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개봉해 큰 성공을 거둔 코미디 영화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이하 <보랏>)의 속편이 오는 10월 23일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통해 공개된다. 14년 만에 제작된 <보랏 2>를 기념하며 <보랏>의 음악들을 곱씹어본다.


Čaje Šukarije

ESMA REDZEPOVA

20세기폭스 로고가 끝나자마자, <보랏>은 여성 보컬의 쫙쫙 뻗는 고음과 함께 시작한다. 마케도니아 가수 에스마 레드제포바(Esma Redžepova)의 목소리다. 카자흐스탄인 보랏(샤샤 바론 코헨)이 미국을 횡단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은 영화의 콘셉트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국적인 느낌의 음악을 떡 하니 배치해놓은 셈이다. 카자흐스탄 정보부가 제공하고 카자흐스탄 TV가 제작한 것처럼 꾸민 푸티지가 끝나면, 주인공 보랏이 사는 마을 쿠즈세크의 일상들이 열거된다. 어색한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선 사람들과 마을 여기저기에 보이는 동물들을 보다보면 <보랏>이 택한 형식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보랏>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노래의 주인공 레드제포바는 생전에 50여년간 노래 580곡을 발표하고, 2만2천 회에 달하는 공연을 여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며 '집시의 여왕'으로 불렸다. 1965년에 발표된 노래 'Čaje Šukarije'는 레드제포바뿐만 아니라 (흔히 집시라 불리는) 로마니 민족과 마케도니아인들 사이에선 국민가요로 사랑 받는 노래다. 이 노래 덕분에 레드제포바 역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보랏> 제작진은 이를 레드제포바의 허락 없이 사용해 레드제포바와 제작진 사이에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Everybody's Talkin'

HARRY NILSSON

보랏의 황당무계한 기행은 미국 뉴욕에 도착해서도 멈추지 않는다. 변기물로 세수를 마친 보랏은 차도 사이를 무작정 지나다니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무작정 키스 인사를 건네곤 도망가는 사람을 쫓아가고, 트럼프 호텔&타워 간판 옆에서 대변을 보고, 속옷 마네킨을 보면서 자위한다. 이 기괴한 모습들을 해리 닐슨(Harry Nilsson)의 아름다운 노래 'Everybody's Talkin'이 꾸며 그가 만드는 소동이 그저 평화롭고 즐거운 일상처럼 보이게 한다. 보랏 역시 뉴욕 한복판을 돌아다며 온갖 추태를 부리고 다녔던 그 날이 "생애 최고로 행복한 날"이라고 말한다. 닐슨이 세 번째 앨범 <Aerial Ballet>에서 프레드 닐(Fred Neil)의 노래를 리메이크 한 'Everybody's Talkin''은, 당시 영향력 있는 음악 칼럼니스트 데릭 테일러가 존 슐레진저 감독에게 해리 닐슨을 소개해 <미드나잇 카우보이>(1969) 사운드트랙에 수록되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닐슨의 이름값도 껑충 뛰어올랐다. 스티비 원더, 이기 팝, 빌 위더스, 루이 암스트롱 등 수많은 뮤지션들이 'Everybody's Talkin''을 커버했다.


Take My Breath Away

BERLIN

보랏, 다큐멘터리 PD 아자맛과 함께 <보랏>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파멜라 앤더슨이다. 유머 강사를 만나고 와서 호텔에서 TV를 즐기고 있던 보랏은 그냥 채널을 막 돌리다가 해변을 걸어다니는 금발의 미녀를 발견한다. <SOS 해상 구조대 (원제 'Baywatch')>의 캐릭터 C.J(파멜라 앤더슨)다. 시뻘건 내복을 입은 채 늘어져 있던 보랏은 그녀를 보고 C.J같은 미녀는 난생 처음 봤고,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다. 다만 그 순간 나오는 음악은 <SOS 해상 구조대> 속 노래가 아닌, 영화 <탑건>(1986)의 주제가 'Take My Breath Away'다. 80년대 초중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프로듀서 조르지오 모로더(Georgio Moroder)가 영화음악을 도맡아, 뉴웨이브 밴드 베를린(Berlin)이 노래한 'Take My Breath Away'가 특히 많은 사랑을 받아 아카데미/골든글로브 주제가상을 휩쓸었다. 비록 <SOS 해상 구조대>의 노래는 아니지만, 오프닝의 꿀렁거리는 신디사이저 소리가 주는 오묘한 감흥은 첫눈에 반해버린 보랏의 설렘을 보다 우습게 보여주는 톡톡한 효과를 발휘했다.


Siki, Siki Baba

KOCANI ORKESTAR

오로지 파멜라 앤더슨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움직이는 보랏. 구닥다리 아이스크림 차를 타고 미국을 가로지르는 동안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어김없이 보랏은 그들을 당황시킨다. 우연히 묵게 된 집이 유대인 가정이란 걸 알고 도망치는 대목도 있다. 또 다시 유대인을 만날 거라는 공포 때문일까, 보랏은 총기를 구하지 못한 대신 자신을 보호해줄 동물을 구입한다. 바로 곰이다. 곰과 함께 하는 여정은 내내 즐겁다. 코차니 오케스트라(Kočani Orkestar)의 곡 'Siki, Siki Baba'의 흥겨운 리듬과 함께 펼쳐지는 시간들이 오랜 여정의 시름을 씻어내는 것 같다. 코차니 오케스트라 역시 앞서 소개한 에스마 레드제포바와 같은 마케도니아/로마니 출신의 브라스 밴드다. 음악의 쓰임새는 그저 평화롭기만 한데, 현실은 전혀 다르다. 레드제포바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보랏>의 프로듀서는 'Siki, Siki Baba'를 허가를 받지 않고 사용해, 멤버 나앗 벨리오프(Naat Veliov)는 레드제포와 힘을 합쳐 고소를 진행했다. 미국 문화를 풍자한다는 명목 아래 카자흐스탄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야 마는 <보랏>의 악질적인 태도를 곱씹어보게 하는 일화다.


Dreams

GORAN BREGOVIC

<보랏>엔 이전에 발표된 영화음악, 정확히는 고런 브레고비치(Goran Bregović)가 만든 오리지널 스코어를 인용했다. 보랏의 다큐멘터리가 점점 산으로 가고 급기야 PD 아자맛까지 보랏을 떠나 그 혼자 남아 있을 때 이자벨 아자니 주연의 <여왕 마고>(1994) 속 'Le Matin'이 흐른다. 그리고 10분 정도 지나, 보랏이 드디어 만난 파멜라 앤더슨을 '보쌈'하려는 추태를 부리다가 저지 당하고 걸음을 돌리는 대목에선 유고슬라비아의 거장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아리조나 드림>의 'Dreams'를 사용했다. 차분하고 웅장한 아카펠라로 가득한 노래는 잔뜩 침울한 얼굴로 미국에서 보낸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는 보랏을 비춘다. 영화에서 웃기는 장면만 골라서 이어붙인 듯한 편집에 이 숭고한 노래가 붙으니 웃음이 배가 된다. 그 여정 끝에 전에 헤어진 매춘부 루넬을 만나는 것도 감동적이면서도 실소가 터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고런 브레고비치의 음악을 들으면서 웃을 수 있다니, 참으로 고약한 선곡 센스다.


Mahalageasca

MAHALA RAI BANDA

루마니아의 집시 밴드 마할라 라이 반다(Mahala Rai Banda)의 'Mahalageasca'는 <보랏>의 메인 테마와도 같은 곡이다. 영화 오프닝, 보랏이 마을 쿠르세크를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받을 때 흐르는 음악이다. 관악기와 현악기가 짱짱한 소리를 쏟아내며 어우러지는 도입부부터 듣는 이를 들썩이게 한다. 그리고 보랏이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짤막짤막하게 터져 나온다. 이를테면 파멜라 앤더슨을 만나러 가고는 싶은데 아내가 두려워 망설이고 있다가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하이파이브를 날릴 때. (진짜 상스럽다!!!!!!!!) 모든 소동이 끝나고 보랏이 자기 동네에서 즐거운 근황을 전하는 에필로그에서도 어김없이 'Mahalageasca'가 쓰였다. <보랏>이 러닝타임 내내 뿌려놓은 윤리적인 흠결에 대한 불만을 잠시 흩트려놓을 만큼 강력한 흥을 자랑한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