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지배할 목적으로 그의 심리를 조작하는 행위'를 일컫는 '가스라이팅'이 일상적 단어로 자리잡은 건 비교적 최근이다. 신체에 가해지는 억압과 폭력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국가적 징벌의 대상이었지만, 심리적 영역에서 자행되는 조종과 학대는 그렇지 못했다. 1938년 패트릭 해밀턴이 연출한 연극 <가스등(Gaslight)>에서 유래한 이 단어가 요즘 더 각광받는 건 정신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익명성에 기대 사적 경험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시대 상황 역시 가스라이팅을 널리 쓰이도록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가까운 주변인에게 말하지 못한 비슷한 경험들이 온라인 상에서 포개지며 하나의 현상이 되면, 이를 경제적으로 설명할 단어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현재 통용되는 가스라이팅 뜻은 당초의 것과 조금 달라졌다. 미국의 사전 출판사 미리엄웹스터(Merriam-Webster)는 2022년 '올해의 단어'로 가스라이팅을 선정하며 해당 단어가 기존보다 확장된 의미로 쓰인다고 짚었다. 언급했듯 가스라이팅은 본디 정신 건강 전문가들이 타인을 정신적으로 통제하는 행위와 그 과정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었지만, 미리엄웹스터는 오늘날 가스라이팅의 의미가 '의도적 속임수'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원래의 가스라이팅이 타인에게 장기간, 고강도의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면 지금은 그저 고의적으로 남을 속이는 것만으로도 이 단어를 사용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앞서 옥스포드 사전도 가스라이팅을 그 해 최고 인기 단어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용법은 가스라이팅의 오남용일까?
언어는 한 사회가 공유하는 약속이고 규칙이지만 동시에 생물과 같은 유동성을 지닌다. 예를 들어 과거 '오타쿠'라는 단어는 서브 컬처에 천착하다 못해 도저히 상종을 못할 정도로 사회성이 떨어지는 존재를 부르는 멸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남다른 탐구심을 갖춘 사람을 장난스레 일컫는 말로 변화했다. 이를 두고 '오타쿠의 본래 의미를 훼손하지 말라'며 항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대로 '발암(發癌)'이나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같은 단어들은 최근 그저 발화자의 부정적 감정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이용되곤 하는데, 이로 인해 실제 환자들은 또 다른 고통을 겪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언어의 유동성 덕에 멸칭이 순화된 사례가 전자라면, 후자는 시대적 변화가 언어의 오남용을 초래한 사례다.
가스라이팅은 어떨까. 미국 정신분석 심리치료사 로빈 스턴이 <가스등>의 내용을 인용해 '가스등 효과'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 등 학계의 합의나 연구를 통해 탄생한 말은 아니지만, 가해자가 피해자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상황을 조작해 발생하는 정신적 학대 상황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단어임은 분명하다. 단어의 정통성이 부족할지언정 지칭성은 확실하다는 것이며, 가스라이팅이 피해자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지워지지는 않는다는 소리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어의 뜻이 모든 종류의 세뇌나 단순한 거짓말, 충고를 포괄하는 식으로 확장될 때의 부정적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가스등>의 내용과 함께 가스라이팅의 의미를 다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가스등>은 1944년의 영화다.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제17회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제2회 골든 글로브 여우 주연상을 안긴 이 영화는 비 내리는 런던 쏜튼 광장의 뿌연 정경으로 시작한다. 거리의 가로등에 불을 붙이는 사람이 있지만 거기에 깊이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그건 너무나 당연하고 일상적인 작업이기 때문이다.
폴라(잉그리드 버그만)는 이모와 함께 살던 쏜튼 광장을 도망치듯 빠져 나간다. 유명 가수였던 이모가 집에 숨어든 도둑에게 살해 당한 후 범인도 찾지 못한 탓이다. 보호자를 잃은 폴라는 이모의 친구가 있는 이탈리아로 가서 가수 레슨을 받지만, 선생님은 "노래에 마음이 떠났다"라며 면박을 주기 일쑤다. 특히 폴라가 사랑에 빠진 후에는 "넌 너무 행복해서 비극을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혼을 낸다. 이 이상한 지적들을 버티던 폴라였지만, 예술 대신 사랑을 선택하겠다고 선언한다. 상대는 노래 레슨의 피아노 반주자 그레고리(샤를르 보와이에), 만난 지 2주 만에 폴라를 향한 열렬한 마음을 고백한 인물이다.
아직 이모의 죽음으로 입은 충격과 상처가 사라지지 않은 데다가 노래까지 그만 둔 폴라는 몇 주 동안 혼자서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갖겠다며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그레고리는 몰래 폴라의 여행지를 찾고, 폴라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여긴다. 그레고리는 폴라가 잊고 싶어하던 쏜튼 광장의 저택에 살고 싶다고 말하고, 폴라는 그레고리와 함께 그곳에서 새출발을 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집은 폴라에게 안식처가 아닌 감옥이었다. 그레고리는 집에 이웃을 초대하는 것은 물론 자신 없이 폴라가 외출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 당시엔 예술을 버리고 사랑을 택할 만큼 주체적이었던 폴라가 그레고리의 억압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레고리는 모든 사소한 것에 화를 내며 그 원인을 폴라에게 돌렸다. 이모의 유품에서 발견한 편지를 보고 갑자기 역정을 내는 남편에게 폴라는 "편지가 당신을 화나게 하느냐"라고 묻지만, 그레고리는 "화나는 건 당신 때문이다. 왜 행복에 방해가 되는 일을 하느냐"라고 반문한다. 집안에 들인 하인들에게 명령을 할 때도, 그 주체가 폴라인 것처럼 꾸민다. 폴라는 쏜튼 광장의 집 안에서 '긴장한 상태'이며, '모든 것이 바르기를 바라는 사람'이고, '건망증이 생겨 잘 잃어버리는 사람'이 돼 버렸다.
그러던 중 폴라는 남편이 작업을 하겠다며 밤중에 외출을 할 때마다 방 안의 가스등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낀다. 쏜튼 광장의 가로등이 언제 꺼지고 켜지는 지에 아무도 관심이 없듯, 폴라 방의 가스등 조도 역시 매우 사소한 변화다. 폴라는 그 변화를 분명히 감지하면서도 스스로를 의심하며, 그레고리가 제멋대로 만든 저택의 규칙에 휘말리고 만다. 폴라가 제 손으로 난로에 석탄을 넣으려고 하면 그레고리는 "하인이 왜 있다고 생각하느냐"라고 화를 낸다. 이에 폴라가 하인도 자신과 동등한 존재라고 맞불을 놓으면, 그레고리는 하인을 불러놓고 폴라의 피부를 타박하며 망신을 주는 식으로 대응한다. 그 이유는 "폴라가 하인을 동등하게 대하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의 규칙은 일견 타당하고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모든 것을 폴라의 '그릇된 행동' 탓으로 돌리는 징벌적 성격을 띤다. 이제 폴라는 자신이 직접 감각한 것조차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가스등의 불빛을 몰래 조절하고는 시치미를 떼는 그레고리의 입에서 나오는 것만이 폴라의 진실이 된 것이다.
이처럼 <가스등>에는 정신적 학대 행위로서의 가스라이팅이 낳은 현실적 상황과 그 심각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의 오남용을 경계해야 하는 건 가해자들의 억압과 피해자들의 고통이 희석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가스라이팅과 가해자-피해자 관계는 실재한다. 하지만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모든 행위나 그저 순간의 이득을 취하기 위한 기망이 가스라이팅은 아니다. 더불어 아무때고 논쟁 상황에서 이 단어가 남발된다면 건강한 소통은 거기서 끝나고 만다. 토론하다가 밀릴 것 같을 때 '응 니 얼굴'이라 외치고 도망치는 식의 용도라면, '가스라이팅'이란 말까진 필요 없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라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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