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을 꾼다. 〈원스〉처럼 사랑하고 〈비긴 어게인〉처럼 절박하고, 〈라라랜드〉처럼 소망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좋아하는 것을 좇아 온 사람들에게 20대는 궁핍하지만 찬란하다.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를 향해 달려왔지만 아무리 잡으려 해도 그 꿈이 현실로 치환되지 않을 때, 문득 돌아본 내 모습이 작아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정다원 감독이 연출한 〈7데이즈 7피플〉은 그 씁쓸한 시간을 조명하는 영화다. 인디밴드 호아의 리더 진화(임진화)는 7년간 사귄 여자친구 미래(서은수)에게 이별 통보를 받는다. 함께할 ‘미래’라고 믿었던 사람이 진화의 ‘현재’를 독촉한다. 그렇게 진화가 점검한 지금에는 열심히 달려 왔지만 제대로 페이도 받지 못하고 인정도 받지 못하는 초라한 인디뮤지션의 삶이 있다.

영화는 그 자리에서 낙담하는 대신, 길을 찾아 나선다. 완전한 이별까지 7일 간의 유예를 받은 진화는 진짜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현재를 점검할 7명의 멘토들을 찾아 나선다. 7일과 7명의 사람에 더해, 마침 이 영화는 전작 〈걸캅스〉(2019)를 연출한 정다원 감독에겐 7년 만의 신작이다. 이 고충이 어디 인디밴드 뿐이랴. 정다원 감독 역시 그간 연출자로 신작 공개에 난항을 겪으며, 자전적인 경험을 이 작품에 상당 부분 녹여냈다.
꿀꿀하고 씁쓸한 키워드로 시작하지만, 영화는 그 안에 매몰되지 않는다. 7일이라는 한정된 기간에 7명의 사람들을 만나는 구조가 주는 긴장감. 실제 뮤지션 임진화의 진솔함이 주는 리얼함, 여기에 유재명, 서은수, 전석호, 정일우 등 시선을 잡는 배우들의 출연이 주는 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마치 하나의 공연처럼 96분의 러닝타임 동안 진화가 만든 7년 간의 곡을 듣는 동안, 진화와 같은 자리에서 나를 점검하게 만드는 영화. 부쩍 쌀쌀해진 11월의 초입에 더없이 어우러질 한 편의 음악영화를 꼭 ‘듣기’를 추천하며, 정다원 감독과의 인터뷰를 전한다.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장르적인 색깔을 가져갔던 전작 〈걸캅스〉와 방향성도 규모도 다른 작품을 연출하셨어요.
〈걸캅스〉 이후 바로 만든 음악 영화가 아직 개봉을 못하고 있고, 또 준비하던 작품도 못 들어 갔어요. 발이 묶인거죠. 제가 원래 열심히 사는 타입인데 상황이 이렇게 계속 안 풀리니 생각이 많아졌어요. 어쩌면 이 일을 못할 수도 있겠구나. 다른 일을 해야하는 게 아닐까. 그때 이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음악을 매개로 뮤지션의 스토리를 만들게 된 계기도 궁금한데요.
앞서 음악 영화를 만들면서 스태프들과 음악영화를 많이 연구해서 찍었거든요. 한국은 음악영화가 많지 않은데 제대로 해보자, 촬영 부터 음악 연출까지 연구를 많이 했어요. 이번 작품에 그 스탭들이 모두 합류했어요. 영화 주인공인 진화도, 기타 치는 친구 (양)동욱이도, 드럼 치는 친구도 모두 그때 만난 인연이죠. 마침 같은 동네 살아서 술도 마시고 음악 이야기도 많이 하던 사이였어요. 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 친구들을 제가 다시 불러 모았죠. 그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인디음악을 하는 것도 독립영화 하는 것과 비슷하구나 생각했어요.

좋아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은 연출자인 감독님 본인의 이야기에서도 나오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되는데요.
저도 영화 전공하고 20년 넘게 일하면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여러 고비들이 많았는데요. 첫 장편 〈장기왕: 가락시장 레볼루션〉(2017) 때는 영화 완성을 하려고 치킨집에서 일해서 버는 족족 후반작업에 돈을 넣기도 했고요. 4년을 옷 한 벌도 안 샀던 것 같아요. 한번은 이렇게는 안되겠다. 인생 승부를 한번 봐야겠다 생각이 들어서 원양어선을 타려고 준비를 했어요. 가서 돈 벌어서 장사를 하든 뭐든 해보자. 어머니가 너무 위험하니 배는 타지 말라고 우시면서 만류하셔서 접었는데요. 그 정도로 그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지 확신이 없었어요. 음악하시는 분들도 생계는 아르바이트로 유지하고 그런 생활을 많이 하죠. 원하는 일을 하는 것도 취업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만큼, 진화의 선택에 많이 공감해 주실 거라 생각했어요.

7일간 7명의 사람을 만나고 진로를 정하겠다는 설정이 긴장감을 더해주는데요. 구조는 어떻게 정하게 됐나요.
영화에서 서스펜스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건 상업영화나 독립영화 모두 다르지 않다고 보는데요. 제가 스필버그 영화에서 본 서스펜스 처럼, 관객을 쫄리게 하는 그런 걸 항상 염두에 둬요. 이 영화가 굉장히 심플한 이야기지만 그 긴장감을 유지해야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겠다 싶었어요. 진화가 일주일 후에 어떤 선택을 할까, 그 선택을 하는 진화를 밀착 마크해 보자. 카메라는 이 친구를 그냥 따라가는 거다. 그 일주일을 관객들과 함께 따라가 보자 했죠.

전문 배우가 아닌 실제 뮤지션 임진화를 캐스팅 하셨는데요. 영화 전체를 끌어가는 역할이라 캐스팅도 도전이었을 것 같은데요.
전작도 같이 했는데, 이 친구가 카메라 앞에서 자유롭게 놀더라고요. 보컬이라 뮤직비디오 경험도 많고 두려움이 없었어요. 그리고 이 친구가 밴드를 하면서 실제 경험한 것들이 얼굴에 묻어 있어요. 은근히 짠하면서도 해맑은 느낌이 꿈을 좇아 여기까지 온 진화와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에 진화가 망원시장에서 족발을 사면서 사장님한테 ‘복 받으세요’ 하는 말을 하는데, 대본이 아니라 그냥 이 친구의 언어예요. 착하고 천진난만해요. 연기 디렉팅을 따로 하지 않고 그 친구에게서 나오는 이런 모습들로 진화를 만들어 갔어요.

오히려 진화가 만나는 7명의 사람들이 전문배우인데요. 이자카야 주인 정일우, 카센터 정비사 전석호, 기획사 대표 유재명 등 조연 캐릭터들이 주는 긴장감이 상당한데요. 캐스팅 과정도 궁금합니다.
제가 홍상수 감독님 스탭으로 여러 편 참여를 했었는데요. 윤여정 선생님 나오고 그러면 장면이 막 살아나더라고요.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의 에너지가 주는 힘은 정말 강하죠. 제 영화에서도 베테랑 배우들이 장면을 살리는 효과를 보고 싶었어요. 물론 배우님들에게 하루 촬영인데 외워야 할 대본도 많이 드리고 죄송하긴 했죠. 그래도 도와달라 했어요. 정일우, 서은수 배우는 원래 인연이 없었는데, 만나 보니 독립영화 작업에도 열려 있으셨고, 또 음악영화가 흔치 않아 대본을 재밌게 봐주셨어요. 유재명, 전석호 배우님은 원래 인연이 있는 배우님들인데 고맙게도 개런티보다 그날 저희 술 사주느라 돈을 더 쓰고 가신 것 같아요. (웃음)

진화는 7명의 다양한 선택을 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종의 멘토링, 조언을 얻는데요. 특히 강조하고 싶으신 조언이 있다면요.
화려한 장면은 없는 대신 리얼한 대사를 만들자, 거기에 중점을 뒀어요. 마지막에 음반사 대표가 진화에게 ‘너는 네 음악이 압도적이야?’ 라고 묻잖아요. 압도적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거죠. 그게 요즘 제가 들었던 생각이었어요. 준비하던 영화가 투자심사에 떨어지면서 힘들었는데, 그때 다른 영화를 봤는데 너무 압도적인 거예요. 내가 저 감독님처럼 열심히 조사 하고 글을 썼나, 나는 압도적인 영화는 못 만드는구나 자책도 많이 했어요. 돌아보면 상업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여러 간섭들을 받기도 했었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드는 거예요. 모두가 손흥민이 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압도적이냐’는 질문에 진화가 ‘저는 스낵면 좋아합니다!’라는 말을 넣었죠. 신라면이 아닌 스낵면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스낵면을 저만의 메타포로 이용했어요.

7일 간의 여정 끝에 진화가 어떤 선택을 할 지, 혹은 어떤 시간이 기다릴 지 결말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텐데요.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에 방점을 두지 않는 선택이 와닿았어요. 〈원스〉나 〈라라랜드〉와 달라지는 감독님의 선택이 보이는 지점이기도 한데요.
학교 때 친한 형이 ‘그만두는 것도 용기 있는 사람이나 그만두지’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대부분 그만두면 루저라고 생각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평생 한 일도 그만둬야 할 때가 있는 거고 그럴때는 정말 굳은 용기가 필요하겠다. 성공을 향해 달리는 시간 만큼 받아들이는 것도, 그런 시기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 쪽에서도 창작을 하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면을 보면서 그런 지점도 담아내고 싶었어요.

OST를 기다릴 만큼 극중 진화가 부르는 곡들이 영화의 전체를 끌어가는데요. 실제 임진화의 밴드 ‘호아’의 이름을 쓰고 있지만, 이 영화의 음악은 실제 밴드와는 달리 잔잔한 포크송이 주를 이루는데요.
마침 OST가 나와요. 연계해서 공연도 준비하고 있고요. 실제 밴드 호아는 사이키델릭, 전자음악을 하는 친구들인데 저는 이 영화에 포크음악을 베이스로 했어요. 중점을 둔 건 가사였어요. 진화와 미래의 7년 연애와 또 음악을 했던 시간들을 돌아봐야 하는데, 그걸 모두 플래시백으로 보여주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었고요. 가사를 통해서 충분히 그 시간을 떠올릴 수 있게 하려고 신경을 많이 썼어요. 저도 작사에 참여했고요. 메인곡 ‘새벽 별’은 이 영화를 만든다고 했더니 그 친구들이 만들어서 가져온 것이었고요. 마지막 곡인 ‘My Daisy’는 원래 진화가 가지고 있던 곡이었어요.

어려운 시기를 통과했던 감독님의 심경이 반영된 작품인 만큼, 완성하고 전주국제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초청과 개봉으로 이어지며 느끼는 해소의 지점도 큰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요.
우선은 촬영할 때 정말 행복했어요. 촬영할 때 스태프 분들이 많이 힘들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정말 7일 간 효율적으로 찍으려 노력했어요. 그 시간이 정말 힘들지 않고 행복했어요. 영화제 때 관객들을 만났는데, 20대 초로 보이는 관객 분이 영화 보고 너무 힐링 됐다고, 진화를 응원하고 싶다. 영화 만들어 주셔서 고맙다고 하시는데, 이야기를 듣는 제가 울컥 하더라고요. 처음엔 제가 힘들어서 좀 재밌게 살고 싶어서 만든 영화인데 봐주시는 분들이 그런 응원을 보내주시니까 이 영화가 역할을 하는구나 싶었어요. 우스갯소리로 진화와 동욱이한테 ‘내가 바쁘고 일이 잘 풀렸으면 이 영화는 안 나왔겠다’ 이렇게 이야기 했죠. 기회가 된다면 이렇게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만드는 프로젝트를 다시 또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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