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의 언어로 재해석된 시대의 아이콘, 메릴린 먼로
영화 '다크 나이트'(2008)의 명배우에서 '로스트 도터'(2022)를 통해 성공적인 연출가로 발돋움한 '매기 질런홀' 감독이 신작 '플레시 임팩트'를 통해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플레시 임팩트'는 할리우드의 영원한 아이콘 메릴린 먼로의 초상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담아낸 22분 분량의 단편 영화다. 특히 이 작품은 현대자동차의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가 먼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질런홀 감독에게 직접 연출을 제안하며 성사된 글로벌 아트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질런홀 감독은 7일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표면적으로는 메릴린 먼로의 서사를 다루고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시대를 관통하는 모든 여성의 경험담이자 무대 위에서 살아가는 배우들의 치열한 생존기"라고 작품의 기획 의도를 밝혔다. 영화는 오디션이라는 독특한 액자식 구성을 차용해 먼로의 유년 시절과 화려한 스타로서의 이면을 입체적으로 교차시킨다.
초기 기획 단계의 부담감도 털어놨다. 질런홀 감독은 "먼로라는 인물의 깊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연출 수락을 망설였다"며 "일주일간 먼로의 출연작을 샅샅이 탐구하며, 그녀가 100세가 되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는 과정에서 서사의 실마리를 발견했다"고 회고했다.

거장들의 앙상블과 베네치아를 뒤흔든 심사위원장의 일침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것은 세대를 대표하는 두 여배우의 열연이다. 1975년 '엘리스는 이제 여기 살지 않는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거장 '엘런 버스틴'이 노년의 먼로를, 전작 '로스트 도터'에서 질런홀과 완벽한 호흡을 보여준 '다코타 존슨'이 젊은 시절의 먼로를 맡아 2인 1역의 시너지를 극대화했다. 질런홀 감독은 "연출자로서 배우 본인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을 끌어내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며 "두 배우가 합류하는 순간 텍스트에 불과했던 이야기가 강렬한 생명력을 얻었다"고 극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세계 영화계의 유리천장을 향한 질런홀 감독의 날카로운 통찰도 이어졌다. 올해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으로 활약했던 그는, 당시 경쟁 진출작 21편 중 여성 감독의 단독 연출작이 단 1편에 불과했던 참담한 현실을 지적하며 글로벌 영화계의 구조적 모순을 꼬집은 바 있다.
당시 베네치아의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은 유일한 여성 단독 연출자였던 마이 엘투키 감독의 '마리가 뭐 어때서'(Woman Unknown)에 돌아갔으며,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은 한국의 이창동 감독이 연출한 '가능한 사랑'이 수상하며 전 세계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가족의 연대와 새로운 영화적 문법의 탄생
질런홀 감독의 확고한 예술적 가치관은 굳건한 가족의 지지에서 비롯됐다. 작가였던 어머니와 의사였던 할머니 등,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어 주체적인 삶을 개척한 여성 가족들의 연대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또한 할리우드 톱스타인 동생 '제이크 질런홀'과의 깊은 교류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자양분이다. 그는 "배우인 제이크와 연출자인 나는 접근 방식이 다르지만, 서로의 상이한 취향과 시각을 존중하며 끝없이 영감을 주고받는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질런홀 감독은 여성 서사가 지닌 독창적 가치를 역설하며 관객들의 열린 태도를 당부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는 남성 연출가들의 위대한 작품들을 존경한다. 하지만 여성 창작자들에게 완전한 표현의 자유가 주어질 때, 그들은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기에 필연적으로 전혀 다른 문법의 예술을 탄생시킨다."
이어 그는 "여성 영화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언어로 쓰인 텍스트이며, 이는 관객에게도 축복이자 새로운 기회"라며 "많은 이들이 이 낯설고도 매혹적인 언어를 배우며 영화적 기쁨을 만끽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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