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화에 등장하는 각종 '음모론'에 관한 소개다. 간혹 사실이 확인된 진짜 '음모'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추측과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도 많다.
그런데 가끔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스를 보면 허무맹랑한 음모론을 좇는 게 시간 죽이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여기 소개하는 영화 속 음모론은 믿거나 말거나다. 혹은 밝혀내거나.
음모론의 조건
쓸데없이 진지하게 시작해서 좀 어색하긴 하지만 이건 알아두고 시작할 필요가 있다. 캐나다의 종교 기호학자 캐서린 K. 영 교수는 실제 음모는 적어도 다음의 네가지 특징을 공유한다고 말한다. 첫째, '고립된 개인이 아닌 그룹', 둘째는 '사회 전체에 도움되지 않는 불법이나 적의를 목적에 둘 것', 그리고 셋째는 '자발적이거나 우연한 것이 아닌 것들의 모음', 마지막으로는 '공개적이지 않은 비밀리에 하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 음모와 음모론의 차이는 뭐냐? 쉽게 말해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음모론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예로 들면, 워터게이트 음모론이 되려면 명백하게 드러난 공모를 제외하고 실제 가해자들 역시 또 다른 음모에 의한 피해자라고 주장해야 그것이 음모론이 된다는 것이다. 음모론은 종종 허무맹랑하기도 하지만 보이는 것을 의심하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하는 걸 생각해보면 음모론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두려운 일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럼 이제 많은 영화에 등장했던 음모론에 대해서 알아보자. 다시 말하지만 음모 말고 음모론에 관한 영화들이다.
조지 부시 일가와 테러
<화씨 9/11>
2004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화씨 9/11>은 특정 음모론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영화는 아니다. 무어 감독은 이 영화에서 테러사건의 배후에 누군가 존재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부시 일가의 가계도(혹은 권력구도)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 어디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상세하게 들춰낸다.
그리하여 이라크전쟁 참전 군인들의 실태 고발로 나아가며 “누구를 위한 테러와 전쟁인가?”라는 질문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테러의 배후에 관한 음모론이 제기된 수많은 이유는 바로 이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시작한다. 만약 영화에서 언급하는 수많은 의혹을 전부 믿지 못한다 하더라도, 9/11 테러 소식을 전해 들은 부시 대통령의 7분 간의 침묵을 포착한 장면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장면 중 하나다. 영화 전체의 완성도에 비해 논리적 비약이 좀 심하다 못해 픽션처럼 느껴진다는 혹평을 듣기도 했던 작품이지만, 9/11 테러 관련 음모론을 본격적으로 접하고 싶다면 이 영화부터 시작하는 걸 추천한다.
테러를 조작했다?
<루즈 체인지>
<화씨 9/11> 이후 9/11 테러에 대해 본격적으로 미국정부를 공격하고 나선 작품은 <루즈 체인지>(2006)다. 이 영화는 <화씨 9/11>보다 훨씬 구체적인 (테러 당시의) 정황 증거를 제시하며 사건의 배후에 누군가가 깊게 개입되어 있음을 시사했다. 주로 건물의 폭발, 현장의 흔적 등과 관련한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면서 정부가 내놓은 사건의 진상조사에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즉, 정부가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사건을 조작, 은폐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것. 제작진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논리의 허점, 증거의 오류 등을 들어 반박하는 견해에 맞서 세 번째 버전까지 만들었다. 역시 믿거나 말거나.
달 착륙 조작설
<샤이닝>
아폴로 11호 달 착륙은 냉전 시대에 소련과의 경쟁에서 최초 타이틀을 얻고 싶었던 미국이 가짜로 꾸민 것이라는 음모론이 제기됐다. 진짜로 달에 착륙한 것이 아니라 아폴로호는 달을 빙빙 돌다가 돌아온 것이고 도착 영상을 따로 만들어 전세계에 내보낸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1977년에는 그에 관한 영화 <카프리콘 프로젝트>도 만들어졌다. 그런데 하필 가짜 영상 제작을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게 시켰다는 설이 제기됐고 그 증거로 사람들은 <샤이닝>의 영화 속 의상과 카페트 문양 등에서 달 착륙과 관련한 그럴싸한 요소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이 논란은 최근까지 이어져서 큐브릭 감독의 딸이 직접 해명을 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는 이 링크로.)
이 음모론에 관해서 패트릭 머레이 감독의 페이크 다큐 <슈팅 스탠리 큐브릭>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차라리 상상력을 더 발휘해 극영화로 완성한 다음 영화가 더 재미있다. 앙투완 바르두 자퀘트 감독의 <문워커스>는 CIA요원이 달 착륙이 실패로 돌아갈 때를 대비해 가짜 영상을 만들 준비를 한다는 내용의 영화다. 코미디인데 주인공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을 섭외할 수 없게 되자, 가짜 스탠리 큐브릭을 섭외해서 꾸미다가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단지 음모론이지만 영화팬들에게 흥미로운 소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마이클 베이 감독도 여기에 슬쩍 숟가락을 얹은 적 있다. <트랜스포머3>는 사실 달에는 이미 트랜스포머가 있었고 이때 인류와 처음으로 조우했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3탄의 원제가 '다크 오브 더 문'이다. 문제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는 점이다.
인구를 조절한다?
<인페르노>
댄 브라운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시리즈 3편 격인 <인페르노>는 억만장자이자 천재 생물학자인 조브리스트가 테러를 위해 바이러스를 숨기고 죽는 것으로 시작한다. 로버트 랭던 교수는 조브리스트가 단테의 작품을 인용해 만들어 놓은 단서를 토대로 바이러스를 찾아 참사를 막아야 한다.
이 영화에서 조브리스트가 망상을 품고 있는 것이 바로 지구를 위해서는 급격히 증가하는 인구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를 위해 인류를 죽인다는 너무 아이러니한 음모를 조장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희한한 음모론을 제기하는 다큐멘터리가 한 편 있다. 그건 뒤이어 소개할 <시대정신>이라는 정체 불명의 다큐멘터리다.
비너스 프로젝트
<시대정신>
총 2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영화의 1편은 총 3부로 다시 나뉘어 진행되는데, 1부에서는 ‘지금껏 밝혀지지 않은 엄청난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전세계 모든 종교의 연관성을 해석한다. 지구상의 모든 종교의 탄생 원리가 엇비슷하다는 지적이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신화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에서의 신과 종교에서의 신이 엄연히 구분된다는 사실을 이들은 지적하지 않는다.
2부는 ‘전세계를 무대로’라는 부제로 앞서 마이클 무어 감독도 제기했던 9/11 사태의 숨은 의도를 파헤친다. 일련의 역사적 사건에 관한 원인과 결과는 또렷하다. 9/11 테러를 통해서 누군가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고, 엄청난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인가? 결국, 그들이 벌인 짓 아닌가? 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3부에서는 ‘커튼 뒤의 사람들’이라는 부제로 소위 진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 전세계 정세를 쥐고 흔드는 그들이 누구인지, 그 계보를 훑어나간다.
2편에 이르면, 본격적으로 언급하는 황당한 음모론이 바로 '비너스 프로젝트’다. 전세계 인구가 아무런 경제활동도 하지 않고 지구의 자연자원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한 신세계 개발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것. 이 영화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지만 ‘비너스 프로젝트’라는 것은 결국, 전세계 인구 중 상위 몇 퍼센트만을 남기고 모두 소멸시키는 본래 프로젝트의 취지를 보기 좋게 포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예수가 사실은...
<다빈치 코드>
<다빈치 코드>는 카톨릭과 성서를 정면으로 공격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예수의 후손이 존재한다는 것, '최후의 만찬' 그림에 그려진 것은 예수의 아내인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것 등등이다. 물론 이 소설과 영화를 두고 교황청은 공식적으로 근거없음을 발표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성서를 조금이라도 자세하게 읽어봤던 사람들, 혹은 카톨릭 교리를 알고 있는 교인이라면 혼란을 야기시킬 교묘한 구멍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사이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덧입힌 것. 역시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니케아 공의회의 진실, 고행을 즐기는(?) 조직 오푸스 데이 등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다.
직접적으로 음모론을 제시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종교 기호를 통해 추리해나가는 스릴러 장르에 있어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댄 브라운의 한참 스승 격인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다. 왜 진실에 다가서야 하는지, 진실을 좇다 보면 무엇을 보게 되는지를 잘 알려주는 소설이자 영화였다. <다빈치 코드>는 과정보다는 진실 자체의 가십에 좀 더 치중하는 영화이자 소설인 것이다. 그러니까 <다빈치 코드>는 그냥 재미있는 음모론에 머무는 수준인 것.
프리 메이슨, 일루미나티
<내셔널 트레져>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내셔널 트레져> 시리즈는 중세 시대 십자군에서부터 이어져오던 비밀조직 프리 메이슨이 미국에 엄청난 양의 보물을 들여와 후대를 위해 숨겨놓았을 거라는 '음모론'을 기반으로 또 다른 가상의 이야기를 지어낸다.
이 영화에 소개되는 '프리메이슨'이란 조직은 십자군 전쟁 때 어마어마한 보물을 찾아낸 '템플기사단'이 보물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위대한 사원의 창시자'라는 뜻의 조직. 이들은 보물을 들고 유럽으로 건너갔다가 미국으로 옮겨갔다고. 이 프리메이슨에는 조지 워싱턴과 벤자민 프랭클린 등의 인사들이 소속되어 있어서 보물을 지켜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조직의 징표가 바로 위의 영화 장면에서 소개되는 짓다 만 피라미드와 눈의 형상. 흔히 '일루미나티'라고 알려진 또 다른 조직도 이런 상징과도 같은 것을 곳곳에 남겨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악마를 숭배하고 이상한 것들을 모의한다는 음모론이 지금도 팽배하다.
참고로 2편에서는 미국 하원의원도서관에 숨겨둔 '대통령의 비밀의 책'이 등장하는데 그 책에는 항간에 떠도는 모든 음모론의 진실이 적혀 있다는 설정이다. 그러니까 미국 대통령은 전부 알고 있다는 것.
일제의 말뚝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위에서 잠깐 언급한 <장미의 이름>을 군대에서 달달 외다시피 읽은 다음 음모론에 관한 영화를 만든 이도 있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시나리오를 쓴 장용민 작가는 대학 때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게 된 이후 음모론에 입각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어떠한 음모론 가설을 하나 세워 놓은 뒤, 거기에 맞게 이상 시인의 시를 암호로 집어 넣는 등 실제 역사를 팩션으로 각색해서 영화를 만들었다. 당시 그가 '음모'로 내세웠던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 시절, 한국의 정기를 끊어버리기 위해 일본이 구 조선총독부 건물 지하에 철심을 박아 놓았다는 이야기였다. 이 영화는 작가가 영향 받았다고 말한 소설 <장미의 이름>과 플롯이 너무 비슷하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한국영화로서는 일종의 가짜 역사를 다룬 색다른 시도로 남게 됐다.
음모론과는 조금 거리가 멀지만, 한국 역사를 소재로 한 다른 팩션 영화로는 정조의 삶을 다룬 안성기 주연의 <영원한 제국>, 100년째 일본제국으로 살게 되는 한국 이야기를 다룬 장동건 주연의 <2009 로스트 메모리즈>, 고종의 숨겨진 옥새가 있다는 것을 소재로 한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 등이 있다.
모든 시작, 51구역
<엑스파일>
'미드 열풍'의 원조, <엑스파일>은 무려 10개 시즌의 드라마와 두 편의 영화로 제작되면서 사실상 20세기 음모론을 총망라한 시리즈로 자리매김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고 주장하는 이 시리즈와 영화에서 소개하는 음모론에는 200여개가 넘는 에피소드 속 세상의 모든 희한한 사건이란 사건이 총망라되어 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미국 내 외계인 이슈의 핵심인 로스웰 사건이 그 중 가장 중심에 있다.
<엑스파일> 시리즈가 음모론을 소재로 하고 그에 집착하는 듯한 전개를 펼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시리즈의 총제작자인 크리스 카터는 “한동안 시민들은 정부의 음모에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 멀더가 과거에 했던 수많은 경고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즉, 이 시대가 왜 음모론을 필요로 하고 있는 가에 관한 대답인 것. 이어서 시리즈의 주인공 멀더 역시 이렇게 말한다. “지금이 가장 위험해요. 뭐든 움직여야죠(Do something!)”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
<JFK>
과연 그를 죽인 건 누구일까. <왓치맨>의 코미디언일까. 아니면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매그니토일까. 혹시 <더록>에서 비밀 마이크로 필름을 발견한 두 주인공은 진실을 알고 있을까. 이건 모두 대통령의 죽음에 관한 수많은 음모론을 빗대어 만든 장르 영화 속 장면들에서 언급한 내용들이다.
'저항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죄악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진범과 배후 세력에 관한 음모론은 지금도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의 죽음에 관한 음모론은 음모론 자체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증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어떤 '음모'가 분명 가담하고 있다고 믿는 이유는 대통령의 죽음 이후 권력을 쥔 특정 세력에게 큰 이익이 몰려갔기 때문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JFK>는 그것이 과연 우연에 의한 것인지, 한 개인의 그릇된 정신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 암살에 특정 배후 세력이 있는 것인지를 묻는다. 사실, 왜 음모론을 제기하고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가를 묻는 영화지만, 음모론 자체의 선정성을 강하게 부각시킨 측면도 있다.
하지만 "진실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영화의 엔딩크레딧 문구는 왜 사람들이 음모론에 관해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또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말임에는 틀림없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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