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가 폐지된 이유” 같은 표현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종종 보게 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는 말도 있다. 이런 관용구를 언급한 것은 다큐멘터리의 힘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다. 창작자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뛰어넘는 실제 사건이 사람들 앞에 당도했을 때,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다. 아래 소개하는 5편의 다큐멘터리에서도 그런 충격, 감동, 환희 등이 담겨 있다.
<엡스타인의 그림자: 길레인 맥스웰>
<엡스타인의 그림자: 길레인 맥스웰>(이하 <엡스타인의 그림자>)은 콜론 뒤의 부제가 더 중요한 다큐멘터리다. 길레인 맥스웰, 이 여성이 누구인가를 추적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맥스웰의 이름이 제목의 뒤에 붙은 이유는 주제목 속 엡스타인이 워낙에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뉴욕 브루클린 태생의 제프리 엡스타인은 억만장자 금융인이었다. 성공한 사업가로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충격적인 반전은 그가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착취한 성범죄라는 사실이다. 2019년 엡스타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 엡스타인 자신을 비롯한 상류층의 여러 인물이 얽혀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성착취 사건의 실체를 알 수 없게 됐다. 누군가는 엡스타인의 타살을 주장하기도 했다. 관심은 엡스타인의 연인이었던 맥스웰에게 옮겨갔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맥스웰이 엡스타인에게 소녀들을 공급한 ‘마담’이었다. 엡스타인의 죽음 이후 맥스웰은 자취를 감췄다. 2020년 7월 맥스웰이 FBI에 검거됐을 때 그는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인물 8위에 오르기도 했다. 2021년 11월, 무죄를 주장하는 맥스웰의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영국 왕실의 앤드루 왕자까지 연루된 이 사건에서 그가 말하지 못하는 혹은 숨기고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엡스타인의 그림자>는 3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이 질문의 해답을 찾는다.
<이멜다 마르코스: 사랑의 영부인>
이멜다의 명품 구두 3000켤레.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영부인 이멜라 마르코스가 1986년 민중혁명으로 하와이로 도피하면서 만라카냥궁에 남긴 것이다. 그 많은 구두는 이멜다를 사치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여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멜다에 대한 이야기다. 하와의 도피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라고 으레 짐작했다면 완전히 틀렸다. <이멜다 마르코스: 사랑의 영부인>(이하 <사랑의 영부인>)을 보면 기가 막힌 그의 인생 후반을 볼 수 있다. <사랑의 영부인>은 이멜다가 사람들에게 지폐를 나눠주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는 과거 필리핀 시민들에게 착취한 돈을 뿌리면서 그들의 마음을 사고 있는 중이다. 남편 마르코스가 1989년 사망한 이후 1991년 이멜다는 필리핀으로 돌아왔다. 정계에 복귀했으며 자신의 아들 봉봉 마르코스를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랑의 영부인>은 분명 필리핀의 이야기지만 국내 관객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었으며 다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감옥에 보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토탈리 언더 컨트롤>
제목에 대한 설명부터 해보자. ‘토탈리 언더 컨트롤’(Totally under control)은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는 뜻이고 이 말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했다. 그가 통제하고 있다고 한 것은 코로나19 바이러스다. 그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지난해 10월에 공개된 <토탈리 언더 컨트롤>은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무능함을 꼬집는다. 또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전염병을 재선을 위한 정치적인 쟁점으로 만드는 태도를 비판한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 마스크를 쓰는 사람과 쓰지 않은 사람은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트럼프가 교묘하게 지지자들을 부추긴 결과다. <토탈리 언더 컨트롤>의 이런 주장의 근거는 공중 보건 및 감염병, 위기 관리 분야의 여러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바탕이 됐다. 특히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2020년 1, 2월 팬데믹 선언 이전 전염병 발생 초기 상황을 세밀히 전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에 대한 아쉬움과 그에 따른 미국인들의 희생에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재밌는 점은 <토탈리 언더 컨트롤>이 트럼프 행정부의 무능함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초기 대응을 소개했다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있다. <토탈리 언더 컨트롤>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에버그린 헬스 전염병의료소장 프랜시스 라이도 박사의 답변이 인상적이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개인적으로 느낀 점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직접 확인해보길 추천한다.
<리버풀 FC: 엔드 오브 스톰>
콥, 안필드, 유윌 네버 워크 얼론(You'll never walk alone) 등의 단어가 무엇을 뜻하고 알고 있으며 모하메드 살라, 조던 헨더슨, 사디오 마네가 누군지 알고 있으면서 아직도 <리버풀 FC: 엔드 오브 스톰>(이하 <엔드 오브 스톰>)을 보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왓챠에 접속해서 이 다큐멘터리를 감상하길 강력히 추천한다. 반면, 앞서 언급한 말들의 의미도 모르고 나열된 이름이 누군지 모른다면? 그렇다면 <엔드 오브 스톰>을 강력하게 추천하기는 어렵겠다. 당신이 축구팬이 아닐 가능성이 높고, 영국 프리미어 리그를 본 적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이 걸려서다. 리버풀 FC의 팬, 프리미어 리그의 팬이 이 다큐멘터리를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 축구팬이 아니라면 이 다큐멘터리가 재미가 없을까. 그건 아니다. 축구팬이 아니라도 이 다큐멘터리를 충분히 재밌게 즐길 수 있다. 유럽, 특히 영국의 프로 축구 리그가 엄청난 자본으로 움직이는 비즈니스의 영역임에는 분명하지만 축구라는 스포츠 그 자체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 감동을 전하기 때문이다. <리버풀 FC: 엔드 오브 스톰>에 그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만약 맨체스터 시티 FC 혹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팬이라면? 각자 판단할 문제일 테지만 안 보는 게 낫지 않을까. 괜히 열 받을 테니까 말이다.
<사마에게>
어린 자녀를 향해 카메라를 드는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금도 자녀가 있는 당신의 소셜 미디어 혹은 친구, 언니, 오빠, 누나, 형, 삼촌, 이모 등의 소셜 미디어에는 방긋 웃고 있는 어린 아이의 사진이나 동영상이 업로드되고 있을 것이다. 내전을 치르고 있는 시리아의 알레포에서 촬영된 다큐멘터리 <사마에게>도 본질적으로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의 제작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감독 와드 알-카팁은 단지 사랑스러운 자신의 딸 사마를 카메라에 담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무척이나 슬픈 얘기지만 언제 이별할지 모르는 아이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이별은 죽음이다. <사마에게>는 2011년부터 약 5년간 500시간(3만 분) 분량을 촬영해 96분으로 압축한 다큐멘터리다. 독재 타도, 반전의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자연스레 반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총 대신 카메라를 든 엄마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사마에게>는 제72회 칸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그밖에 전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62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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