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의 동의를 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개봉에 대한 윤리적인 질문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데요.
정말 중요한 질문을 해주셨어요. 윤리적인 문제는 반드시 있습니다. 사실 가족의 누구의 허락도 양해도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개봉을 하게 된 거죠. 누나와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아버지에게 인터뷰로 허락을 구하는 형태를 취하긴 했지만 당시 96세의 아버지가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그럼에도 공개를 결심한 건 우리집의 방식이 굉장히 나쁜 부모가 동물처럼 누나를 취급을 해서 이게 그게 문제가 된건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누나가 병원에 못가게 되었는 지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다 필요성을 느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윤리적인 문제를 따졌을 때 가장 올바른 판단은 이 영상을 누구한테도 보여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카메라 앞에서 가족의 반응이 각각 달랐던 것 같은데요.
부모님은 카메라를 경계하시긴 했어요. 특히나 어머니는 안돼! 라고 하시기도 해서 촬영 중간에 멈춘 적도 있고요. 등만 보이는 장면이 많은데 찍지 말라고 하셨을 때였어요. 반면 아버지는 카메라로 제가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셨는지 천진난만 하셨어요. 뭘 물으면 너무 믿으셨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 답을 해 주셨어요. 누나는 카메라를 통해 제대로 이야기 한 게 한두 번 정도 밖에 안될 정도로 어떤 질문에도 반응도 대답도 잘 해주지 않았어요. 그래도 정말 싫었다면 카메라를 대면 바로 나가지 않았을까 싶은데 가끔 정면을 쳐다보기도 하고 카메라 시선 끝에서 카메라를 보면서 이야기를 했어요. 어떤 의미로 괜찮다고 허락해 준게 아닌가 느낌을 받으면서 촬영을 했어요. 누나가 인터뷰 내내 다운 된 건, 아버지가 누나한테 향정신성의약품을 써서, 그 부작용으로 도파민이 나오지 않고 반응을 못해서 경직된 상태가 아닐까, 그런 상태로 답변을 했을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영화 마지막까지 등장하셨던 아버지가 지난 2004년 작고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완성된 영화를 보셨는 지, 어떤 반응을 보이셨었나요.
마지막 아버지 인터뷰를 할 때 사실은 편집이 거의 다 끝나 있었던 상태였거든요. 그때 그동안 찍었던 걸 아버지가 보셨어요. 그때 솔직히 아버지가 전혀 반응을 안 보이셨거든요. 그런데 유일하게 반응을 보여준 부분이 엄마의 목소리가 나왔을 때 “이게 누구 목소리야?” 하셨어요. 제가 “엄마 목소리야”라고 하자 “그랬나”라고 하더군요. 그 외의 부분은 그저 바라볼 뿐 특별한 반응이 없었습니다.그게 전부셨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0년쯤 지나서 보신 거거든요.

조현병, 감금 이라는 키워드로 설명을 할 수 밖에 없지만, 막상 작품 안의 가족의 묘사는 극적이거나 자극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데요. 관찰자인 감독님이 곧 가족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영화를 담아내는 태도와 시각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제가 이 영상을 만든 이유가 조현병이 어떤 병이냐에 대한 게 아니었거든요. 우리집 상황을 보여주자는 거였는데, 그 과정에서 누나의 조현병 이거를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굉장히 컸습니다. 영화에 누나가 갑자기 발작을 하는 장면이 몇 개가 들어갔었는데요. 사실 그 장면을 넣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에 대한 설명이 없는 다큐멘터리 이다 보니 그마저 안들어가면 설득력이 부족하겠다 싶어서 넣게 됐습니다. 대신 이 부분은 최소한으로 넣자 결정했습니다. 편집은 누나가 2021년 5월에 이제 사망을 하고 그 이후 반 년 정도 지난 2022년 초부터 약 1년 반 정도의 시간에 걸쳐서 했는데요. 편집 할 때 꼭 지켜야 될 점을 정하고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가 왜 부모님은 누나가 정신과에 가서 진단을 받는 걸 거부했는지에 영화에 잘 드러났으면 좋겠다. 두 번째는 열쇠를 잠금으로 인해서 누나의 인생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 영상에는 최종적으로 들어가지 못한 부분인데요. 아버지가 누나가 마시는 차에 몰래 향정신성 물질을 넣어서 마시게 했는데요. 제가 대학생 때 몇 번 목격을 했어요. 영상에 부엌이 몇 번 나오는데 약을 넣는 장면을 촬영을 하려고 했는데 결국 그 장면을 못 찍은 거예요. 아버지도 집에서 그렇게 약을 먹게 하는 게 범죄라고 인지를 하고 제가 촬영 할 때 주의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세번 째 걸 넣는 건 포기를 했습니다.

환자와 함께 하는 가족의 긴 시간 동안의 돌봄노동이 이 집안의 일상으로 비춰지는데요. ‘감금’이 말그대로 폭력적으로 행사된다기 보다 ‘어쩔 수 없어’ 보이기도 한데요. 감독님이 보신 가족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누나가 발병하기 전에는 저희 가족도 일반적인 가족과 전혀 다르지 않았어요. 밥 먹으면서 대화도 하고 여행도 같이 가고. 그런데 어떤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서 저희 집안의 영상을 보시고 ‘이 집에 유일하게 아버지가 좀 달라 보인다’고 하시더라고요. 가족 모두가 아버지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맞추려고 연기를 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성실한 누나가 그걸 다 받아들이려고 하다보니 병이 난 게 아닌가 싶다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아버지는 저희 말을 잘 들어주시는 분이지만, 자신의 생각을 전혀 꺾지 않는 사람이셨고, 모든 걸 엄마 탓이라 하셨어요. 마지막에 “우리는 실패하지 않았어.”라고 하신 것도 아버지의 고집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어머니의 모습도 주목하게 되는데요. 돌봄노동을 하는 상황에서, 자식인 감독님이 집을 ‘탈출’했다면, 어머니는 집안에서 오롯이 그 짐을 짊어진 역할을 하셨는데요. 어머니와 대화가 영화에서 가장 질식할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한편으로 그래서 어머니의 상황에 대한 연민도 엿보이는데요.
어머니가 1927년 생이신데요. 당시는 일을 하는 여성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는데, 대학 교수를 하면서 급여가 계좌로 들어오고 그 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신자유 시대의 여성 같은 분이셨어요. 누나의 정신의학적으로 치료를 하려고 연구도 많이 하셨는데 이상하게 누나에 대해서만은 왜 그런지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다 들으셨어요. 저는 계속 그게 문제다 하는 입장이라, 아버지와 저 사이에서 어머니가 굉장히 고생하셨을 거라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는 누나의 장래를 누구보다도 걱정한 분이셨어요. 누나가 의사가 될 수 없는 상황이니 어머니의 연구실에 연구생으로 이름을 올리고 박사 논문을 쓰게 하고 연구자로 어떻게든 케어하려고 했는데 안된거죠. 어릴때 생각을 하면 아버지는 출장도 잦고 전근을 가시기도 하셨는데요. 어머니가 그래서 누나와 같이 있는 시간이 길었어요. 어머니가 굉장히 재미있는 분이셨는데요. 친구가 와서 식탁에서 탁구를 했는데, 그걸 보고 혼내시기 보다 네트를 제대로 설치하게 고쳐 주시는 분이셨어요. 외식을 하면서 맛있다고 한 음식은 집에서 그대로 만들어 주시기도 하셨거요.

후반부 아버지와 누나가 불꽃놀이를 보는 장면, 전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장면, 마지막 에필로그처럼 넣은 손을 흔드는 장면이 오래 잔상에 남는대요. 이 영화의 ‘어떻게 해야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무엇이든, 결국 이런 누나의 모습을 원했던 게 아닐까요.
그렇게 보셨다면 그게 맞을 거예요. 누나가 발병하고 저희 가족에게는 대화스러운 대화가 없었어요. 부모님이 명령하거나 그런 이야기 뿐이었죠. 그런데 누나가 호전되면서 대화가 좀 되니까 최대한 그 대화를 즐기기 위해서 대화를 던지는 그런 것들이 계속 되었던 거죠. 그렇게 바뀐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면들이었어요. 사실 편집을 하면서 불꽃놀이 장면은 잘라내야 할 후보 중에 하나였어요. 80시간 분량을 저 혼자 3시간으로 정리했는데 그때부터 더 자를 장면이 없어서 고민을 하고 있었거든요. 사실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전하는 큰 축에서 보자면 그 장면은 전혀 필요 없는 관계가 없는 얘기라고 생각하고 잘라 낼 후보로 생각했는데, 촬영과 편집을 함께 한 아사노 유미코 씨가 영상을 보고 ‘이건 절대로 넣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이 영화의 순기능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가족의 긴 역사를 해부해 주는 건 결국 감독님의 기록인데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카메라가 있어서 가족 간에 당시 있었던 갈등과 문제를 해소해 준 지점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결국 감독님으로 인해 가족이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치료법 중 하나인 ‘카메라 치료’(Camera Therapy)를 받은 게 아닐까요.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이 대화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젊었을 때 굉장히 성격이 급했어요. 부모님과 큰 소리로 말다툼도 하고 그랬는데요. 한번은 어머니가 걱정이 되서 레스토랑에 저를 데리고 나가서 진정을 시키려 하셨는데, 그때도 말다툼이 커졌어요. 어느 순간 돌아봤더니 레스토랑에 있는 모든 사람이 저희를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안에 카메라가 들어가니까 화를 내고 큰 소리를 내는게 창피해 지더라고요. 그때부터 큰 소리를 내지 않은 게 저한테 온 큰 변화였어요. 아버지 같은 경우에는 카메라가 있을 때 평소 하지 않은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특히 누나 문제에 관해서요. 누나에게 문제가 없다던 분이 결국은 카메라 앞에서 조금은 문제가 있다고 진심을 밝혀 주시기도 했고요. 아버지는 이 영상을 누군가 타인이 보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가족들도 서로 카메라 앞에서는 조심하지 않았을까, 그게 우리한테는 너무 좋은 효과를 끌고 온 게 아닌가 싶었어요. 일본에 신사에 가서 뭐를 빌 때 반드시 곡물이든, 돈을 바치쳐라. 그렇지 않으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의미로 우리 집에서는 카메라가 그런 역할을 한 게 아닐까. 덕분에 많은 부분을 얘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카메라는 우리를 대화로 이끌어준 하나의 매개체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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