연 PD와 MC 이용진, 황재균, 정예인은 모두 프로그램만의 독특한 차별점으로 ‘실시간성’을 꼽았다. 이기연 PD는 “우리가 제일 포기하기 싫었던 게 중계석에서부터 생중계로 촬영하는 방식이었다”며 "한 번도 찍어보지 않은 방식이라 구현하는 데 시간을 많이 썼고, KBO 모든 구단과 협의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털어놨다. 〈환승연애〉 고정 패널로 오랜 시간 활약해 온 MC 이용진은 “〈환승연애〉를 몇 년 동안 하면서 편집된 영상을 보며 코멘트를 해왔는데, 라이브로 보는 건 느낌이 너무 다르더라. 야구장의 응원 소리가 너무나 커서 참가자들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릴 때가 있는데, 오히려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으려 하게 된다. 이 얘기가 시즌권을 향한 얘기인지, 정말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한 플러팅인지를 굉장히 집중해서 볼 수 있게 되더라”고 말했다. 정예인 역시 “완성된 편집본을 보는 게 아니라 같이 구장에 가서 야구를 보면서 참가자들과 함께하는 거다 보니, 변수 포인트들이 재미 요소로 다가오는 상황이 많았다”고 말했다.

서사의 누적을 버리고 택한 단판승부
〈원수는 외야석에서♥〉는 매회 새로운 참가자가 등장한다. 이와 같은 형식에 대해 MC 이용진은 “하루 안에, 1회 안에 만남과 결정이 다 담긴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요즘 숏폼 시대라고 하지 않나. 생긴 궁금증을 바로 해소할 수 있다는 게 굉장한 장점”이라며 “연프는 출연자들의 서사를 길게 보고 가는 재미도 있지만, 짧은 걸 즐겨 보시는 분들에게는 (이 프로그램이) 맞춤형 연애 프로그램이지 않을까”라고 프로그램의 장점에 대해 설명했다.
‘단판승부’라는 포맷이 마냥 단점만은 아닌 이유는 달라진 만남의 방식에 있다. 최근 로테이션 소개팅, 취향 기반 소개팅, 야구 팬들끼리의 소개팅 같은 만남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긴 시간을 들여 서로를 알아가기보다, 이미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빠르게 호감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이용진은 “엊그제 본 콘텐츠 중에 헬스장 소개팅도 있더라. 운동복을 입고 와서, 첫인상이 마음에 들면 같이 운동을 한다”며 “요즘은 취미를 같이 공유할 만한 호감 있는 상대를 만나는 게 더 유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소개팅하는 남녀가 취미가 이미 맞아 있다는 건 정말 큰 공통점”이라고 짚었다. 이 PD는 “생각보다 엄청 빨리 스파크가 튄다. 우리도 놀랐다”고 했다. 더불어 이 PD는 “옛날 같으면 ‘저 사람이 나를 선택 안 하면 어떡하지’를 걱정했을 텐데, 요즘 사람들은 거기에 개의치 않더라. 나는 이 사람이 좋으면 고백도 하고 어필도 한다”며 달라진 연애 문화에 대해 언급했다. 이용진은 “촬영이 야구 경기와 똑같이 진행되다 보니 출연자분들이 매력 어필에 좀 더 적극적인 것 같다”며 “〈환승연애〉에서 5회쯤 나와야 하는 감정이, 여기서는 2이닝 만에 나와버린다”고 말하며 좌중에 웃음을 안겼다.

시즌권이냐 사랑이냐
1루와 3루가 만나는 외야석. 홈팀 팬과 원정팀 팬이 만나는 완충지대에서 소개팅이 이뤄진다. 〈유 퀴즈 온 더 블럭〉 등을 거친 이 PD는 “야구 중계를 보다 보면, 서로 다른 팀을 응원하는 커플들의 모습을 보며 재밌다고 생각했다”며 “예전 다른 프로그램에서 장항준 감독님과 일했을 때, 장 감독님과 김은희 작가님의 LG-두산 팬 케미가 너무 재미있었다”며 상대팀 팬과의 소개팅을 기획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라이벌 구도에 긴장을 더하는 건 ‘시즌권’이다. 〈원수는 외야석에서♥〉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선택하면 커플이 되지만, 상대의 일방적인 선택만 받으면 홈경기 시즌권을 얻는다. 그렇다면 왜 커플 성사가 아닌 ‘일방적 선택’에 보상을 걸었을까. 이 PD는 “소개팅은 보자마자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가 결정된다. (호감의 여부를) 숨기면서 갈 수 있는 방식이 뭘까 생각했다”며 “성사가 안 되고 내가 선택을 받아도 시즌권을 가져갈 수 있다면, 이 사람이 끝까지 그런 척을 하지 않을까. 야구장 안에서 적은 인원으로 소개팅을 하기에 나온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우취도 장점으로, 변수와 싸우는 야구와 연애
야구 경기와 소개팅은 대본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용진이 꼽은 가장 큰 변수는 경기 시간이었다. 이용진은 “경기가 갑자기 빨리 끝나면 출연자분들도 ‘어떡하지, 이제 2아웃 남았는데’ 하면서 급해지는 게 느껴진다. 마무리를 못 하고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그것도 어쩔 수 없이 기획 의도”라고 말했다. 한쪽으로 기우는 경기도 그림이 됐다. 황재균은 “한 구 한 구에 실망했다가 좋아했다가 슬퍼했다가 신났다가, 출연자의 감정이 실시간으로 다 느껴졌다”며 “원사이드 경기가 벌어졌을 때는 지고 있는 팀 팬분이 갑자기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상대편을 응원하더라”며 변수 많은 소개팅의 묘미에 대해 언급했다.
하늘도 변수였다. 이 PD는 “대구 촬영 때 비가 와서 우천 취소가 되나 걱정했는데, 오히려 남자 출연자분이 의자를 닦아주면서 로맨틱한 장면이 나오고, 둘이 우산을 쓰고 토크도 나눴다”며 “있는 그대로를 이용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매력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용진은 “최근에는 출연자 한 분이 맥주에 진짜 취하셨다. 앞으로 방송에 나갈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삼진을 당하더라도 방망이를 휘두르는 용기
야구와 연애는 어디가 닮았을까. 네 사람은 각자의 답을 내놨다. 정예인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로 야구와 연애의 공통점을 요약했다. 그는 “선택의 마음이 어디로 튈지 모르고, 야구 경기 또한 마지막까지 정말 알 수 없는 게 매력이지 않나. 그런 부분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많은 역전을 직접 그라운드에서 겪어본 야구선수 출신 황재균은 스코어의 극적인 뒤집힘에 주목했다. 그는 “야구는 5점, 6점이라는 큰 점수 차로 뒤지고 있어도 단 한 번의 찬스에서 한순간에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스포츠인데, 소개팅 현장에서도 분위기가 급반전하는 상황이 꼭 야구의 역전극과 닮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기연 PD는 ‘수 싸움’을 꼽았다. 이 PD는 “소개팅을 보다 보면 ‘어느 타이밍에 치고 들어가야겠다’를 계산하는 게 보이더라. 연애는 특히 타이밍도 중요하고, 언제 승부를 해야 하는지도 중요한데, 그게 진짜 야구랑 닮아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용진의 답은 ‘스윙’이었다. 이용진은 “방망이가 안 나가면 아예 의미가 없다”며 “방망이를 휘둘러서 아웃이 되더라도, 선택을 못 받더라도, 방망이를 휘두르는 그 용기가 소개팅과 굉장히 닮아 있다”고 말했다. 시즌2 출연을 꿈꾸는 이들에게 건넨 조언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는 “사랑을 찾으러 오신 분들이라면, 생각보다 시간이 길지 않다. 야구라는 게 진짜 금방 끝난다. 그래서 전력투구를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원수는 외야석에서〉의 다음 이닝
반응이 이어지면서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이 PD는 “합도 너무 좋고 재밌어서 시즌이 끝나는 게 정말 아쉽다. 티빙과 논의해서 시즌2를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라며 “내가 듣기로는 이 라이벌 포맷을 해외 쪽에, 미식축구처럼 다른 라이벌 구도로 확장할 수 있는 방식의 IP를 논의 중인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남은 회차의 관전 포인트에 대해 이 PD는 “매회 굉장히 다른 느낌의 출연자가 나온다”며 “후반으로 갈수록 야구 열기가 더 뜨거워지니까 출연자들도 거기에 탑승한다. 운 좋게 KT가 1위를 확정 지은 날에도 촬영을 했는데, KT 팬분의 텐션이 정말 좋았다”라고 귀띔했다. 인터뷰 당일 저녁에도 이기연 PD와 세 MC는 마지막 8회차 촬영을 위해 고척스카이돔으로 향했다.
티빙 오리지널 〈원수는 외야석에서〉는 현재 4회까지 공개됐으며, 총 8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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