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어 에반 핸슨〉 〈대도시의 사랑법〉 배우 나현우의 인터뷰는 1부에서 이어집니다.

영화 이야기도 해보자. 원래 영화배우가 꿈이었고 의미 있는 도전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일단 〈파일럿〉(2024)과 〈1승〉(2024)이 기억난다. 〈파일럿〉에서는 여장을 하고 클럽에 간 한정우(조정석)에게 좀 더 놀다 가자고 하던 ‘클럽남’ 역할이었고, 〈1승〉에서는 농구부 주장 방수지(장윤주)의 연하 남편 역할이었다.
필모그래피에는 〈거인〉(2014) 같은 작품도 있는데, 그건 학교 선배였던 김태용 감독님 작품에 세종대 학생들이 단역으로 대거 출연한 경우였다. 내가 오디션으로 따낸 역할이라는 점에서 첫 영화는 〈1승〉이 맞다. 신연식 감독님이 ‘너에게 잘 어울리는 역할이 있다’고 하시며 주셨던 역할이다. 코미디 연기를 잘하느냐고 물으시기에 신인으로서 당연히 “다 잘합니다!” 했는데, 꽤 여러 장면이 삭제되긴 했다. 그래도 힘이 좋다고 마지막 1승 장면에서 장윤주 선배를 번쩍 들고 뛰어다니는 장면도 있다. (웃음) 무엇보다 짧게나마 배우로서의 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송강호 배우와 함께 한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신연식 감독님이 배려해주셔서 종종 모니터 옆에 앉아서 송강호 선배 연기를 계속 볼 수 있었다. 감독님에게 ‘이번에는 이렇게 해볼게요’, 또 ‘이번에는 저렇게 해볼게요’ 하고 카메라 앞에 서시면 정말 그대로 다 하시는 걸 보고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어서 디즈니+ 시리즈 〈삼식이 삼촌〉(2024)에도 출연하게 되면서 다시 송강호 선배님을 보고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파일럿〉은 어땠나, 뮤지컬 출신 배우들이 입을 모아 롤모델이라 얘기하는 조정석 배우와 호흡을 맞췄다.
맞다, 조정석 선배는 완전히 롤모델 같은 사람이다. 뮤지컬과 영화, 그리고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모두 병행하며 정상에 선 거의 유일한 배우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거기에 더해 조승우라는 넘사벽 선배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거다. 〈파일럿〉의 클럽 장면 때도 내가 코미디 연기에 좀 뻣뻣하니까 정석 형이 정말 많이 가르쳐주셨다. “현우아, 내가 이런 호흡으로 갈 테니까 네가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 한번 맞춰보자” 하시며 이끌어주셨다. 그렇게 두 사람의 즉석 팔씨름 장면이 만들어졌다. 앞서 송강호 선배님도 그랬지만, 코미디 연기는 정말 많은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감독님이 선택할 수 있게 여러 버전을 다 준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


아무래도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의 ‘영수’ 캐릭터에 가장 애착이 클 것 같다. 카메라 앞에서 가장 긴 호흡으로 주인공을 연기했다고 할 수 있다.
맞다, 허진호 감독님이 연출하신 〈대도시의 사랑법〉 3, 4화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은 평생 잊지 못할 작품이다. 허진호 감독님과는 그전에 드라마 〈인간실격〉(2021)을 함께 하며 인연을 맺었는데, 당시 오디션을 잘 보셨는지 실제 내가 맡게 된 역할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제안해주셨다. 그런데 완전 초짜 신인이고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저는 이 역할을 할 자신이 없습니다”하고 거절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미친 짓이었다. 그래서 그보다 비중이 작은 ‘정우’ 역할을 하게 된 건데, 작품에서 일찍 죽는다. 영안실에서 시체로 등장하는 장면도 직접 찍었는데, 그때 날 보시더니 “너 몸이 왜 이렇게 좋니?” 물으시기에 “제가 원래 몸이 좀 좋습니다”라고 했다.(웃음) 그걸 기억하셨다가 〈대도시의 사랑법〉 때 캐스팅하신 거다. 몸을 드러내야 하는 장면이 필요하니까 ‘현우라는 애가 기억난다’ 하셨던 거다. 그렇게 기억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서 영수는 감정 변화도 심하고 복잡한 내면을 지닌, 이른바 나쁜 남자의 전형이기도 하다. 어떻게 캐릭터에 접근했나.
영수는 사랑하면서도 상대를 외롭게 만드는 사람이다. 허진호 감독님께서 자신이 연출하기도 하신 〈봄날은 간다〉(2001)의 은수(이영애)와 비슷한 캐릭터라 하셨다. 진실한 사랑을 주는 사람이 아니고, 자기가 갖고 싶어하는 것만 가지려 하며, 사실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인데 남들이 보기에는 로맨틱하게 느껴질 인물이라는 거였다. 바로 이해가 됐다. 디렉팅은 굉장히 구체적이셨다. “지금 하고 있는 대사가 정말 네 말이 맞아?”하고 물으시고는, 진실한 감정이 담기지 않으면 안되니까 대사를 계속 ‘내 말’이 되게끔 계속 바꾸는 과정을 거쳤다. 내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들어주시는 경험도 처음이었고, 내가 생각하는 연기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어서 오히려 긴장감이 사라졌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대도시의 사랑법〉에서의 내 연기를 좋아한다. 정말 진실하게 연기했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팬도 많이 생겼고, 새로운 작품 제안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디어 에반 핸슨〉 공연을 보러 와주시는 분들 중에는 그 영수의 팬들이 많다. 영화와 드라마를 아울러 ‘〈대도시의 사랑법〉의 나현우’라는 필모그래피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배우로서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리고 태권도 선수 출신으로 액션 연기에 대한 꿈도 여전할 것 같다.
당연하다, 정말 액션 연기를 하고 싶다. 그런데 그런 쪽으로는 이상하게 기회가 잘 안 오더라. 아무튼 지금은 조승우, 조정석 선배처럼 되고 싶다는 꿈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일단 영화와 드라마 편수를 늘려가고 싶다. 물론 공연도 계속하면서 배우의 삶을 이어가고 싶다.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정말 힘든 게 배우라는 직업이다.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했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결과가 생기는 걸 보니까 예전의 실패들이 결국 지금의 좋은 일을 만들기 위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내게 〈디어 에반 핸슨〉은 오랫동안 바라던 꿈 하나를 이룬 작품이다. 초연 오디션에서는 떨어졌고, 이제는 나이 때문에 다시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작품이다. 이번 공연이 내 마지막 에반이라고 생각해서 더 간절한 것 같기도 하다.
문득 나현우 배우의 ‘내 인생의 영화’가 뭘까 궁금하다.
딱 하나만 꼽기 힘든데, 지금 내 마음에 가장 깊게 남아 있는 영화는 이상일 감독의 〈국보〉(2025)다. 영화 속 가부키의 세계를 보고 뮤지컬 무대를 떠올려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예술을 향한 끝없는 도전과 예술가가 운명처럼 껴안아야 하는 영원한 결핍이 정말 큰 울림을 줬다. 이른바 ‘예술’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봐야 할 영화인데, 집에 포스터도 크게 걸어놓고 늘 떠올리는 영화다. 게다가 주인공 키쿠오를 연기한 배우 요시자와 료가 일본판 〈디어 에반 핸슨〉의 에반이다. 그래서 더 신기하고 놀라웠다.

챙겨보지 않는 영화가 없을 정도의 영화광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에 본 기억에 남는 한국영화가 있다면?
단연 〈가능한 사랑〉이다.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를 다 좋아하지만, 특히 후반부의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를 보고 깜짝 놀랐다. 특히 내 나름대로 ‘슬픈 태권도’라 명명한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호석(설경구)은 상우(조인성)보다 가진 건 없어도 평생 운동을 했기에 ‘너보다 몸도 잘 쓰고 싸움으로는 이길 수 있다’는 자존심이 있을 텐데, 막상 보여주는 발차기가 너무 비루해서 오히려 마음이 아팠다. 젊은 날 ‘쌈짱’이자 태권도를 했던 그 육체와 움직임이 아닌 거다. 게다가 조인성 선배님도 태권도를 오래 하신 것으로 아는데, 영화에서 그가 “왜요, 태권도 하시게요?”라고 도발하며 사이드 스텝으로 빠지시는 모습이 정확하게 태권도인의 제스처였다. 너무 정확해서 깜짝 놀랐다. 아마도 조인성 선배님이 현장에서 ‘제가 이렇게 해보겠습니다’ 하고 만들어진 동작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창동 감독님이 정말 어마어마한 영화를 만드셨다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 11월 1일이면 막을 내리게 될 〈디어 에반 핸슨〉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인사를 듣고 싶다.
〈디어 에반 핸슨〉 오디션을 보고 나오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내 인생에서 에반이라는 인물을 연기할 수 있는 순간은 이 오디션, 그리고 합격한다면 이번 시즌이 마지막일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정말 사랑하고 잘할 수 있습니다. 한 번만 믿어주십시오.” 지금도 그 마음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고 내 혼을 다해서 연기하고 있다.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그래서 지금이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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