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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아영의 오르골] 자연의 순환을 그린 '룩백'과 반도 유타의 음악

나는 영화 속 음악에 꽂힌다. 음악은 때때로 보이는 이미지와 들리는 대사만으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인물의 내밀한 감정을 들려준다. 창작자의 숨은 의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내게 영화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영화에 가닿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추아영의 오르골’은 음악을 경유해 영화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들어본다. (P.S. 음악을 들으며, 글을 읽어 주기를 바란다.)

〈룩백〉
〈룩백〉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룩백〉은 후지모토 타츠키의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익숙한 청춘 성장 서사의 선로에서 비켜난다. 영화는 두 소녀가 만화가의 꿈을 이루는 과정을 그리는 대신, 창작이 한 사람의 내면에서 끝나지 않고 타인과 세계를 통과하며 계속 변형되는 과정을 그린다. 후지노(데구치 나츠키·나나세 후리)와 쿄모토(마키타 아쥬·오카다 로카)는 같은 꿈을 바라보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곳에 다가간다. 후지노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나아가는 인물이라면, 쿄모토는 외부와 단절된 채 자신만의 선을 긋는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의 그림을 발견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비로소 각자의 방향을 찾는다.

〈룩백〉 후지노와 쿄모토(왼쪽부터)
〈룩백〉 후지노와 쿄모토(왼쪽부터)

이러한 두 소녀의 꿈을 향한 정진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생태주의적 시선과 만나 새로운 의미를 낳는다. 〈룩백〉은 사계절의 순환을 반복해서 그려낸다. 여기서 사계절의 풍경은 인물의 감정을 장식하는 배경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의 삶과 죽음, 만남과 상실이 더 큰 자연의 흐름 안에 놓여 있음을 감각하게 한다. 두 소녀의 창작 역시 고립된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서로의 감각과 시간, 세계의 흔적이 얽혀 만들어지는 작은 생태계로 그려진다. 이때 반도 유타의 음악은 영화가 그리는 순환의 감각을 청각적으로 번역한다.


창작의 생태학

〈룩백〉
〈룩백〉

같은 꿈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후지노와 쿄모토의 관계는 우정과 경쟁 둘 중 하나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후지노는 쿄모토의 그림을 보며 혼자라고 믿었던 자신이 사실 더 넓은 세계 안에 놓여 있음을 깨닫는다. 쿄모토 역시 후지노의 존재를 통해 바깥으로 나온다.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를 동경하면서 창작의 자극을 주는 동시에 각자의 가능성을 보존해 주는 환경이 된다. 이는 생태계의 구조와도 닮아 있다. 생태계에서 생명은 독립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유지된다. 〈룩백〉에서 창작 능력 또한 개인 내부에 완결된 재능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의 그림을 보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함께 작업하고, 그렇게 시간을 나누는 과정에서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두 사람이 함께한 작품 안에는 서로의 다른 시선이 남는다. 후지노가 쿄모토를 잃은 후에도 계속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쿄모토와 함께 형성한 창작의 생태계를 소멸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룩백〉 후지노와 쿄모토 아역
〈룩백〉 후지노와 쿄모토 아역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계속해서 자신의 생태주의적 시선을 창작의 과정에 접목한다. 만화를 그리는 것은 세계를 인간의 언어로 완전히 점유하는 작업이 아니다. 연필이 종이에 닿으며 나는 소리, 창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 눈이 소복이 쌓인 거리, 하늘을 나는 새의 이동처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적 요소들이 그림의 감각 안으로 들어온다. 만화, 나아가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현실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세계의 흔적을 한 화면 안에 함께 배치하는 것이다. 후지노와 쿄모토가 그리는 선은 각자의 내면에서 출발하지만, 끝내 자신들만의 것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룩백〉이 말하는 창작의 생태학이다.


반도 유타의 음악

〈룩백〉
〈룩백〉

〈룩백〉에서 반도 유타의 음악은 자연을 직접 묘사하기보다 인간의 창작 행위가 자연의 순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소리로 형상화한다. 그 중심에는 피아노가 아니라 클래식 기타가 있다. 반도 유타는 이 영화의 음악적 골격을 이루는 악기로 클래식 기타를 선택했고, 이는 연필이 종이를 긁는 촉각과 창작자의 손가락이 현을 뜯는 감각을 포개는 결정이 된다. 반도 유타는 인터뷰에서 “기타는 피아노보다 소리에 손가락의 존재감이 훨씬 더 많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는 물리적 행위를 음악으로 옮길 때, 손가락을 튕겨 연주하는 기타는 이에 최적화된 악기였다. 피아노의 음이 비교적 완결된 울림과 수직적인 화성을 만든다면, 클래식 기타의 음은 손가락의 압력과 마찰, 현의 미세한 떨림을 품는다. 현의 떨림에서 오는 소리의 진동은 영화의 서정성에 크게 기여한다. 또 기타의 한 음은 피아노의 소리처럼 매끈하게 흘러가기보다 손끝에서 태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그 자체로 드러낸다.

〈룩백〉
〈룩백〉

앞서 말했듯이 〈룩백〉은 사계절의 순환을 뚜렷하게 또 반복적으로 그려낸다. 계절의 순환은 상실이 자리 잡은 세계일지라도 계속 순환된다는 자연적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곡 ‘“Look Back” Main Theme’은 이 순환을 상승과 하강의 음악적 움직임으로 감각하게 한다. 현악의 울림이 차오르고 다시 가라앉는 과정은 감정을 직선적으로 고조시키지 않는다. 이러한 음악은 상실을 극복의 서사로 밀어붙이는 대신, 슬픔이 삶의 리듬 안에서 다른 형태로 자리 잡는 과정을 들려준다. 이는 상실을 포함한 채 세계가 계속 움직이는 모습에 대한 은유다.


쿄모토의 질문에 대한 응답

〈룩백〉
〈룩백〉

쿄모토는 만화를 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후지노에게 묻는다. “그럼 넌 왜 만화를 그리냐”고. 영화는 쿄모토의 질문에 대한 후지노의 답을 들려주지 않는다. 대신 휴재 이후, 작업실에서 다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는 후지노의 모습으로 답한다. 쿄모토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후지노는 자신이 쿄모토를 방 밖으로 끌어내지 않는 대안적 세계를 상상한다. 그러나 후지노의 상상은 결코 현실의 상실을 지울 수 없다. 후지노의 상상은 일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자신의 창작 행위와 닮아 있다. 그는 줄곧 자신의 작품 속에서 상실을 다뤄왔지만, 창작은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다시 되돌릴 수도, 이미 지나간 시간과 사라진 존재를 다시 붙잡지도 못한다. 후지노는 그럼에도 다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고통으로만 느껴지던 쿄모토와의 기억은 어느 순간 창작의 동력이 되고, 다시 누군가(독자)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감각으로 전환된다.

〈룩백〉
〈룩백〉

여기서 쿄모토의 질문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도 돌아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인터뷰에서 후지모토 타츠키의 원작을 각색한 이 작품을 시작한 계기로 “COVID-19 팬데믹 이후 일이 전부 멈추는 경험을 했을 때, 자신이 왜 이야기와 영화를 만드는지 다시 일깨워준 작품”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따라서 다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는 후지노의 모습은 쿄모토의 질문에 대한 감독 자신의 답이기도 하다. 그는 상실을 없던 일로 만들거나 상실한 존재를 함부로 복원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누군가의 상실을 곁에서 어루만지고, 그 상실을 관객과의 관계 맺음 속에서 치유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 그렇게 그에게 있어 창작은 상실을 안고도 다시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일이 된다. 〈룩백〉은 전 세계적 절망의 끝에서 그가 다시 붙잡은 예술관을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로 선언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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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원작의 정서는 그대로, 한층 더 섬세하게 채워진 실사영화 '룩백'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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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정서는 그대로, 한층 더 섬세하게 채워진 실사영화 '룩백' 후기

단 5년. 단편만화 「룩 백」이 일본을 넘어 전 세계를 사로잡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후지모토 타츠키 작가가 2021년 공개한 단편 만화「룩 백」은 만화를 그리는 후지노 아유무와 그림 실력이 빼어난 등교 거부 동급생 쿄모토가 만나면서 생기는 일을 다뤘다. 공개 직후 그해 ‘이 만화가 대단하다. ’ 남성편 1위를 받는 등 극찬을 받은 「룩 백」은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과 스튜디오 두리안의 손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해 2024년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룩 백」에 매료된 또 한 사람이 있었다. 현재 일본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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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 속 음악에 꽂힌다. 음악은 때때로 보이는 이미지와 들리는 대사만으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인물의 내밀한 감정을 들려준다. 창작자의 숨은 의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내게 영화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영화에 가닿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추아영의 오르골’은 음악을 경유해 영화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들어본다. (P. S. 음악을 들으며, 글을 읽어 주기를 바란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룩백〉은 후지모토 타츠키의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익숙한 청춘 성장 서사의 선로에서 비켜난다. 영화는 두 소녀가 만화가의 꿈을 이루는 과정을 그리는 대신, 창작이 한 사람의 내면에서 끝나지 않고 타인과 세계를 통과하며 계속 변형되는 과정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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