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꽃미남 스타들의 새로운 도전 과제로 떠오른 캐릭터가 있으니, 바로 '북한 공작원'이다. 이들은 간첩, 특수부대 군인, 형사에 이르기까지 연기하는 신분도 제각각. 그들이 서울로 건너와 휘말리는 사건도 각양각색이다. 북한 공작원 캐릭터는 어떻게 톱스타들의 전유물이 되었을까. 궁금해서 한 자리에 모아봤다. 현실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말 그대로 영화에서만 있을 것 같은 캐릭터를 배우들은 어떻게 연기했을까.

한때 대세였던
여성 공작원

'북한 공작원'은 영화에서 언더커버 비밀요원 혹은 킬러 캐릭터를 강조하기 좋은 아이템이다. 인상적인 예시로는 2000년대 초중반에 등장했던 첩보물의 여성 캐릭터를 찾아볼 수 있다. <쉬리>의 킬러 이방희(김윤진)가 파워풀한 여성 액션을 강조한 캐릭터였다면 <그녀를 모르면 간첩>의 림계순(김정화)은 얼짱 간첩이라는 희한한 컨셉을 내세워 코미디에 활용하기도 했다. 역시 코미디의 영역에서 최근에는 <간첩>의 강대리(염정아)와 같은 생활형 엄마 간첩의 컨셉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꽃미남 배우들이 이들의 영역을 넘보더니 이제는 아예 컴백 연기 변신 등용문처럼 활용한다. 아무튼 배우들에게 간첩, 혹은 북한 공작원이란 인물은 어두운 과거를 지닌 내면과 거친 액션의 외면 모두를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이기에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줄 수 있다.


넘버 투

1999 <쉬리> 안현철 - 김수로

지금은 TV나 스크린보다 공연장에서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배우 김수로는 <쉬리>에서 북한 공작원으로 등장한 적 있다. 영화의 설정으로는 박무영(최민식)이 이끄는 특수 8군단의 정예요원 출신(?)으로 감정이 거세되어 거의 사이보그에 가까운 '특수요원'의 전형을 보여줬다. 그리고 조직의 우두머리보다 2인자가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훗날 <태극기 휘날리며>의 청년단장으로도 등장해서 이념적인 캐릭터에 연장선을 그었다. 당시 실제 여동생인 배우 김상미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는데 극중에서 본인이 먼저 죽고 여동생은 자폭하는 "가족참사를 겪었다"고 한 방송에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2013 <은밀하게 위대하게> 리해진 - 이현우

역시 공작원의 완성은 모자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이현우가 쓰면 군용이 아니라 밀리터리 룩이라는 패션으로 이해된다. 같은 스타일의 모자를 썼던 김수로와는 느낌이 다르다. 이현우가 연기하는 남파특수공작 5446부대의 최연소 요원 리해진은 동네 바보로 위장한 주인공인 원류환(김수현)을 따르는 동생이자 동료로 등장한다. 사실 그가 어떤 액션을 구사했는지보다 어떤 모자를 썼는지가 더 기억에 남는다. 원류환이 비니를 씌워주던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물론 와이어 액션 연기에 도전해 엄청 고생하면서 마을 추격 장면을 찍기도 했다. 이현우는 다음 영화로 <연평해전>을 택해 남북한 양국 병사 모두를 연기한 배우 대열에 합류했다.


사랑의 공작원

2002 <이중간첩> 림병호 - 한석규

<쉬리>에서 비밀요원을 연기했던 한석규는 이 영화에서 신분을 바꿔 대남 공작원 림병호를 연기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접속>에서 이미 라디오 PD를 연기했던 그가 이 영화에서 접선 대상으로 만나는 인물이 라디오 프로그램 DJ 윤수미(고소영)인 것. <쉬리>에서의 냉철한 요원 이미지와 <접속>에서의 로맨틱한 남자의 이미지를 차용한 캐릭터처럼 보인다. 

2010 <의형제> 송지원 - 강동원

남파 공작원 출신, 그리고 서울에서 탈북자 신분으로 살아가는 남자 지원은 조국으로부터 약점이 잡힌 채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인물이었다. 그의 존재를 알고 있던 국정원 요원 한규(송강호)와의 묘한 동거 관계가 이어지면서 지원은 점점 인간적인 고뇌에 빠져들게 된다. 아내와 딸을 향한 그의 마음이 잔인한 살인병기로서의 또다른 자신의 모습을 덮어버릴 수 있는 캐릭터였다.

2013 <베를린> 표종성 - 하정우

이름도 얼굴도 없는 '고스트' 표종성. 배우 하정우가 연기하는 표종성은 서울이 배경이 아니라 베를린을 배경으로 사랑하는 아내 련정희(전지현)를 지키기 위해 남북한 양국 정보국 사이를 외줄타기 하듯 오간다. 전작에서부터 이미 먹방 연기 신드롬을 만들어냈던 하정우의 북한 요원 먹방 연기는 후배 배우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편, 영화 본편에서 바게트 먹방이 삭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뒤를 쫓던 북한의 실세 권력자 동명수를 연기한 류승범의 연기는 사실 이 리스트의 어떤 공작원보다도 가장 북한다운 느낌을 풍기기도 했다. 

2013 <동창생> 리명훈 - 최승현

하정우의 먹방 연기를 의식한 듯 영화 내내 먹는 연기를 선보였던 최승현 역시 남파 공작원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이제 곧 진짜 군대를 가야 하는 그가 국밥을 먹는 장면을 자세히 보면 왼손 파지를 잘 하고 먹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먹방은 농담이고, 최승현이 이 영화에서 공들여 보여준 건 바로 액션 연기다. 촬영 도중 손가락이 심하게 찢어지는 부상까지 입었을 정도로 열심히 촬영했다. 라이언 고슬링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 역시 오토바이를 타고 밤거리를 질주하는 인생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어쨌든 군인 신분은 아니지만 최승현 역시 과거 <포화속으로>에서 학도병을 연기했기 때문에 남북한 모두를 오간 배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동네 바보형

2013 <은밀하게 위대하게> 김수현

김수현이 연기한 공작원 원류환의 캐릭터는 딱히 특정 캐릭터 유형에 속하지 않는다. 그냥 바보형이 가장 잘 어울린다. 때문에 트레이드 마크인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신분을 주로 위장했다. 그는 다른 영화 속 공작원 캐릭터처럼 사이보그 같지도, 복수심에 불타지도, 로맨틱하지도 않다. 다만 어쩔 수 없이 친했던 동료들과 총구를 겨눠야 하는 비극 속에 놓여 있는 인물이다. 김수현은 이 영화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요원을 연기하면서 아주 선명한 복근 몸매를 팬서비스처럼 공개하기도 했다. 


복수의 아이콘

2013 <용의자> 지동철 - 공유

엄밀히 말하면 <용의자>의 지동철은 '공작원'은 아니다. 그는 공작원 출신이었다가 조국으로부터 내버려져 망명한 뒤 탈북자 신세로 살아가고 있다. 대리운전 생활을 하면서 조용하게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가 한국으로 망명한 진짜 이유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이 인물을 복수의 아이콘으로 만들어준다. 2017년의 도깨비 공유는 이른바 북한무술로 알려진 '주체격술'과 같은 다양한 액션을 선보였다. 극한의 다이어트와 운동을 통해 무시무시한 복근을 보여주기도 했다. 공유의 파격 변신이었다. 그는 북한 공작원 소재 영화를 통틀어 가장 화끈하고 과감한 액션을 선사한 영화에서 연기했다.

2017 <공조> 림철령 - 현빈

현빈이 연기하는 <공조>의 북한 형사 림철령 역시 북한 특수부대 출신이다. 자신의 상관이었던 차기성(김주혁)의 배신으로 아내를 잃고 고통받다가 당을 배신한 차기성을 검거하라는 지령을 받고 서울로 내려온 것. 무시무시한 복수심을 숨겨야 하는 엘리트 요원답지 않게 빈틈 많은 강 형사(유해진)에 휘말려 여기저기 고생을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림철령과 강 형사가 밤에 잠은 꼭 집에 가서 자고 아침밥은 꼭 챙겨 먹으며 낮에만 추격을 하는 생활형 추격전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제이슨 본을 보고 자란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두루마리 휴지조차 무시무시한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갖췄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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