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작은 아씨들>이나 넷플릭스 드라마 <앤>, 혹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재미있게 보셨나요? 앞에 언급한 세 작품을 흥미롭게 본 구독자들이라면 좋아할 만한 드라마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HBO가 제작한 첫 번째 외국어 드라마로 화제를 모은 <나의 눈부신 친구>입니다. 이탈리아 언어로 된 이탈리아 드라마인데요. 나름 드라마 덕후를 자부하는 필자 역시 이탈리아 드라마는 처음이라 더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왓챠플레이에 4월 29일 공개되니 이번 황금연휴에 정주행해 보는 건 어떨까요.


<데미안> 여성판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앞서 잠깐 언급했다시피 <나의 눈부신 친구>의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 설정은 여러모로 <데미안>을 떠오르게 합니다. 드라마의 시작 부분. 노년이 된 한 여성이 자신의 어린 시절, 큰 부분을 차지했던 한 친구를 회고합니다. 노년의 레누는 60여 년 전, 폐허가 된 이탈리아 나폴리, 같은 동네에서 만났던 유년시절 친구와의 우정을 떠올리죠.

어린 레누(엘리사 델 제니오/마르게리타 마주코)는 누가 봐도 모범생 소녀입니다. 그의 앞에 나타난 릴라(루도비 카 나스티/가이아 지라체)는 신중하고 소심한 레누에 비해 대범하고 동물적입니다. 똑똑하며, 그 시절 여성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주체적인 의식까지 갖추고 있죠. 마치 온실 속 화초처럼 살던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나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 것처럼 레누는 자신과 모든 면에서 다른 친구 릴라를 만나 그녀를 동경하며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뜹니다.


외부 세계와 치열하게 싸워야만 했던 그 시대의 여성들

<데미안>의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내부 세계를 깊게 들여다보고 싸웁니다. 반면 <나의 눈부신 친구>의 1940,1950년대 나폴리 여성들은 자신의 생존 여부가 달려있는 외부 세계들부터 치열하게 싸워야 했습니다. 두 소녀는 함께 <작은 아씨들>을 닳도록 읽으며 <작은 아씨들>의 작가처럼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며 나름 꿈을 키웁니다. 글도 잘 쓰고 우등생이었던 두 소녀. 상급 학교 진학 무렵부터 이들 앞에 시련이 닥칩니다. 릴라의 집안 형편상 진학이 어려웠고요. 우등생 레누는 릴라에 비해 가정 형편은 나았지만 여자가 공부를?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죠.

다행히 레누는 아버지에게 인정받아 상급 학교에 진학합니다. 릴라는 학교에 가지 못한 채 구두가게를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오빠와 함께 일을 배우며 또 다른 꿈을 꾸죠. 그런데 학교를 가고 직업이 생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10대 중후반에 접어들자 동네 유지 망나니 아들과 그의 친구들은 동네 또래 여자애들을 일상적으로 희롱했고, 여자 아이들은 결혼 결정권조차 갖지 못하는 상황을 누구나 경험합니다. 대부분 또래 소녀들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반면 릴라는 이런 것들이 잘못됐다고 과감하게 반응합니다. 레누는 두 세계 사이 어딘가쯤 놓여있다 서서히 릴라의 생각을 받아들이며 성장합니다. 어린 시절 함께 처음으로 바다를 보러 가자 했지만 릴라가 먼저 그만 돌아가자고 합니다. 그토록 야생적인 릴라 역시 견고한 벽을 넘기 어렵다는 걸 상징하는 듯하죠. 그러나 주어진 현실 안에서 두 여성은 치열하게 10대를 살아가며 우정을 쌓아갑니다. 서로에 대한 동경과 시기, 부러움과 미움을 느끼면서요. 2차 세계대전 전후 이탈리아의 야만적인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이들의 우정은 찬란하게 빛납니다.


얼굴 없는 작가, 원작자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원작 소설 (출처: 한길사)

<데미안>과 비슷한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데미안>은 출간 당시엔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인 에밀 싱클레어라는 익명으로 발표됐습니다. 뒤늦게 그 문체가 헤르만 헤세와 같다는 것이 알려지며 작가의 정체가 알려졌죠. <나의 눈부신 친구>의 원작은 이탈리아 소설 <나폴리 4부작>입니다. 필명은 엘레나 페란테로, 얼굴 없는 작가입니다. 주인공 레누의 풀네임 엘레나 그레고와 이름이 같습니다. 1992년 첫 소설을 출간한 이후 한 번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알려진 점은 1950년대 나폴리 태생, 고전문학 전공자라는 것. <나폴리 4부작>이 자전적 이야기임을 추측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원작 소설은 40개국에서 1000만 부 이상 팔렸으며, 엘레나 페란테는 <타임>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됐습니다. 그의 정체에 대한 추측이 이어졌습니다. 한 탐사 보도 전문기자는 작가의 전속 출판사 재정상태 기록을 분석해 그가 독일문학 번역가인 아니타 라자라고 주장하기도 했죠. <데미안> 역시 출간 당시 많은 전문가들이 작가의 정체를 찾아내고자 했죠.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이 이탈리아 드라마가 일궈낸 성과

미국, 영국, 스페인, 프랑스 드라마에 비해 우리에게 이탈리아 드라마는 생소합니다. HBO가 첫 제작 외국어 드라마로 이탈리아를 선택한 것도 의외였는데요. 원작의 호흡에 맞춰 드라마 역시 시즌 4까지 제작될 계획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2018년 시즌 1이, 지난달 시즌 2가 방영됐습니다. 각 시즌은 로튼토마토 지수 93%, 100%를 기록했으며, 메타크리틱 메타스코어 역시 87점, 91점을 기록하며 좋은 평을 받았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시즌 2의 몇 에피소드는 극장에서 상영될 정도로 인기였다고 합니다. 4월 29일 왓챠플레이에는 시즌 1,2가 동시 공개됩니다. 시즌 2는 아시아 지역에서는 최초로 공개됩니다.


씨네플레이 조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