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일 개봉한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는 긍정적으로 보든, 부정적으로 보든 이런 평가가 꼭 따라붙는다. "반드시 쿠키 영상을 볼 것". 이번 영화의 쿠키 영상은 그동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등장한 스파이더맨/피터 파커(톰 홀랜드)와 에디 브록/베놈(톰 하디)의 조우를 예고했다. 스파이더맨 실사화 판권을 쥔 소니 픽처스는 오랫동안 스파이더맨에 대한 빅 픽처를 그렸었고, 대개 실패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짜 그 큰 그림을 완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소니픽처스가 꿈꿨던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큰 그림을 이참에 정리해 본다.
샘 레이미의 4편은 6편까지 갈 수도 있었다?
2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지금까지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받고 있는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시리즈. 토비 맥과이어가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을, 커스틴 던스트가 메리 제인을 연기했다. 팬이라면 익히 들어 알겠지만 이 영화도 4편을 제작할 예정이었다. 당시 기획으론 3편의 4~5년 후를 배경으로 두 주연 배우가 복귀하고 아드리안 툼즈/벌처를 존 말코비치가, 쿠엔틴 벡/미스테리오를 브루스 캠벨이 유력했다. 전작들에서 등장한 딜런 베이커의 커트 코너스 박사가 리자드로 변화하는 과정도 예정됐었다. 거기에 앤 해서웨이가 펠리시티 하디를 맡을 예정인데, 원작에선 블랙캣인 이 캐릭터가 여기선 아빠 월터스 하디가 그린 고블린에게 살해당한 후 아드리안 툼스(벌처)의 손에 길러져 '벌처리스'라는 빌런으로 거듭나는 서사를 가졌다.
다만 샘 레이미 감독이 후에 한 인터뷰에선 4편이 만들어졌다면 블랙캣이 됐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뒀다(각본 중 일부는 블랙캣으로 등장했다). 당시 1~3편의 흥행 성적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소니 픽처스는 4편뿐만 아니라 5, 6편을 2부작으로 동시 제작하는 단계까지 고려했다. 그러나 샘 레이미 감독은 눈에 차지 않는 대본과 개봉일을 못 박고 제작을 닦달하는 소니 픽처스의 입장에 반대하며 프로젝트를 떠나 2010년 제작 중단 및 리부트 계획이 발표됐다.
전작의 흥행에 큰 그림 그리고, 전작의 흥행에 발목 잡히다
2012년 개봉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마크 웹 감독이 전두지휘하고 앤드류 가필드가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을, 그의 원조 연인 그웬 스테이시를 엠마 스톤이 연기했다. 이전 시리즈의 흥행에 힘입어 1편부터 상당한 제작비를 투입했는데, (흥행은 했으나) 결과적으로 그만큼 벌지 못해 2편에서 막을 내린 비운의 시리즈. '유니버스'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전 샘 레이미 시리즈와 달리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나올 시점엔 마블 스튜디오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보이며 유니버스 개념을 세웠고, 소니 또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기점으로 다양한 파생작을 기획했다. 2015년 마블 스튜디오와 합작한다고 밝히기 전까지 악당들의 팀업 무비 <시니스터 식스>를 공개하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3~4편을 공개할 예정이었으니, 소니도 스파이더맨 유니버스를 진작에 고민했었던 것. 예정대로면 <시니스터 식스>는 드류 고다드, 3편은 마크 웹, 4편은 매트 리브스가 내정돼있었다.
원래 계획된 시니스터 식스는 2편의 그린 고블린(데인 드한), 라이노(폴 지아마티), 해리 오스본/킹 고블린(크리스 쿠퍼), 펠리시티 하디/블랙캣(펠리시티 존스)이 복귀하고 오토 옥타비우스/닥터 오토퍼스, 아드리안 툼즈/벌처가 새로 합류할 계획이었다. 옥타비우스는 숀 펜, 다니엘 크레이그, 우디 해럴슨 등이 거론됐고 벌처는 콜린 파웰에게 제의가 갔었으니 스파이더맨 인기 악당 총집합에 화려한 캐스팅까지, 말그대로 안 볼 수 없는 작품이 됐을 법하다. 위 라인업 외에도 톰 하디가 플린트 마르코/샌드맨, 에밀리 블런트가 엘레나 콜/스콜피아 등으로 거론됐고 핀 위트록이 에디 브록으로 등장해 베놈이 되는 과정을 3편까지 묘사하려고 했다. 4편까지 갔다면 비제이 노박이 연기한 알리스테어 스미시가 스파이더 슬레이어이 돼 빌런으로 활약하는 계획까지 세웠다. 샘 레이미 트릴로지가 남긴 흥행 수치를 기반으로 처음부터 판을 상당히 크게 짠 것이 배우 캐스팅에서부터 여실히 느껴진다.
그러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이후 여러 악재가 겹치며 소니의 큰 그림은 무위로 돌아갔다. 일단 흥행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2억 5천만 달러를 들인 영화는 최소 5억 달러 이상을 벌어야 본전이었는데, 최종 성적은 7억 달러를 넘은 정도였다. <스파이더맨 3>가 비슷한 제작비로 8억 9천만 달러를 벌었으니 이번 영화는 기대치에 비해 낮은 편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영화에 대한 평가도 전편과 2편 모두 좋은 편이 아녔다. 그래도 소니는 이후 시리즈를 제작할 예정이었던 듯 종종 제작 소식이나 개봉 예정일을 전했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4년 말, 소니 픽처스 본사가 해킹당하면서 상황은 뒤바뀌었다. 소니 픽처스와 마블 스튜디오가 '스파이더맨 권리'를 두고 협의 중인 사실이 드러난 것. 마블 스튜디오는 당시 <어벤져스>라는 큰 이벤트 무비로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안착시킨 상태였고, 소니 입장에선 이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성적이나 평가나 다소 애매했으니 앞으로의 계획을 백지화하는 것도 감수하려 했다. 결국 2015년, 스파이더맨을 마블에서 제작하고 소니에서 개봉하는 형태로 함께 만든다는 공식적으로 발표하면서 소니만의 유니버스는 달콤한 꿈에서 그쳤다.
소니의 큰 그림, 20년 만에 성공하나
그렇게 새로운 스파이더맨은 2016년 13번째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처음 등장했다. 철없는 고등학생 피터 파커이자 아직은 미숙한 초보 히어로 스파이더맨은 톰 홀랜드에게 돌아갔다. 그는 이 영화와 단독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등으로 무사히 MCU 세계관에 안착했다. 언뜻 보이기엔 스파이더맨이 영영 MCU에서 활약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소니 픽처스는 판권을 가진 스파이더맨 세계관의 다른 캐릭터들에 눈을 돌렸다. 마블과 소니 공동 합작은 한시적인 계약이었고 스파이더맨은 언젠가 소니의 손에 다시 돌아올 것이었다. 그래서 소니는 독자적인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구축을 위해 원작 스파이더맨 코믹스 속 다른 캐릭터의 실사화에 박차를 가했다. 그 일등 타자는 (프로듀서 아비 아라드의 영원한 사랑) 베놈이었다.
소니 픽처스는 2017년 5월 톰 하디를 에디 브록으로 캐스팅했음을 알리면서 '소니의 마블 유니버스'라는 용어로 세계관 구축을 예고했다. 곧이어 <모비우스>의 시나리오를 개발 중이며 자레드 레토가 주인공을 맡는다고 알렸다. 이외에도 소니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세계관에서 못다한) 크레이븐 더 헌터, 블랙캣, 나이트 워치, 실버 세이블, 잭팟 등 스파이더맨 세계관의 빌런이나 안티 히어로가 중심인 단독 영화들을 구상하고 있다.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당시엔 이런 명칭도 없었다)의 첫 영화 <베놈>은 2018년 개봉했다. 완성도면에선 혹평을 받았으나 전 세계 8억 5천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기록하며 '스파이더맨 없는 스파이더맨 세계'의 인기 또한 증명했다. 물론 본체 스파이더맨의 <스파이더맨: 홈커밍> 또한 11억 달러를 돌파하는 흥행 파워를 과시했다. 두 영화가 만족할 만한 성과와 흥행력을 보여준 2019년, 소니와 마블은 앞으로 제작할 공동 작품의 흥행 수익 분배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가 협상이 극적 타결되면서 MCU의 마지막 스파이더맨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제작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케빈 파이기가 스파이더맨을 "두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오가는 유일한 영웅"이라고 언급하면서 마블과 소니가 스파이더맨이 두 유니버스를 공유하는 징검다리 역할이 될 것임을 합의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그 결과가 우리가 본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의 쿠키 영상이다. 이번 쿠키 영상은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의 베놈이 MCU의 스파이더맨을 추적할 것이라는 암시를 담아 영화를 본 관객 모두를 놀라게 했다. 앞으로 개봉할 MCU의 (아마도) 마지막 스파이더맨 영화가 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소니가 제작할 당시의 빌런 닥터 옥토퍼스(알프레드 몰리나)와 그린 고블린(윌렘 대포), 일렉트로(제이미 폭스)가 등장하는 것도 이런 양 기업의 합의가 만든 결과로 보인다. 팬들은 이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멀티버스를 통해 MCU의 스파이더맨이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로 합류한다는 루머를 정설처럼 받아들이고 있을 정도다.
소니 픽처스는 마침내 그들이 생각하는 유니버스의 본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최초의 스파이더맨 실사영화가 나온지 19년 만에, 최초의 스파이더맨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천명한지 7년 만의 일이다. 소니와 마블은 팬들이 예상하는 대로 스파이더맨을 새로운 세계에 옮길까, 아니면 (MCU가 늘 그랬듯) 예상외의 플롯 비틀기로 또 다른 반전을 준비할까. 어느 쪽이든 소니 픽처스가 손을 들어준 것이니 우리는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의 새로운 국면을 기대에 찬 눈빛으로 기다릴 것이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