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포스터

42년에 걸친 장대한 은하계의 '스카이워커' 사가가 막을 내린다. 1977년 조지 루카스에 의해 만들어진 이 스페이스 오페라는 본편 아홉 개와 여러 스핀오프들이 이어지며 할리우드 박스오피스 역사를 새로 썼을 뿐만 아니라, ILM을 탄생시키며 할리우드 특수효과의 진화를 가져왔고, 수많은 팬보이들을 양산시키며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을 만큼 엄청난 파급력을 선사했다. 단지 미국 내에서만의 얘기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스타워즈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캐스 R. 선스타인이 저술한 책 <스타워즈로 본 세상>에 따르면 이 시리즈가 2016년까지 벌어들인 수익은 총 302억 달러로 전 세계 90개국의 국내총생산보다도 많은 액수였다. 만약 ‘스타워즈’가 하나의 나라였다면 전체 국가 중 중간 수준은 되는 셈이다.

책 <스타워즈로 본 세상>

2012년 루카스 필름을 인수한 프랜차이즈 왕국 디즈니가 이런 노다지를 그냥 놔둘 리 만무하고, 애초 조지 루카스가 계획했다고 누누이 언급하던(그러나 그의 속편 아이디어는 쓰이지 않았다!) 시퀄 삼부작에 바로 착수했다. 루카스 필름의 대표로 취임한 캐슬린 캐네디 지휘 아래 ‘스타트렉’ 리부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J.J. 에이브럼스가 연출로 간택됐다. 그 역시 오리지널 시리즈의 루카스처럼 첫 편만 연출하고 뒤로 물러날 계획이었지만, 9편을 맡을 콜린 트레보로우가 시작도 전에 하차를 결정했고, 라이언 존슨이 만든 8편도 평이 갈리며 논란에 휩싸이자 결국 뒷수습을 위해 다시 연출에 복귀했다. 마지막 편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그렇게 작년 12월 18일부터 전 세계 개봉했다. 다만 전통적으로 국내에서 재미를 못 본 스타워즈인지라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늦은(사실은 가장 늦은) 3주 뒤에나 개봉하게 되었다.

영화음악의 전설 존 윌리엄스

존 윌리엄스

원작자 조지 루카스가 손을 떼고, 영원한 공주 캐리 피셔와 ‘츄이’ 피터 메이휴, ‘R2D2’ 케니 베이커는 고인이 됐으며, 원년 캐릭터들의 신변상 변화(!)도 있는 만큼 <스타워즈>도 그전 같지 않다는 반응이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 시리즈를 기대해야 하는 단 한 가지의 이유가 있다면 그건 바로 42년간 9편에서 음악을 묵묵히 맡아온 마에스트로 존 윌리엄스의 존재 때문이다. 그가 누구인가. 그 어떤 설명이 필요 없는 현존하는 할리우드 끝판대왕 격의 영화음악가가 아닌가! <죠스>와 <타워링>,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필두로 <슈퍼맨>과 <인디아나 존스>, <E.T>, <해리 포터>와 <나 홀로 집에>, <쥬라기 공원>, <쉰들러 리스트>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 <틴틴: 유니콘 호의 비밀> 등 70년대부터 지금까지 할리우드 박스오피스를 뒤흔든 작품에는 언제나 그의 이름이 있었다.

존 윌리엄스

스티븐 스필버그의 음악적 파트너이자, 막스 스타이너나 알프레드 뉴먼,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드, 미클로스 로자 등으로 대표되던 고전적인 심포닉 사운드의 부활과 중흥을 이끈 영화음악가로, 스필버그가 사람들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한다면, 이를 떨구는 건 존 윌리엄스의 음악이라 할 정도로 전설적인 위인이다. 오스카상에 51회 후보로 올라 5회 수상했고, 그래미상엔 67회 올라 23회 수상, 골든 글로브엔 25회 올라 4회 수상, 영국 아카데미상 7회 수상, 에미상 3회 수상하는 등 그가 받은 시상식 후보 지명과 수상 기록은 일일이 거론하는 게 힘들 정도다. 특히 오스카의 경우 59회의 월트 디즈니에 이어 역대 두 번째인 동시에 살아있는 인물 중 최고 기록이기도 하다. 1980년부터 93년까지 아서 피들러 뒤를 이어 보스톤 팝스 오케스트라 지휘자로도 활약했고, 4개의 올림픽 테마곡을 작곡해 IOC에서 올림픽 훈장을 받기도 했다.

클래식과 무성영화 음악에서 영감을 얻다

조지 루카스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경도돼 <스타워즈>를 구상했을 당시 클래식을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스필버그의 소개로 존 윌리엄스를 만나 음악적 조언을 받으며 3-40년대 할리우드 고전 스코어에 영향을 받은 오리지널 심포닉 스코어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존 윌리엄스는 루카스가 편집 시 가이드로 선택한 일련의 클래식들 - 구스타브 홀스트와 윌리엄 월튼, 모리스 라벨,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등의 템프 트랙들을 바탕으로 바그너의 라이트모티브를 충실히 따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낭만적인 선율을 떠올릴 법한 사운드로 완성해냈다. 1977년과 80년, 83년에 나온 클래식 삼부작과 1999년과 2002년, 2005년에 나온 프리퀄 삼부작, 그리고 이번의 2015년, 2017년, 2019년 시퀄 삼부작까지 총 9편 동안 50여 가지의 테마가 20시간이 넘는 분량으로 채워져 있다.

<새로운 희망> <제국의 역습> <제다이의 귀환> 사운드트랙 표지

<보이지 않는 위험> <시스의 복수> 사운드트랙 표지

<깨어난 포스> <라스트 제다이> 사운드트랙 표지

<새로운 희망>에서 ‘루크의 테마’나 ‘레이아 공주의 테마’, ‘승리의 테마’가, <제국의 역습>에서 ‘임페리얼 마치’나 ‘요다의 테마’가, <제다이의 귀환>에서 ‘황제의 테마’나 ‘자바 더 헛 테마’가, <보이지 않는 위험>에서 ‘듀얼 오브 페이트’나 ‘아나킨 테마’가, <클론의 습격>에서 ‘어크로스 더 스타’가, <시스의 복수>에서 ‘배틀 오브 히어로즈’가, <깨어난 포스>에서 ‘레이의 테마’나 ‘카일로 렌의 테마’가, <라스트 제다이>에서 ‘로즈의 테마’가 각인되듯 각 편마다 적게는 4개에서 많게는 14개까지 주요 모티브를 설정해 서로 연계하고, 반복하며, 발전시키며 스토리 진행을 유도하고, 캐릭터들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묘사해냈다.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 영화들의 약 90%가 음악이고, 무성영화들처럼 음악이 극을 이끌고 감정을 전달하고 있기에 존 윌리엄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 번 강조했다.

스타워즈 음악의 가치와 고령의 마에스트로

이를 증명하듯 <스타워즈>는 2005년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영화음악 100년사를 뽑았을 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아라비아의 로렌스>, <싸이코>, <대부> 등을 제치고 당당히 1위로 뽑혔으며, <죠스>와 <E.T.>도 순위권 안에 올리며 존 윌리엄스는 가장 많은 세 작품을 등재시킨 유일한 영화음악가가 되었다. 클래식 삼부작은 모두 오스카를 비롯한 여러 시상식에 음악상 후보로 올랐지만, 프리퀄 삼부작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았고(특히 스필버그와 함께 한 그의 다른 작품들과 겹쳐 손해를 봤다), 이번의 시퀄 두 편은 다시 시상식 후보들로 등장하며 그의 저력을 과시했다. 스타워즈 사운드트랙들 중(차트에 갓 오른 9편을 제외하고) <제다이의 귀환>(20위)과 <라스트 제다이>(12위)를 빼고 모두 빌보드 200 톱10 안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며 상업적으로도 꾸준히 사랑받았다.

존 윌리엄스와 조지 루카스

클래식 삼부작과 프리퀄 삼부작은 모두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레코딩을 진행했지만, 이번 시퀄 삼부작은 존 윌리엄스가 고령(1932년생 현재 나이 88세)으로 더 이상 장시간 비행기 이동이 용이치 않자 LA의 소니픽쳐스 스튜디오에서 프리랜서 베테랑 뮤지션들을 모아 작업했다. 그런 인연으로 <깨어난 포스>에서는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구스타보 두다멜이 특별히 오프닝과 엔딩곡 지휘를 맡기도 했고, 오케스트레이터이자 영화음악가이기도 한 윌리엄 로스가 편곡과 지휘에 참여했다. 공식적으로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를 끝으로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하차하겠다고 밝힌 만큼 마지막 레코딩 날에는 마크 해밀과 데이지 리들리 등 시퀄 출연진들과 스필버그가 참석해 존 윌리엄스의 마지막을 축하했다.

스카이워커 사가의 끝,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이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는 ‘스카이워커’ 사가를 매조지는 대망의 엔딩 편답게 42년간 작곡된 모든 테마들이 짧게나마 거의 다 활용되고 있다. 스타워즈 메인 테마를 비롯해, 포스 테마, 레이아 공주의 테마, 요다의 테마, 임페리얼 마치, 황제의 테마, 저항군의 행진, 아나킨 테마, 레이의 테마, 카이로 렌의 테마, 포의 테마 그리고 여러 작은 모티브들까지 존 윌리엄스가 과거로부터 소환하는 반갑고도 다양한 레퍼토리들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쓰이지 않고 의미를 부가하며 밀도 높은 세계관과 풍부한 스토리텔링에 기여하고 있다. 기존 곡들의 게으른 재탕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가 오랜 기간 시리즈를 통해 조금씩 발전시킨 거대한 라이트모티브의 발현을 실감하고 체험한다면 오히려 전율하고, 열광해 마지않을 것이다.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여기에 바로 전작인 <라스트 제다이>에서 새로운 테마가 가장 적었다는 것을 의식했는지 존 윌리엄스는 전체적인 맥락을 담아내고 있는 우아하고 따사로운 동명의 메인 테마 “The Rise of Skywalker”와 레이와 핀, 포의 우정과 유대감을 상징하는 트리오 테마 격인 “We Go Together” 그리고 황제의 테마를 변형해 유령들이 합창하는 듯 섬뜩하고 어두운 기운이 느껴지는 “Anthem of Evil”, 박력 넘치고 재기 발랄한 액션 스케르초 등 새로운 모티브들을 적절히 가미했다. 물론 이전 삼부작들에 비해 이번 씨퀄의 테마들이 선명하지 못한 주제부와 복잡한 구성을 띈 게 유감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반평생을 바쳐 이룩해낸 이 완벽한 신화의 마무리와 거대한 유산 앞에 대해선 그 어떤 누구도 경외심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두 번 다시 마주하지 못할 전설의 끝을 실시간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라.

그리고 마에스트로,

부디 포스가 영원히 함께 하기를.


사운드트랙스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