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넷플릭스 스페셜 에피소드 <킹덤: 아신전>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킹덤: 아신전>을 보며 나는 내내 “단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해본 적이 없는 나라”라는 말을 곱씹었다.

2주를 고민했다. K-DRAMA 코너에서 <킹덤: 아신전>을 다뤄도 될까? 넷플릭스는 이 작품을 ‘스페셜 에피소드’라고 하지만, 92분의 러닝타임은 드라마라기보다는 TV 영화에 가깝다. 게다가 이미 한 차례 이 지면에서 <킹덤>을 다룬 적이 있으니, <킹덤: 아신전>을 다시 다루는 게 반칙처럼 보이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래도 다뤄야겠다.

요즘은 어떻게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나는 끊임없이 “한국은 역사상 단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해본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이처럼 평화를 사랑한 나라인데 중국은 끊임없이 내정간섭을 하고, 일본은 호시탐탐 대륙진출의 교두보로 한반도를 바라봤으니,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라는 자긍심을 가지되 스스로 지켜낼 만큼 부강한 국가를 만들자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 위에 ‘억울함’과 ‘한’의 정서 정도를 곁들이면, 어린 시절 내가 주입 받았던 한민족 상이 완성된다.

어린 나에게 그건 굉장히 헷갈리는 메시지였다. 단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해본 적이 없다는 말과, 정복전쟁 외길인생을 걸었던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같이 듣고 있자면 앞뒤가 하나도 안 맞는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광개토대왕이 했던 건 내전이란 말인가? 독립국가였던 우산국(지금의 울릉도)을 복속시킨 이사부의 우산국 정복은? 끊임없이 독립국가의 지위를 원했으나 끊임없이 백제에, 신라에, 고려에 복속된 탐라국(지금의 제주도)은? 발해 장문휴 장군의 등주 습격은? 이정무의 쓰시마(대마도) 정벌은? 그것이 정치적으로 필요했는가, 한민족의 관점으로 봤을 때 나름의 정당성을 지닌 결정이었는가 아닌가의 가치판단과 무관하게, 한국사에도 타 국가에 대한 침략과 정벌의 흔적이 곳곳에 있다.

“한국은 역사상 단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해본 적이 없는 나라”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아마 광개토대왕의 정복전쟁이나 우산국 정복에 대해선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던 이유는 뭘까? 아마 한반도 역사 내내 껄끄러운 관계였던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을 상대할 때, 우리가 무고한 피해자로만 보이길 바랐던 것이리라. 한 번도 다른 민족을 괴롭힌 적이 없는 민족. 그래야 도덕적 우위가 생기고, 상대에게 사과와 자성을 요구할 명분이 선다고 믿었던 게 아닐까? 사실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그냥 상대가 나한테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하라고 요구하면 되는 일인데 말이다.

<킹덤: 아신전>을 보며 나는 내내 “단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해본 적이 없는 나라”라는 말을 곱씹었다. 조선의 4군 6진 개척도 조선 입장에서는 고토를 회복하고 국경을 뚜렷하게 하는 업적이었겠으나, 그 지역에서 터를 잡고 살아왔던 여진족 입장에선 갑자기 새로운 체제 안에 편입되거나 혹은 고향을 떠나라는 양자택일을 강요받은 일이었으리라. 그럼에도 조선 안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한 성저야인들은, 조선인들로부터는 ‘오랑캐’라는 이유로 끊임없는 경계와 배척의 대상이 되었고, 동족들로부터는 민족을 배반한 배신자라는 손가락질을 당했다.

처음 여진을 경계하고 정벌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던 조선 초기만 해도, 조선 조정은 다른 여진족들의 동태를 살펴주던 성저야인들에게 성씨나 관직을 하사했다. 그럼에도 조선은 결코 그들을 같은 조선인으로 대우해주지 않았고, 민족과 민족의 경계를 나눠 그 구분을 엄격히 했다. 김은희 작가가 그린 번호부락의 ‘번호(藩胡)’는 ‘울타리를 이루는 오랑캐’라는 뜻인데, 조선 초기에는 울타리라는 의미의 ‘번리’라고 부르던 호칭이 오히려 조선 중기로 가며 ‘번호’로 변했다. 같은 조선 땅 안에서 조선의 국법을 적용 받고 사는 사람들인데, 뒤로 갈수록 오히려 동화는커녕 ‘오랑캐’로 구분 짓는 일이 더 선명해진 것이다.

앞의 두 시즌에서 내내 조선의 백성들이 살아남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킹덤>은, 이 한 편의 스페셜 에피소드로 그 세계를 아득하게 확장했다. 조선은 아신(전지현)과 그 부족민들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천시하고, 여진의 동태를 살필 때 유용하게 써먹을 오랑캐 장기말로만 취급한다. 조선의 안위가 중요하다지만, 그를 위해 외부인을 그토록 천시하고 박해하는 일은 어떻게 정당화가 되는가? 그것도 조선의 울타리 안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가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조선은 끝끝내 등을 돌린다. 조선 왕국을 뒤덮은 <킹덤>의 모든 비극의 근원은 아신으로부터 출발한다지만, 아신을 그런 아신으로 만든 것은 조선이었다. 자국의 안보를 위해서는 대를 이어 터를 잡고 살아온 여진족을 정벌하고, 조선의 일원이 되겠다고 들어온 여진족을 오랑캐 장기말 취급했던 바로 그 조선.

당연하게도, 이 이야기는 16세기 조선에 국한된 이야기도, 픽션의 세계에만 한정된 이야기도 아니다. 더 나은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으로 넘어온 이주노동자들, 정치적·종교적 탄압과 불안정을 피해 한국을 찾은 난민들, 국적이, 피부색이, 쓰는 말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존재일까? 온갖 궂은 일에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다 쓰면서 그들이 한국사회를 향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배은망덕하다’고 말하고,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인한 난민을 양산했던 나라의 후손이면서도 ‘난민이 치안을 위협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킹덤: 아신전> 속 조선과 얼마나 다를까?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